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출산율 하락으로 줄어드는 학생 수는 배움의 장인 학교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활동에 큰 장애물로 등장했다. 관계를 통한 상호작용 등 사회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본격적 시기이지만 제반 환경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 반대로 기술은 큰 발전을 이루고 있어 전세계 어디에서든 직관적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와 함께 현실을 완벽하게 구현해 주는 가상현실은 분리된 공간을 초월하게 해주어 직접적 관계 경험 환경이 축소된 현실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더에듀>는 가상현실을 활용한 교육활동에 도전장을 내민 ‘XR메타버스교사협회’ 소속 교사들의 교육 활동 사례 소개를 통해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

VR 수업을 만나다
학교에서 VR 수업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미지의 공간을 개척하는 탐험가의 마음가짐과 비슷하다.
2D 공간으로는 교육과정 내의 복잡한 개념을 다 담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은 높지만, 기기 선택과 VR 멀미 관리, 안전 구역 설정, 앱 구매 절차, 성취 기준과 평가 연결까지 모든 준비를 혼자 감당하기엔 그 벽이 참 높다.
그래서 서로의 고민을 덜기 위해 전국의 초·중등 교사 모임 XR Teachers에서 첫 수업 사례집 《VR EDU》를 만들어 서로의 VR 수업을 나누고, 또 VR 수업에 도전하고자 하는 다른 교사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사례집은 교사가 VR 수업을 설계하면서 반드시 마주치는 쟁점을 순서대로 안내한다.
다양한 VR 기기 종류 및 사용 방법, 시야 조정 방법, 교실 크기를 고려한 안전 구역 확보 방법, 멀미를 줄이는 방법, 스토어별 콘텐츠 구매 경로와 대략적인 비용, 그리고 교과 특성에 맞는 활용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예를 들어 과학 차시에서는 행성 탐사형 콘텐츠, 체육·보건 차시에서는 심폐소생술 시뮬레이터, 사회·미술 차시에서는 360° 현장 탐방용 콘텐츠를 제시하고, 각 활동이 해당 교과 성취 기준 및 평가 기준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함께 담았다.
‘VR기기 착용 안전 교육 스크립트’, ‘10분 체험 후 5분 휴식 루틴’, ‘컨트롤러 버튼 활용 팁’처럼 실제 수업을 위한 노하우도 정리되어 있다. 또한 차시별 활동지도 함께 담아 처음 VR 수업에 도전하는 교사도 구체적인 수업 자료를 얻을 수 있다. 'VR EDU'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이 낯선 영역을 함께 탐험하면 그 길이 훨씬 쉬워진다는 것이다.

질문이 살아있는 과학 수업
과학은 VR 수업이 가장 활발한 과목이다. 우주를 비추고, 몸속 뼈와 장기를 확대하고, 화학 실험까지 재현할 수 있어 ‘실험 한계 극복’이라는 장점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른 교과에 비해 수업 사례가 풍부하고, 콘텐츠 스토어에 준비된 앱도 다양해 교사가 처음 VR 수업을 기획할 때 느끼는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사례집 속 과학 수업은 이런 특성을 살려 ‘관찰→탐구→확장’이라는 3단계 흐름을 공통으로 갖는다.
첫 단계에서 학생들은 거대하거나 미시적인 대상을 VR 기기를 통해 관찰하며 ‘내 눈앞에 들어온 과학’을 체험한다.
탐구 단계에서는 다양한 VR 속 기능들을 활용하여 각자 탐구한 결과를 학급 친구들과 비교하고, 캡처 이미지를 패들릿과 같은 협업 보드에 올려 질문을 공유한다.
마지막 확장 단계에서는 구체물을 활용해 교실 바닥에 축척 모형을 배열하거나 가상 실험 데이터를 그래프로 시각화하며 토론으로 이어진다.
사례집에는 각 수업별 활동지를 통해 질문을 생성하고, 정리하고, 토론하는 절차가 담겨 있어 교사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뿐만 아니라 ‘보인 뒤 무엇을 하게 할 것인가’를 단계별로 설계할 수 있고, 학생은 ‘추상적 개념을 몸으로 체험하며 과학적 사고를 한층 확장해 나갈 수 있다’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게임처럼 익히는 체육 수업
VR 체육 수업의 강점은 게임형 환경이 주는 몰입감에 있다. 또한 기기를 통한 반복 학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VR 기기 속 가상 코트에 들어서면 AI 플레이어와 즉시 매칭되고, 랠리마다 화면 가장자리에 가이드 및 타겟팅 모양 등 시각적이며 촉각적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학생은 힘, 각도, 타이밍을 숫자와 색 등으로 확인하며 ‘이번 서브 속도를 조금 줄여 볼까?’, ‘임팩트 지점을 앞당겨야겠어’와 같은 데이터를 근거로 자신의 동작을 조정할 수 있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데이터가 쌓이는 형태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체육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학생들이 규칙과 기술을 익히는 속도가 매우 빨라질 수 있다.
체육 수업은 현장에서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야외에서 진행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VR 체육 수업은 교실 한편에 약 2m × 2m 정도의 여유 공간만 확보된다면 날씨와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10분 체험, 5분 휴식’이라는 수업 설계의 틀 안에서 휴식 구간마다 VR 기기를 벗고 목과 어깨 스트레칭을 넣어 피로를 풀고, 체험 전에는 기본자세와 주의 동작을 짧게 시연해 위험 요소를 미리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운동 종목이 바뀔 때마다 콘텐츠 안에서 라켓 등의 장비가 자동 조절되므로 실물 장비나 장소를 별도로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이 덕분에 교사는 장비 부족과 안전 우려를 동시에 해소하며 체험, 데이터, 토론이 이어지는 수업을 손쉽게 설계하고, 학생은 AI 상대에게 얻는 작은 승리 경험을 반복해 자신감과 기술 숙련을 함께 키울 수 있다.
촉각이 전하는 진동과 화면이 보여주는 그래프가 하나의 피드백으로 작동할 때, 체육 수업은 더 이상 ‘재미있는 이벤트’에 머물지 않고 정밀한 움직임을 길러 주는 과학적 훈련장이 된다.

