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출산율 하락으로 줄어드는 학생 수는 배움의 장인 학교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활동에 큰 장애물로 등장했다. 관계를 통한 상호작용 등 사회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본격적 시기이지만 제반 환경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 반대로 기술은 큰 발전을 이루고 있어 전세계 어디에서든 직관적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함께 현실을 완벽하게 구현해 주는 가상현실은 분리된 공간을 초월하게 해주어 직접적 관계 경험 환경이 축소된 현실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더에듀>는 가상현실을 활용한 교육활동에 도전장을 내민 ‘XR메타버스교사협회’ 소속 교사들의 교육 활동 사례 소개를 통해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

“선생님, 너무 실감 나서 무서워요!”
한 학생이 VR 헤드셋을 벗으며 외쳤다. 순간 교실 안은 환호와 탄성으로 가득 찼다. 어느새 과학 교과서 속 삽화에 불과하던 ‘달의 위상 변화’가 아이들의 생생한 경험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평면의 그림과 설명으로는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던 개념이 VR 기술을 만나 빛을 발한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과학 ‘달의 모양이 변화해요’ 단원은 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다. ‘위상 변화’라는 용어조차 생소할뿐더러, 달의 위치 변화와 모양 변화 간의 관계를 2차원 그림과 설명만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교사 입장에서도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VR 콘텐츠다.
상상력을 현실로, 직접 제작한 VR 콘텐츠
교육용 VR 콘텐츠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과 수업에 직접 적용해 보기로 결심하기까지는 꽤 오랜 고민과 준비가 필요했다. 시중의 VR 콘텐츠가 교육과정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거나 단편적인 경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직접 교과서의 흐름과 연계된 VR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이를 WebXR 기반 3D 저작 도구와 Unity를 활용해 구현하기로 했다.
VR 콘텐츠는 ‘김태영’이라는 학생이 이끄는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크게 세 가지 장면으로 구성했다.
[프롤로그]
외계행성 HY-02031007에서 어느 날 별의 조각이 사라졌다!
별의 조각을 찾지 못하면 별의 존재가 위태로워진다. 별의 조각을 찾아 지구라는 행성에 도착한 세 외계인은 지구라는 행성에 불시착했다. 하늘에는 오른쪽 반이 불룩한 반달이 운동장 시계탑 한 가운데 떠 있었고 시간이 없는 외계인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져 별의 조각을 찾아 보고 다음 날 운동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외계인들은 서로 다음 날 만나지 못했다. 한 외계인은 시계를 기준으로 다른 외계인은 달의 모양과 위치를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간]
첫 번째, 동료를 못 만나 울고 있는 외계인에게 ‘김태영’이라는 한 소녀가 나타난다. 태영이는 매일 오후 6시 운동장에 나가 달을 관찰하는 취미를 가진 아이다. 매일 달이 50분씩 늦게 뜨고 모양도 달라지기 때문에 외계인이 서로 만나지 못했다고 위로하며 설명해 준다.
이 때 달의 위상을 날짜별로 제공한다. 지구에서 보는 달의 위상 변화 관찰 체험이다.
학생들은 가상 공간 속 지구에 서 있는 태영이의 눈을 통해 매일 달의 모양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관찰한다. VR 시스템은 하루씩 시간이 흐르도록 설계되어 있어 학생은 달이 ‘초승달 → 상현달 → 보름달 → 이후 안보임’으로 바뀌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체험할 수 있다.
두 번째 ‘태영이’가 우주에 나가 지구, 달, 태양의 위치 관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장면이다. 학생들은 VR 기기를 착용한 채 우주 공간 속에서 세 천체의 위치를 자유롭게 관찰할 수 있다. 달의 공전 궤도를 따라 이동하며 지구를 중심으로 달이 어떻게 위치를 바꾸는지, 이 과정에서 달이 반사한 태양 빛이 지구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직접 체험한다.
마지막으로는 천구의 북극에서 지구-태양-지구의 위치를 전체적으로 확인하는 활동이다. 달의 모양을 보고 날짜를 추론하거나, 달의 위치를 조작해 위상을 바꾸는 미션을 수행하며 학습 내용을 점검한다. 학생들은 몰입 속에서 자연스럽게 개념을 내면화하며, 체험 후 교실 수업으로 이어지는 토론에서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에필로그]
복습하는 장면으로 다시 첫 번째 태영이가 운동장에서 매일 달을 관찰하는 장면으로 간다. 하지만 초승달에서 보름달까지 각 달을 멈출 수 있고 각 달을 누르면 바로 지구-달-태양의 위치 장면으로 이동한다. 또한 매일 달의 모양과 위치가 달라지는 현상을 깨닫게 된 나머지 동료 외계인들이 지구에 남겨진 외계인을 데리러 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교육 효과의 변화: ‘이해’에서 ‘체감’으로
VR 콘텐츠를 활용한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은 ‘인지적 장벽’을 허문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기존의 학습에서 혼란스러웠던 달의 위치 변화와 위상 변화 간의 인과관계를 입체적으로 관찰하면서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움직여서 관찰했다”는 경험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선 ‘체감하는 과학’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수업 전후 설문조사를 통해 학생들의 인식을 비교한 결과, VR 수업 이후 ‘달의 모양이 왜 변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응답한 학생 비율이 38%에서 91%로 상승했다.
또한 ‘과학이 재미있다’고 응답한 학생도 기존의 52%에서 89%로 증가해, 과학에 대한 태도 변화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한 학생은 “교과서 그림은 그냥 넘겼는데, 직접 우주에서 본 느낌이 너무 신기했고 아직도 머릿속에 달이 돌아가는 게 보여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학생은 “VR에서 달을 보면서 친구한테 설명해 주고 싶어졌어요. 집에 가서 가족한테도 알려줬어요”라며 과학을 타인과 나누고 싶어 하는 학습 동기까지 보여주었다.
교사의 역할과 가능성
물론 콘텐츠 제작에는 시간이 걸렸고, 기기 활용과 안전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교사로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수업의 중심이 ‘교사 설명’에서 ‘학생 경험’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교사는 안내자이자 조력자가 되어 학생들의 탐구와 발견을 유도한다. 교사 주도형 수업이 아닌, 학생 주도형 수업이 가능한 기술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또한 이번 경험은 AI·에듀테크 기반 수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실감하게 했다. 수학, 사회, 역사 등 다양한 교과에서도 실감형 콘텐츠는 ‘교과서의 벽’을 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학교 현장에서 이러한 콘텐츠를 직접 개발하거나, 교육과정에 맞는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는 교사 역량 또한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 교육을 여는 열쇠, 실감형 기술
VR 수업이 끝난 날,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다음엔 화성에도 가볼 수 있어요?”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가 직접 만들면 되지.”
우리가 열어가야 할 미래 교육은 단지 기술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생의 ‘학습 경험’을 중심에 둔, 상상력과 창의력이 살아 숨 쉬는 수업을 의미한다. 실감형 기술은 단순한 수업 도구가 아니라,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열쇠다.
달의 위상을 넘어서, 우리는 이미 새로운 교육의 위상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