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에게 지식뿐만 아니라 ‘공정’과 ‘평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가르치는 곳이다. 그러나 그 울타리 안에서 함께 일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의 처우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구조를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예고한 신학기 총파업은 단순히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다. 동일 공공부문 내에서 자행되는 부당한 격차를 바로잡고,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으려는 존엄의 외침이자 정당한 저항이다. 명절 휴가비 차별, 방치할 수 없는 불평등의 상징 갈등의 핵심인 ‘명절 휴가비 정률제 도입’은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다. 현재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받는 명절 휴가비는 연간 약 185만원 수준으로, 기본급 대비 89%에 불과하다. 반면 중앙부처 및 지방행정에 종사하는 공무직은 이미 기본급의 120%를 적용받는 정률제로 전환됐다. 같은 대한민국 공공부문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소속이 교육청이라는 이유만으로 30% 이상의 격차를 감내해야 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명절이라는 민족 공동체의 소중한 시간이 노동자의 신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현실은 명백한 차별이다. 교육청이 고수하고 있는 ‘정액제’는
더에듀 | 언제부터인가 방송에 등장한 또 하나의 의사소통 수단인 수어는 늘 누군가 나와 함께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는 든든한 정서적 동질감을 불러왔다. 처음에는 수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다소 산만하고 어색한 감정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더불어 살아간다는 시민의식의 발로이자 ‘공존’의 언어로 친근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수어를 배워야겠다는 동료 시민으로서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학교 교육에서 수어를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지정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제안하고자 한다. 지난 2월 3일은 ‘한국 수어의 날’이었다. 이날은 단지 수어통역사들의 노고를 기리는 기념일로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사유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수어 방송이 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재난 상황이나 국가적 위기 때마다 수어 통역이 제공되는 장면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정부 브리핑 화면 한쪽에서 쉼 없이 손을 움직이던 수어통역사의 모습은 단순한
더에듀 | 공교육 현장은 평등한가.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권리는 모든 아이에게 균등하게 주어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현실은 아니오(NO)다. 수업을 위한 학습교재, 준비물, 그리고 교실 밖 세상을 만나는 체험학습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누리는 ‘교육의 질’은 부모의 지갑 두께에 따라 이미 갈리고 있다. 학교는 무상이라지만, 그 안을 채우는 경험의 비용은 여전히 개별 가정이 짊어지고 있는 탓이다. 준비물 없는 학교, ‘기회’가 없는 아이들 정부는 ‘준비물 없는 학교’를 표방하며 예산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학교가 일괄 구매하는 방식은 현장의 다양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예산 전용 논란마저 끊이지 않는다.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교재나 예체능 준비물은 사비를 들여야 하는 형편이다. 특히 현장 체험학습은 어떤가. 누군가는 해외로, 명소로 향할 때 경제적 형편 때문에 참가를 포기하거나 주눅 든 채 뒤따르는 아이들이 우리 교실에 존재한다. 이 ‘소리 없는 차별’이 아이들의 자아 형성에 어떤 상처를 줄지, 교육 당국은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해외는 이미 ‘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인다 교육 선진국들은 이미 ‘바우처’라는 직접 지원 수단을 통해 이 문제를 풀고 있다.
더에듀 |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계의 시선이 다시금 서울교육감 선거 경선과정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설계할 교육 수장을 뽑는 선거인만큼, 그 과정 또한 가장 교육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 논의가 본격화될 때마다 들려오는 ‘선거인단 모집’과 ‘경선 비용 부담’의 잡음은 교육자로서 참으로 뼈아픈 대목입니다. 본인은 지난 2024년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 후보로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경선과정의 문제점을 직접 경험하며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제는 그동안의 관행에서 벗어나 교육적이고 합리적이고 정의롭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교육감 선거는 미래세대인 유초중등 교육을 총괄하는 수장을 뽑는 선거이니만큼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선거인단 모집 방식’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경선의 한계 지난 보궐선거 당시 논란이 되었던 ‘1만 원 참가비’는 시민참여단 시민 참여의 문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후보 캠프 간의 세 대결을 부추기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추진위 측은 경선 비용 마련을 위한 고육지책이라 말하지만, 시민의 지갑을 빌려 경선을 치르는 방식은 민주주의의 본질과 거리가