낯선 경험이 가능한 사회 수업
VR 사회 수업 장면은 학생들을 평생 한 번도 직접 마주치지 못할 풍경으로 데려간다.
VR 기기를 쓰자 눈앞에 끝없이 갈라지는 남극이 펼쳐진다.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카누를 학생 스스로 저어 나갈 수도 있다. 황제펭귄 서식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고, 바람 소리와 부딪히는 얼음 조각의 미세한 충격음이 전해진다.
학생들은 360° 카메라로 장면을 캡처해 단원에서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VR 수업 덕분에 ‘지구의 끝은 뉴스에만 있는 곳’이라는 거리감이 사라지고, 몰입감을 통해, 기후 변화의 심각성도 절실히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사례집에서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위한 VR 수업도 소개하고 있다. 자폐성 장애 학생의 경우 시각적 강점이 있어 빠르게 지나가는 사물이나 도형, 퍼즐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이에 긍정적 행동 지원을 위해 VR 수업을 활용하는 점이 매우 인상 깊다.
이처럼 사회 교과 VR 수업은 ‘갈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세계’를 교실 한가운데로 소환해 학습 동기를 끌어올리고,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학습자에게도 몰입감을 잃지 않는 맞춤 경험을 제공한다.
남극의 찬바람과 물결, 펭귄의 울음과 빙하의 균열 소리를 함께 느끼며 학생들은 교과서를 넘어 지구 공동체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다음 스테이지를 위한 열정
VR 수업이 목적에 맞는 역할을 하려면 몇 가지 단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첫 번째, 사용자 숙련이 갖춰져야 한다.
교사와 학생 모두 HMD 탈착, 시야 조정, 컨트롤러 사용 등 기본기를 미리 익혀 둬야 한다. 앱에 접속해 초기 화면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므로, 평소보다 넉넉한 차시 편성이 필수다. ‘10분 체험 + 5분 휴식’ 수업 설계 규칙을 적용하면 VR 멀미 예방까지 자연스럽게 관리할 수 있다.
두 번째, 구매와 관리를 위한 행정 절차다.
교과 연계 앱 상당수가 유료이거나 해외 결제라는 이유로 결제 흐름이 다소 복잡하다.
앱스토어 가입, 학교 카드 승인, 라이선스 관리가 뒤엉키면 예산 단계에서 발목이 잡히기 쉽다. 행정실, 교육청, 공급업체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학교 계정으로 일괄 결제할 수 있는 간소 프로세스 마련이 필요하다.
세 번째, 기기 배분과 대기 시간이다.
VR 기기가 부족하면 학생 몰입도가 즉시 떨어진다. 사례집에서 살펴본 많은 교사는 VR 화면을 TV나 빔프로젝터로 미러링해 대기 학생도 실시간 상황을 공유하게 하고, VR 없이도 수행할 수 있는 활동지·대체 사이트(자료 조사, 토의, 기록)를 함께 준비하라고 권한다. 특히 초등의 경우 2인 1기기 운영이 안정적이다. 한 학생은 사용자, 다른 학생은 보조 역할을 맡아 협력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마지막으로, 교육용 VR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다.
현재 스토어에 등록된 자료는 영어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이 즉각 몰입하기 어렵다. 특히 저학년과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위한 맞춤형 한글 콘텐츠, 교과 성취 기준을 깊이 반영한 교육적 요소 강화형 콘텐츠가 절실하다.
교사가 수업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실증하고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그 요구 사항이 개발 과정에 섬세히 반영될 때 VR 수업은 비로소 완성형 교육 도구가 된다.
이 네 가지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VR 수업은 ‘복잡하고 비싼 이벤트’를 넘어 누구나 설계할 수 있는 고급 학습 도구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VR EDU'가 남긴 발자국 위에 각 학교의 현실과 상상력을 더하면, 전국의 교실마다 고유한 몰입형 무대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 무대 위에서 아이들은 배우고, 탐험하며, 꿈을 증명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여정을 함께 열어 갈 차례다.
XR메타버스교사협회소개
XR메타버스교사협회는 XR과 메타버스에 관심을 가진 전국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비영리 단체다. 초·중·고등학교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육에 접목할 수 있는 XR·메타버스의 다양한 가능성을 연구하고 실험해 보고 있다.
단순히 이론적 분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교재를 개발하여 수업에 투입하고,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더 많은 동료 교사들에게 노하우를 확산하고 있다. 또한 기업과 협업해 기술적 자문과 지원을 받고, 이를 교실 현장에 검증하는 과정도 거치며, 각종 학회나 박람회 부스를 통해 교육 혁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오고 있다.

허유리= 충북 청주에 있는 만수초등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17년 차 초등교사다. 교직 10년 차 무렵, 수업에 대한 고민과 교실 안팎에서 마주한 다양한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교사로서 방황의 시간을 겪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의미 있게 배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끈질기게 묻고, 수업을 더 깊이 바라보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XR메타버스교사협회에서 동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맛있는 틴커캐드》, 《학교에서 만난 갤럭시 탭과 친해지기》 등 다양한 교육서를 집필하며 교사와 학생의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