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의 THE교육] 307억 노시환 선수의 2군행..."생각 없는 반복 훈련과 근육 단련은 길을 잃는다"

  • 등록 2026.04.14 14:42:14
  • 댓글 0
크게보기

 

더에듀 | 필자는 운동부(야구·농구)가 있는 학교에 관리자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 선수들과 여러 차례 만났다. 전국대회 출전에 앞서 의지를 다지고, 학생다운 자세를 강조하는 자리였다.

 

또한 스스로 특강 시간을 마련해 학생 운동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물론 대회의 성격에 따라 이야기의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매번 만남의 핵심은 학생 운동 선구들도 책을 읽으면서 교양을 쌓고 특히 생각하는 뇌를 기계적인 반복 훈련과 근육 단련 못지않게 강조했다.

 

학생 선수들은 처음에는 “연습 시간도 부족한 데 무슨 책 읽는 시간이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점차 독서를 반복해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했다.

 

분위기는 한층 달라져 학생 선수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유명인들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사색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그들은 전국대회 4강 내지 지역 대회 우승까지 하면서 학생 운동 선수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최근 국내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팀의 대표적인 간판 타자이자 국가 대표 선수로 발탁됐던 홈런 타자 노시환 선수가 극심한 부진 속에 2군으로 내려간 것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프로야구 개막 이후 13게임에서 0.145의 타율과 4경기 연속 15타수 무안타, 삼진 21개, 홈런 0개, 그리고 탄탄하던 수비까지 흔들리면서 총체적인 난국을 맞이하고 있었다.

 

매번 게임에서 팀이 반드시 점수를 내어야 할 중요한 순간에 안타는커녕 병살타까지 자주 치는 바람에 팀의 상승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팬들의 원성을 샀으며, 다년 계약으로 307억 원이라는 몸값조차 유명무실한 상태가 됐다.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를 보면서 과거 학교 관리자로 학생 운동 선수들에게 자주 강조하던 ​“훈련을 멈추면 몸이 굳지만, 생각을 멈추면 미래가 썩는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노시환 선수의 소식은 야구계를 넘어 우리 교육계에도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조차 ‘기술’과 ‘체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힌 것이다.

 

이는 단순히 스포츠계의 단편적 사건이 아니다. 기계적인 반복 학습과 암기식·주입식 교육에 매몰되어 ‘생각하는 뇌’를 잃어버린 우리 교육 현장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장이다.

 


‘기계적 반복’의 함정: 숙련은 되지만 창의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흔히 ‘연습은 완벽을 만든다(Practice makes perfect)’고 믿는다. 하지만 그 연습이 아무런 비판적 사유 없이 행해지는 기계적 반복이라면, 그것은 완벽이 아니라 ‘정체’를 만든다.

 

​노시환 선수를 비롯한 수많은 엘리트 선수가 겪는 슬럼프는 대개 기술의 부족이 아니다. 상대의 전략이 바뀌고 자신의 신체 리듬이 변할 때, 그 변화를 읽어내고 스스로를 재설계하는 ‘스포츠 IQ’, 즉 회복 탄력적 사고력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근육에 새겨진 기억은 환경이 바뀌면 무용지물이 되기 쉽지만, 뇌에 새겨진 ‘원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안을 찾아낸다.

 

같은 팀의 또 다른 주요 선수인 강백호는 새로운 팀에서 필요할 때마다 반드시 힘으로 제압해 홈런을 치려고만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공을 맞추어 안타를 치려는 유연한 사고와 자세로 노시환 선수와는 다른 이름 값을 하며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평생 공부하지 않는 뇌가 썩기 마련인 이유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업데이트할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스포츠 IQ와 독서: 왜 야구선수가 책을 읽어야 하는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21세기의 문맹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운 것을 잊고(unlearn) 다시 배우는(relearn)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스포츠 선수에게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경기장 안에서의 ‘창의적 야성(wildness)’를 깨우는 가장 강력한 훈련이다. 독서는 그만큼 ​사고의 유연성을 뒷받침한다.

