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의 THE교육] 교실 탈출, '검정고시 2만명'이 묻는 것

  • 등록 2025.09.03 2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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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교육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성장 자산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있어 학생들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며, 함께 활용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소통 교육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독자의 관점에서 교육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교육의 방향에 대한 이해와 토론을 이끌어 내는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기 위해 교육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해마다 2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스스로 교실을 떠나 검정고시를 택하고 있다.

 

‘자퇴생’이라는 꼬리표 대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고득점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다.

 

이 비정상적인 행렬은 이제 서울 강남의 명문고에서조차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내신 1등급을 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탈출해야 할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다.

 

‘검고 출신 수험생 2만 명 시대’는 우리 공교육의 심장이 멎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경고등이다.


왜 아이들은 학교를 ‘손절’하는가


이 현상의 근본 원인은 명확하다. 바로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워 등급을 매기는 ‘내신 상대평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0%에 달하는 ‘정시 수능’이라는 두 개의 모순된 괴물이 우리 교육을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친구와 협력하며 사회성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친구를 밟고 올라야 내 등급이 오르는 ‘제로섬 게임’의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되는 1등급과 2등급의 차이는 학생에겐 주홍 글씨와 같다.

 

이 잔인한 등급제에서 밀려난 아이들은 일찌감치 깨닫는다. 어차피 내신으로 좋은 대학은 갈 수 없으니, 학교 수업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수능에 ‘올인’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검정고시는 이들에게 실패의 낙인이 아니라, 불합리한 시스템을 우회하는 가장 영리한 ‘비상 탈출구’인 셈이다. 특히 학구열이 높은 강남 3구의 학업 중단율이 서울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단순히 일부 부적응 학생의 문제가 아님을 명백히 보여준다.

 

가장 치열한 경쟁의 중심에 있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사망 선고’를 내리고, 사교육이라는 별도의 트랙으로 갈아타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학교는 내신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들러리’를 세우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교실은 잠자는 아이들과 인터넷 강의를 듣는 아이들로 채워지는 ‘학습 공동화’ 현상만 심화될 뿐이다.


입시제도 수술 없이는 미래도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계 일각에서는 정시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정시를 줄이면 당장 검정고시 행렬은 줄어들지 모른다. 하지만 근본 원인인 내신 상대평가제도가 존재하는 한, 경쟁의 형태만 바뀔 뿐 아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이제는 땜질식 처방이 아닌, 대입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결심해야 할 때다.

 

첫째, 내신 평가를 ‘절대평가’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

 

학생들을 더 이상 소모적인 등급 경쟁으로 내몰면 안 된다. 성취도에 따른 절대평가를 통해 협력하며 공부하는 교실 문화를 복원하고, 학생 개개인의 성장 과정을 충실히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수능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대학 서열화를 위한 ‘한 줄 세우기’ 시험이 아닌, 대학 교육을 이수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자격고사’ 형태로의 전환을 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도한 입시 부담을 줄이고, 교육의 중심을 학교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다.

 

학교가 단순히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고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입 제도 개편과 함께 교실 수업의 혁신, 그리고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 문화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교실을 떠나는 2만 명의 아이들은 온몸으로 외치고 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이 무의미한 경쟁을 멈춰달라”고 말이다.

 

이들의 절박한 외침에 귀를 닫고 또다시 입시제도의 유불리만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한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교육의 본질을 바로 세우는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김영배= 교육자이자 비영리 사회 단체장으로 25년 이상을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은 사회 성장의 기반이 되는 자양분과 같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학 박사로서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특히, 인적자산이 대부분인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춰, 소통과 협력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지식보다 인문학적 소양과 다양성 교육이 미래세대에게 더 가치 있고 필요한 생활자산이라 생각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교육의 중요성이 더 강화되고 있다는 기본 인식 속에 미래 가치를 어떻게 준비하고 연구해야 하는지를 국내외 사례 분석을 통해 논해 보고 싶어 한다.

김영배 성결대 교수/ 지속가능경영학회 회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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