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만약 당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쓰러졌을 때, 생명을 지켜줄 보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면 어떨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의 유일한 의료전문가인 보건교사가 교실수업에 나가며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보건실이 비어가고 있다. 법의 왜곡된 해석과 행정 편의주의가 만든 ‘안전 공백’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더에듀>는 <전국보건교사노동조합>의 이야기를 통해 닫힌 보건실 문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무너진 학교 안전 시스템의 근본 원인을 살펴본다. 더 이상 2023년 대전에서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해답을 찾아간다. 우리 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정말 안전할까. |

빈 보건실, 흔들리는 학생 안전
‘2024년 학교안전공제회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발생한 안전사고는 총 21만 1650건에 달한다. 이를 연간 수업일수(약 190일)로 나누면 ‘하루 평균 약 1100건의 크고 작은 사고가 학생들 곁에서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등굣길에 넘어져 무릎을 다친 학생부터, 체육 시간에 발목을 접질린 학생, 급식 후 갑작스러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학생까지... 이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보건교사의 즉각적인 초기 대응은 학생의 고통을 줄이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보건교사의 중추적 역할이 흔들리면서, 가장 기본적인 안전망까지 위협받고 있다. 그 흔들리는 안전망의 모습은 학생들의 일상 속 위험으로 드러난다.
수업 시간, 복통에 고통스러워하며 보건실을 찾았지만, 문틈 사이로 정적만이 흐른다.
과학 시간 눈에 화학약품이 들어간 학생은 친구의 팔에 기대어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도움을 기다리고, 갑작스러운 저혈당 증상이 나타난 당뇨 학생은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
작은 불편함에서부터 심각한 응급상황까지, 일상 속 안전 공백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실 속에서는 매일 반복된다.
‘보건교사가 수업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보건실에 생긴 안전 공백,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지는 것일까?’
보건실이 비는 것은 단 몇 분 혹은 수십 분이지만, 그 사이 학생들이 겪는 경험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바로 이런 ‘학교 곳곳에 숨은 위험’이, 우리가 ‘비어 있는 보건실’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보건교사는 왜 교실로 갔나
‘보건교사는 학생 안전을 지켜야 할 보건실을 비우고 교실로 향한 것일까?’
많은 이들은 ‘학교보건법 제15조’와 ‘교육과학기술부 고시(제2008-148호)’를 보건교사의 교실 수업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이는 법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학교보건법 제15조’는 학교에, 제9조의2에 따른 보건교육과 학생들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보건교사를 두도록 규정한다.
법이 말하는 ‘제9조의2에 따른 보건교육’이란 무엇일까?
‘학교보건법 제9조의2’를 살펴보면 명확하다.

교육부 장관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에 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하며, 학교장은 교직원을 대상으로 매년 응급처치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즉, 이 조항은 보건교사 개인의 수업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 교직원 모두에게 실천적인 응급처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학교라는 공동체가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다.
보건교사 교실 수업의 또 다른 근거로 삼는 ‘교육과학기술부 고시(제2008-148호)’는 2016년에 폐지되었다.
더구나 이 고시는 학교보건법 제9조의2에 따른 보건교육과 전혀 관련이 없다. 따라서 「교육과학기술부 고시(제2008-148호)」를 근거로 보건교사의 교실 수업을 정당화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왜곡된 법 해석은 보건교사를 보건실에서 교실로 내몰았다. 그 결과, 학생 안전의 중추인 보건실은 제 기능을 상실하고, 학교안전망은 무너졌다.
결국 우리는 법에 명시된 보건교육을 왜곡 해석해 ‘보건수업’으로 둔갑시켜 학생 안전의 지지대인 보건실의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는 치명적인 모순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학생 안전, 보건실에서 다시 출발하다
‘무너진 학교안전망은 어디서부터 다시 세워야 할까?’
해답은 명확하다. 학생 안전은 보건교사가 응급처치와 건강관리라는 본연의 직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건실을 온전히 운영할 때 비로소 지켜진다. 이를 위해서는 법에 명시된 '보건교육'을 '보건수업'으로 둔갑시키는 잘못된 관행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학교보건법이 말하는 진정한 보건교육은 학교 전체의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지, 보건교사를 교실에 묶어두는 것이 아니다. 법의 취지를 더 이상 왜곡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보건교사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법적 근거가 없는 보건수업 강요와 각종 행정 업무로 보건실 공백을 만드는 관행을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보건교사가 보건실을 온전히 운영할 때, 학생들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받는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논의는 더 이상 복잡하거나 어려운 길이 아니다.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상식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생 안전은 교실 수업이 아니라, 응급상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보건실 운영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