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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실 공백, 학생 안전은?] “수업 중 아이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교실과 보건실, 두 개의 전장을 오가는 보건교사들의 증언

더에듀 | 만약 당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졌을 때, 생명을 지켜줄 보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면 어떨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의 유일한 의료전문가인 보건교사가 교실수업에 나가며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보건실이 비어가고 있다. 법의 왜곡된 해석과 행정 편의주의가 만든 ‘안전 공백’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더에듀>는 <전국보건교사노동조합>의 이야기를 통해 닫힌 보건실 문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무너진 학교 안전 시스템의 근본 원인을 살펴본다. 더 이상 2023년 대전에서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아간다. 우리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정말 안전할까.

 


보건교사의 이중고: 분신술이 필요해!


57학급, 1800명이 넘는 거대한 학교. 매일 100명이 넘는 학생이 오가는 보건실은 그야말로 ‘전쟁터’이다.

 

야전 병원처럼 항상 북적이는 보건실에 대한 대안으로 번호표 제공, 보건실 밖 대기를 제안하는 교사들이 있었지만, 이는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일반교사들은 알지 못한다.

 

아이들은 본인의 상태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기에 보건실에 들어서는 아이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고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처치도 진행해야 한다.

 

이곳을 나 홀로 근무했던 보건교사 A는 학생 뇌출혈이나 안전에 관한 기사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체육 시간에 넘어진 한 학생의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겉보기엔 아무 이상 없어 보였지만, 신체 사정(査定) 중 농구 경기 중 슛을 쏘고 뒤로 넘어져 순간적으로 기억이 끊겼다는 학생의 말에 A 보건교사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학생에 대해 동공반사, 운동 기능, 감각 기능, 인지 기능, 두통이나 어지럼증 여부, 근력 저하, 이중 시야, 발음, 기억력 감퇴 등을 평가했지만 특별한 증상이나 외상이 없었다.

 

아이는 괜찮다고 다음 시간 수업 참여를 원하여 보건실에 잡아 두고만 있을 순 없었다. 다행히 매일 2시간씩 있는 보건수업을 막 마친 상태였기에 담임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관찰을 부탁했다.

 

15분 후 걱정하던 전화가 걸려왔다.

 

“똑똑한 아이가 엉뚱한 대답을 해요.”

 

보건실에 재방문한 아이는 몇 가지 검사에서 이상반응이 확인됐고 즉시 병원으로 이송한 결과 미세한 뇌출혈이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다음시간에 보건수업이 있었다면 대기하는 십 수명의 아이들과 수업시간에 쫒겨 충분한 사정과 인계가 부족했을 테고,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A 보건교사는 그날의 상황을 ‘모든 운을 다 쓴 기분’이라고 회상했다.

 

보건교사에게 아이들이 자주하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학교에서 가장 위급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체육시간 안와(眼窩)에 투포환 공을 맞은 아이? 학교시설물 추락으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 넘어져 복합골절이 있었던 아이? 유리문을 발로차서 다리에 다량 출혈이 있던 아이? 급식 먹던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발작한 아이?

 

수도 없이 많은 사례가 생각나지만, 정말 위험한 것은 위의 사례처럼 잠재된 문제이다.

 

피가 흐르고 부어오르는 외상은 발견도 쉽고 응급처치나 병원까지의 후송도 비교적 순조롭다. 그러나 A교사의 경험처럼 전문성과 세심한 관찰을 요하는 경우가 문제가 된다.

 

연속성 있고 세심하게 파악하고 관찰할 충분한 시간. 이것의 중요성을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다.

 

보건교사는 단순히 아픈 학생을 돌보는 역할을 넘어,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하지만 이를 교실 수업 중심으로 활용하면서 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딜레마’로 작용한다.

 

특수학교에 근무하는 보건교사 B의 사례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수업 중이던 교실에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이가 발작을 시작했다는 다급한 연락이었죠.”

 

중증 발달장애 학생들과 보건수업을 진행 중이던 B보건교사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특수보조 인력도 없이 진행되던 보건수업이었고, 학생 중 절반이 한시라도 눈을 떼기 어려운 행동특성을 지녔기에 남겨진 아이들의 안전문제로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사실 이 시간은 이름만 수업일 뿐 교과교사의 시수를 경감해주기 위한 ‘돌봄’ 그 자체였다. 가까스로 다른 교사들에게 수업중인 반 학생 관리에 대한 도움을 요청한 뒤 응급 상황이 발생한 교실로 향했다.

 

전신경련 중인 학생의 상황을 컨트롤하고 경련 시간을 체크하던 중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또 다른 뇌전증 학생이 발작을 시작했다는 연락이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한 명뿐인 나는 동시에 두 곳에 아니 세 곳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B씨는 한 명의 응급 상황을 처치하면서도, 전화 너머의 또 다른 위급 상황에 대한 조언을 동시에 해야 했다.

 

이처럼 한정된 인력으로 비슷하게 발생하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보건교사들에게 일상적인 고통이다.

 


고독한 판단, 그리고 시스템의 부재


보건교사들의 이러한 고충은 단순히 개인적인 어려움이 아니다. 이는 ‘책임의 분산이 불가능한 구조적 결함’이라는 시스템적 문제에 기인한다.

 

응급상황은 예고되지 않는다. 그러나 혹자들은 보건교사의 수업 진행 중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수업을 중단하고 달려가면 된다고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수업을 진행하는 보건교사는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대폰을 올려놓고 수업하고 있다. 그러나 교실에 남겨진 학생들과 대비 없이 달려간 응급 상황을 판단하고 처치하는 것은 안전에 구멍을 만들어 낸다.

 

또한 다발적 응급 상황 발생 시 ‘누구를 먼저,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처치할지 홀로 판단해야 한다.

 

한정된 정보와 시간 속에서 내려지는 그 판단의 무게는 오롯이 보건교사 한 명의 몫이다.

 

B 보건교사는 이 사건 이후 ‘학교보건법 제15 조의2(질병이나 장애로 인하여 특별히 관리ㆍ보호가 필요한 학생을 위하여 '보조 인력'을 둘 수 있다)’에 명시된 보조 인력의 필요성을 교육청에 제기했지만, 특수학교 보건실의 특수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더 큰 학교도 못주고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B 보건교사가 직접 마련한 해결책은 보건교사의 ‘수업제외 요청’과 ‘응급 벨’ 시스템이었다.

 

보건교사가 도움이 필요한 응급 상황에 놓일 경우, 벨을 눌러 교무실에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우리 시스템의 한계를 알고 있다는 뜻이죠”라고 B 보건교사는 씁쓸하게 말했다.

 

교실과 보건실, 두 개의 전장을 오가며 매일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보건교사들. 이들의 증언은 단지 개인의 경험담을 넘어,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학교 시스템 전반의 취약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보건교사들이 더 이상 고독한 전투를 벌이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과 인력 충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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