 

같은 팀의 또 다른 선수인 문현빈 선수는 성공한 메이저리거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느낀 바가 많았다고 그날의 수훈 선수로 선정된 후 방송의 인터뷰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책은 스스로가 경험하지 못한 수만 가지 상황을 간접 체험하게 한다. 독서를 통해 단련된 뇌는 타석에서 투수와의 수 싸움을 할 때 단순히 공을 보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볼 수 있도록 해 주며, 언어화의 힘 또한 길러 준다.

 

자신의 부진 원인을 논리적으로 언어화할 수 있는 선수는 슬럼프 탈출 속도가 빠르다. 막연하게 ‘안 맞는다’고 느끼는 것과 ‘타격 메커니즘의 어느 지점이 어긋났다’고 분석하는 것의 차이는 독서로 다져진 문해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뇌’가 만드는 획기적 발전의 사례


메이저 리그의 전설적인 투수나 타자들 중에는 의외로 ‘독서광’이 많다. 그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끊임없이 상대의 투구 패턴을 공부하고, 심지어 물리학과 심리학 서적을 뒤적이며 자신의 퍼포먼스를 연구한다.

 

<​사례1: 스즈키 이치로의 철학적 루틴>

 

일본이 낳은 세게적인 메이저리거인 스즈키 이치로는 매일 똑같은 훈련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매 순간 자신의 감각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고도의 인지 활동이 있었다. 그는 야구를 ‘수행’으로 여겼고, 그 바탕에는 깊은 사유와 공부가 있었다.

 

<​사례2: 혁신학교와 공교육의 시사점>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이 ‘학력 저하’를 가져온다는 세간의 오해가 있지만, 실제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독서하며 토론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문제 해결 능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기계적 훈련으로 쌓은 점수는 대학 입구에서 멈추지만, 공부하는 습관으로 단련된 뇌는 평생 성장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교육 당국과 운동 지도자들에게 던지는 제언: ‘기술자’가 아닌 ‘철학자’를 길러라


이제 우리는 스포츠 현장과 교실에서 ‘훈련의 양’을 자랑하는 문화를 끝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지적 자극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선수들에게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을 줄여서라도 독서와 토론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선수의 수명을 늘리고 ‘K-스포츠’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다.

 

둘째, ​팀 내에서 질문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지도자는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 그렇게 쳤니?”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너의 뇌는 어떤 판단을 내렸니?”라고 물어야 한다.

 

셋째, ​평생 학습의 모델링을 만들어야 한다. “공부하지 않는 뇌는 썩는다”는 경각심을 지도자들부터 가져야 한다. 어제의 지식으로 오늘의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은 미래를 도둑질하는 행위다.

 

​노시환 선수의 부진은 비극이 아니라 ‘보약’이 되어야 한다. 2군에서의 시간이 단순히 배트를 더 많이 휘두르는 시간이 아니라, 책을 집어들고 자신의 야구 철학을 정립하는 ‘뇌의 재구성’을 위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

 

인간의 신체는 유효기간이 있지만, 지적 호기심과 창의력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기계적 훈련의 한계를 돌파할 유일한 열쇠는 결국 ‘공부하는 선수’에게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선수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100마일의 강속구를 치는 법이 아니라, 그 공이 날아오는 0.4초의 찰나에 온 우주를 읽어낼 수 있는 ‘생각의 깊이’다. ​평생 공부하는 뇌만이 승리의 환희를 넘어 성장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다.

 

이제 대한민국 교육과 스포츠는 ‘숙련된 기계’를 양성하는 곳에서 벗어나, ‘사유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곳이 되어야 한다. 노시환 선수가 주는 순간의 교훈이 모든 이 땅의 선수들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te@te.co.kr
Copyright Ⓒ 2024 (주)더미디어그룹(The Media Group). All rights reserved.

좋아요 싫어요
좋아요
1명
100%
싫어요
0명
0%

총 1명 참여




59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대표전화 : 02-850-3300 | 팩스 : 0504-360-3000 | 이메일 : te@te.co.kr CopyrightⒸ 2024-25 (주)더미디어그룹(The Media Grou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