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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실 공백, 학생 안전은?] 작은 공간, 큰 역할 - 학교 보건실의 하루

응급의 순간과 일상의 건강을 지키는 보건교사 이야기

더에듀 | 만약 당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졌을 때, 생명을 지켜줄 보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면 어떨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의 유일한 의료전문가인 보건교사가 교실수업에 나가며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보건실이 비어가고 있다. 법의 왜곡된 해석과 행정 편의주의가 만든 ‘안전 공백’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더에듀>는 <전국보건교사노동조합>의 이야기를 통해 닫힌 보건실 문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무너진 학교 안전 시스템의 근본 원인을 살펴본다. 더 이상 2023년 대전에서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아간다. 우리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정말 안전할까.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찾는 곳 ‘보건실’


“선생님, 빨리요! 애가 팔을 심하게 다쳤어요!”

 

종례가 끝나고 나른한 평화가 감돌던 오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동료 교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응급상황의 시작을 알렸다.

 

친구 등에 업혀 장난을 치던 학생이 함께 넘어지면서, 팔이 교실 문틈 쇠 부분에 세게 부딪혔다는 짧은 설명.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세요!”

 

구급가방을 챙겨 4층 교실로 향하려던 찰나, 보건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4층에 있던 학생이 팔뚝에서 뼈가 드러난 채 서 있었다. 힘없이 달랑거리는 팔을 붙잡고 있는 학생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라는 생각과 함께 잠시 뇌가 정지하는 듯했다.

 

하지만 생각은 사치였다. 찰나의 충격을 밀어내고 몸이 먼저 반응했다. 즉시 부목으로 팔을 고정하고 냉찜질로 부종을 막으며 담임 선생님과 함께 학생을 가장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몇 초, 몇 분 안에 판단과 조치가 이루어져야 했던 긴박한 순간이었다. 학교 안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의료 판단의 현장, 그곳은 보건실이었다.


학교 보건실의 현실과 오해


많은 사람에게 보건실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아마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아플 때 잠시 누워 쉬는 곳, 넘어져서 까진 무릎에 빨간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던 곳, 혹은 체육 시간 후 뻐근한 근육에 파스를 얻으러 가던 추억의 장소일 것이다.

 

여전히 보건실은 ‘쉬는 곳’이나 ‘아프면 약 주는 곳’ 정도로 가볍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문 안에서는 상상 이상의 일들이 벌어진다. 실제 학교 보건실은 ‘작은 응급실’에 가깝다.

 

한 해 동안 처리하는 학생 방문 건수는 적게는 수천 건에서 많게는 수만 건에 이른다. 단순한 상처 처치는 물론, 갑작스러운 아나필락시스 쇼크, 심정지, 골절, 탈골 등 한시가 급한 응급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또한 만성질환을 가진 학생들의 일상 건강 관리, 성장기 학생들의 개별 건강 상담, 계절마다 진행되는 감염병 예방 활동과 교육까지 보건실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그야말로 방대하다.

 

그렇기에 보건실은 단순히 아파서 쉬는 곳이 아니다. 다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건강을 되찾아 교실과 운동장으로 돌아갈 힘을 주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보건실은 학생들이 ‘쉬는 곳’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곳’이다.


응급 현장의 전문가, 보건교사의 관찰과 판단


학교라는 공간은 언제, 어디서, 어떤 학생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변수의 연속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교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일반 교사와는 다른 수준의 전문지식과 신속한 임상적 판단이다.

 

뼈가 부러진 학생을 보고 단순히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과, 골절 부위를 확인해 부목으로 고정하고 2차 손상을 예방한 뒤 이송을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대응이다. 이는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학생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의학적 판단의 영역이다.

 

교내에서 유일하게 응급상황에 대한 전문적 판단과 조치가 가능한 인력이 바로 보건교사다. 평소에는 학생의 건강을 살피는 든든한 보호자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신속한 의료 전문가로 변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작은 이상 신호 하나가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기도 한다. 시야가 흐릿하다며 찾아온 학생의 각막에서 손상을 발견하고, 문진을 통해 칼날 파편이 눈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적이 있다. 빠른 판단 덕분에 즉시 병원 진료를 받아 시력을 지킬 수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속이 좋지 않았던 학생에게서 분출성 구토와 복통이 나타났을 때, 의학적 징후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단순한 복통이 아니라는 확신으로 병원 진료를 강력히 권유했다. 결과는 충수돌기염이었다. 병원 방문을 주저하던 보호자를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학생의 증상을 세심히 관찰한 전문적 직감과 판단 덕분이었다.

