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올해 고1 대상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에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새 정부도 이 같은 문제의 인식 속에 몇몇 대책을 내놨지만, 이 또한 논란에 빠지면서 가야 할 길이 험난한 상황이다. 국회는 국정감사를 맞아 고교학점제에 대한 집중 검증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다. 이에 <더에듀>는 교사노조연맹 소속 교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교학점제가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살피면서 교사들의 주장을 확인하고자 한다. |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 입시는 정보 전쟁의 성격이 더욱 심화했다.
대학과 학과마다 권장 이수 과목이 다를 뿐만 아니라, 대학 간 우수학생 확보를 위한 눈치 게임으로 인해 전형 기준, 면접 여부 등 많은 요소가 해마다 바뀐다. 같은 대학이라도 모집 단위마다 요구 과목과 반영 비율도 제각각이라, 학생들은 교과 이수 단계부터 복잡한 ‘경로 설계’를 해야 한다.
한 과목의 선택이 향후 진로를 결정하고, 작은 판단 하나가 합격 여부를 좌우하게 되었다.
컨설팅이 만든 입시형 진로 지도
교육청은 진로상담 인력을 늘리고 대입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학교마다 수백 명에 이르는 학생에게 개인 최적화 지도를 안정적·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컨설팅 업체는 내신, 비교과, 과목 이력, 수행평가 기록까지 데이터로 축적해 입시 스토리를 설계해 준다. 학생은 스스로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써준 이야기를 연기하게 된다. 진로와 적성은 부모의 기대나 사회적 통념에 따라 조정되고, ‘선택권’은 책임의 부담으로 변한다.
공교육은 이런 사교육 구조를 따라잡을 수도 없으며, 그것을 지향해서도 안 된다. 컨설팅 의존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통교육과정의 강화다. 특정 학과에만 유리한 과목 조합이 아니라, 다양한 계열로 진학할 수 있는 기본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 개편이 필요하다.
선택했던 과목이 이후 진로를 제약하지 않도록 기초 과목의 연계 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래야 정보 부족이 낳는 불안과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의 공포를 예방할 수 있다.
선택의 경로의존성과 왜곡된 적성
이과 계열은 특히 대학·학과별 권장 이수 과목이 각 대학마다 천차만별이라 대응이 더욱 어렵다. 학교마다 교사 배치와 과목 개설 여건의 차이도 심각하다. 학생들은 흥미가 아니라 대학의 요구에 맞는 조합을 찾아야 하고, 흥미보다 입시 효율과 성적 확보 가능성을 우선하게 된다.
10대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조합을 선택하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이미 선택해 버린 과목은 리셋이 불가능하고, 진로는 강제적으로 굳어진다.
이렇게 좁아진 선택의 결과는 대학 진학 이후 적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의대 진학에 실패해 차선책으로 공대에 간 학생은 물리학에 대한 기초가 없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고, ‘공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고, 재수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초래한 결과이다. 학생이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며 방향을 수정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기 위해 재수와 N수를 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문제의 뿌리는 과도한 ‘맞춤형’ 구조에 있다.
전형의 단순화, 대학의 역할 재정립
각 대학도 고교학점제의 난맥상을 심화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대학들은 다양한 잠재력을 지닌 학생들을 선발한다면 명분으로 온갖 세분화된 수시전형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입시 혼란과 정보 불평등만 확대하고 있다. 지금처럼 대학·학과·전형·선택과목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상담도, 어떤 컨설팅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형의 단순화와 통합이다. 학교장추천전형과 일반전형 등을 통합해 동일한 지원 절차 안에서 운영하고, 학생은 자신의 강점이 평가되는 영역을 통해 선발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면접 응시 여부도 학생이 선택하되, 면접을 보지 않아도 서류상으로 드러나는 역량이 우수하면 합격할 수 있고, 반대로 면접을 통해 역량을 드러내고 싶은 학생은 선택적으로 응시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예로 시도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대학의 자율성을 일정 부분 제약할 수 있지만, 전형 난립으로 인한 폐해를 상쇄하는 공공적 의미가 훨씬 크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변별을 통해 우수학생을 걸러내는 데 있지 않다. 기본 소양을 갖춘 학생을 받아들여 성장시키는 것, 그것이 대학의 본질이다.
학생이 전형의 이름과 반영 요소를 분석할 필요가 없는 단순하고 일관된 체계를 회복해야 한다. 컨설팅이 필요 없는 교육은 단순하고 일관된 제도와 기초 소양을 고르게 함양할 수 있는 공통교육에서 시작된다. 학생이 자신의 속도와 관심에 따라 배우며, 실패를 감내하고, 스스로의 경로를 그릴 수 있는 환경. 그것이 진정한 자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