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학교폭력은 더 이상 단순한 교내 문제가 아니다. 그 여파는 대입 전형까지 이어져 한 학생의 인생 궤적을 바꾸고,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징계냐, 용서냐’를 둘러싼 논쟁이 교육 현장을 휩쓸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교육의 본질’이다.
지금의 학폭 처리와 대입 연계 제도는 정의·회복·예측가능성이라는 세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학교는 조사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한 채 2차 피해에 노출된다. 여기에 대입 불이익이 더해지면 학폭 사건은 회복이 아니라 ‘종신형 낙인’이 되어버린다.
첫째, ‘절차적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의 학폭위원회 운영은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다. 동일한 사안이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면, 교육적 신뢰는 설 자리를 잃는다.
영국처럼 징계 절차와 판단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독립된 외부 재심 기구를 두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학교가 ‘판사’이자 ‘당사자’로 남아 있는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둘째, 피해자 중심의 ‘회복 정의’가 정착돼야 한다.
학폭은 처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의 학습결손, 심리 후유증, 또래 관계 단절을 복구할 장기적 지원 체계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일본의 ‘이지메 방지법’처럼, 교육청이 심리치료·전학 지원·디지털 보호까지 전담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반대로 가해자에게는 단순 처벌이 아니라 회복 프로그램 이수·사회봉사·심리상담 등을 통한 ‘교화의 통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최소한의 책임이다.
셋째, 대입 반영 기준의 예측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학폭 기록이 대입에 반영되는 원칙은 ‘공정’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모호하면 ‘불공정’이 된다.
중대 사안은 엄정하게 반영하되, 경미하거나 회복이 확인된 사안은 일정 기간 이후 자동 소멸되는 ‘삼단 분리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배제보다, 회복 노력과 변화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대학의 인센티브 제도도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교육은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어야 한다.
학폭 문제는 학교만의 책임이 아니다. 부모의 양육 문화, 온라인 공간의 익명 폭력, 지역사회의 방관적 시선이 얽혀 있다. 따라서 대응도 다층적이어야 한다.
미국의 위협평가팀처럼, 교육청·경찰·심리 전문가·법률가가 함께 참여하는 ‘다기관 상설 대응팀’을 구축해 사건을 객관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의는 단호해야 하지만, 교육은 그보다 넓고 깊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응징’이 아니라 ‘회복’이다
학폭을 이유로 한 대입 불이익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더 경계해야 할 것은, 교육이 처벌 시스템으로만 작동하는 사회이다.
학교는 정의의 현장이기 전에 성장의 무대여야 한다. 피해자는 보호받고, 가해자는 변화할 기회를 얻으며, 사회는 그 과정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세우려는 것은 처벌의 정의인지, 회복의 정의인지’ 묻고 싶다.
교육의 본령이 ‘응징’이 아닌 ‘변화’에 있음을 잊는 순간, 교실은 더 이상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심판의 법정이 되고 만다.
이제는 처벌의 논리 위에, 회복과 예측가능성의 제도를 세워야 할 때이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 정의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