 

급성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체육 시간 배구를 하던 한 학생이 갑자기 숨쉬기 어렵다며 보건실을 찾아왔다. 산소포화도와 호흡 상태는 안정적이었지만, 얼굴을 살피던 나는 눈가가 빠르게 붓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 즉시 아나필락시스를 의심하고 학생을 안심시키며 산소를 공급하고 119를 요청했다.

 

병원에서 아나필락시스로 진단받았지만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보건실로 오도록 교육했고, 일주일 뒤 증상 초기에 항히스타민제를 투약해 학생의 상태를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었다. 즉각적인 판단과 조치가 없었다면 학생의 생명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학생들의 막연한 증상 속에서 위험의 신호를 포착하고, 그 안에서 질병의 악화를 방지하는 전문적 관찰과 판단이 바로 보건교사의 진짜 역할이다.

 


일상의 건강을 지키는 개별화 보건교육


사이렌이 울리는 응급상황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보건실의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바로 학생들이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 ‘개별화 보건교육’이다.

 

필자는 교과서를 들고 교실에서 수업하는 교과교사는 아니지만, 보건실이라는 특별한 교실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꼭 필요한 맞춤형 보건교육을 한다.

 

천식 발작을 예방하기 위해 흡입기 사용법을 연습하는 학생, 점심시간마다 혈당을 확인하고 인슐린 자가 주사를 놓는 학생, 갑작스러운 알레르기 반응에 대비해 응급주사 사용법을 익히는 학생까지. 보건실은 이들에게 단순한 치료 공간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든든한 공간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두 명의 학생이 있다.

 

한 학생은 1형 당뇨 학생이었다. 잦은 저혈당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학부모와 담당 의사와 긴밀히 협력하여 맞춤형 응급 프로토콜을 만들고 매일 혈당을 점검하며 컨디션을 조절해 나갔다. 세심한 관리가 학생의 얼굴에서 불안을 걷어내고 밝은 미소를 되찾게 했다.

 

또 다른 학생은 부모의 무관심 속에 혈당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 학생에게는 인슐린 자가주사법부터 식단 관리, 응급대처까지 하나씩 직접 가르쳐야 했다. 이 학교에서 그 학생의 건강을 지켜줄 유일한 전문가라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나를 움직였다.

 

이처럼 보건교사는 단순한 응급 처치 전문가를 넘어, 학생 개개인의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생활 속 건강 행동을 지도하는 전문가이다.

 

학생들이 보건실을 나설 때, 얼굴에 비친 작은 자신감과 안도감이야말로 내가 이 자리에서 지켜야 할 이유이자 보람이다. 일상의 순간마다 학생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 것, 그것이 바로 보건교사라는 이름에 담긴 가장 빛나는 가치이다.


‘작은 공간, 큰 역할’의 진짜 의미


학생의 건강권은 모든 학습 활동의 기본 전제이다.

 

아픈 학생은 마음껏 배울 수 없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학교 안에서 학생의 건강을 지키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보건실의 작은 문 안에서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의 순간과 한 뼘씩 성장하는 일상의 건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이곳은 학생들의 생명을 지키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며,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회복과 성장의 공간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 명의 보건교사가 수백 명, 때로는 천 명이 넘는 학생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은 보건실을 ‘없으면 아쉽지만, 없어도 큰 문제는 없는 공간’ 정도로 가볍게 여긴다. 그러나 학교 보건실은 단순한 지원 시설이 아니다. 학생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탱하는 핵심축이며, 보건교사의 전문적 판단 하나하나가 학생들의 생명과 직결된다. 따라서 이들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소진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사회적 공감이 필요하다.

 

“보건실은 응급의 순간에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학생들의 건강을 지키는 특별한 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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