더에듀 |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서 들려오는 ‘민주시민’이라는 구호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청사진이라기보다, 특정 진영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민주시민교육 추진계획’은 헌법 가치의 실천과 시민 역량 함양이라는 그럴듯한 ‘당의정’을 입고 등장했다. 하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제도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려는 위험한 시도가 엿보인다. 제도화라는 이름의 내파, 교육의 자율성을 잠식하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민주시민교육팀’을 신설한 데 이어, 향후 ‘학교민주시민교육법’ 제정을 통해 학생들의 역량을 지표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일견 체계적인 행정지원처럼 보이지만, 이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위험한 발상이다.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계가 아니다. 자신의 철학과 정신이 깃든 그릇에 지식을 담아 가르치는 존재다. 그 그릇이 어떤 질료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지식의 질량과 가치는 달라진다. 그런데 국가가 법과 지표라는 잣대로 그 그릇의 모양을 규격화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교사의 자율적 철학과 교육관을
더에듀 | “정답을 맞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왜 그렇게 되는지를 생각해 봐.”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속의 대사인 이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이 잃어버린 질문에 대한 가장 명확한 선언이다. 학생의 30%가 수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2학년에 이르면 그 비율이 40%에 이르는 현실은 더 이상 개인의 학습 부진이나 노력 부족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는 명백히 한국 교육 시스템의 위기이며, 그 중심에는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오류가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수학계의 난제인 ‘리만 가설’을 Q.E.D. 즉 ‘증명되었다’, 또는 ‘증명 끝’으로 마무리한 탈북 천재 수학자 이학성과 입시 경쟁의 최전선에 놓인 학생들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수학 교육의 전제를 해체하고 있다. 우리 교실에서 수학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선별의 도구로 기능한다. 특히 수능 수학처럼 정해진 시간 내에 빠르게 풀수록 우수하고, 틀리면 등급이 곤두박질해 낙오자가 된다. 수학 교실에서 질문은 진도를 방해하는 행위로 취급되고, 사고의 흔적은 답안지에서 삭제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생 한지우가 내뱉는 대사인 “
더에듀 | 대한민국 공교육이 벼랑 끝에 서 있다. ‘참교육’이라는 서정적인 구호 뒤에 숨어 학생들의 영혼을 특정 이념의 포로로 잡아온 전교조 등 정치교사 집단이, 이제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국가 공인 면죄부까지 손에 쥐려 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교육부 차원에서 이를 본격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그간의 교육적 일탈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해주겠다는 선언이자, 정권과 정치 교사 집단 간의 위험한 ‘이념적 야합’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전교조로 대표되는 정치교사 집단이 교실에서 자행해 온 행태는 가히 충격적이다. 어린 학생들을 빨치산 추모제에 동원하고, 북한의 역사 교과서를 연구 교재로 삼으며,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민중사관’을 주입해 왔다. 이는 단순한 교육적 다양성의 문제를 넘어선,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세대에게 자국에 대한 혐오와 특정 정파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심어주는 ‘정신적 가스라이팅’이다. 이들은 공교육이라는 공적 공간을 자신들의 정치적 해방구로 여겨왔다. 교단은 학문적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 아니라, 민노총의 투쟁 노선을 전파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홍위병을 양성하는 훈련장으로 변질되었다. 인헌고 사건에서 보듯, 교사와 다른 의견
더에듀 | 사람들은 ‘전국 일주’, 또는 ‘세계 여행’을 마치 삶의 로망처럼 간직하고 살아간다. 이를 부추기기라도 하듯 한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구호가 여행의 욕구를 자극하는 일등공신으로 작용했다. 퇴직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일반적인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고 싶다” 또는 “세계 여행”이라고 주저 없이 답하곤 했다. 이는 지금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여행도 일단 많은 기초 지식과 상식, 에티켓 및 즐기는 방법 등에 대한 기초적 배경을 갖춰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교육의 필요성을 부여한다. 이에 우리가 쉽게 접하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중에 부담 없이 보고, 즐기되 배움의 교육적 효과를 톡톡히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토요일 아침, 조용히 창문을 두드리는 햇살과 함께 익숙한 멘트가 흐른다. “낯선 길 위에 선 여행자, 그가 걷는 곳엔 언제나 이야기가 있다.” 바로 KBS의 장수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그렇게 우리 곁에 스며든다. 겉으로는 단순한 여행 다큐처럼 보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 시청자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공감과 이해의 감각을 길러주는 교육
더에듀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꿈 하나쯤은 품고 산다. 어떤 이는 그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 마침내 손에 쥐고, 어떤 이는 아직도 멀리 보이는 그 빛을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다. 또 어떤 이는 뜻하지 않은 바람 앞에 무릎 꿇고, 결국 그 꿈을 끝내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그러나 삶의 참된 모습은 결코 한 가지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성공인 것이 다른 이에게는 공허일 수 있고, 화려한 성취가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각자의 처지와 가치, 방향이 다르듯 행복의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육십이라는 나이 문턱에 서서, 나는 비로소 조금은 알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긴 세월을 살아보니, 결국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원칙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첫째, 나답게 산다는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굳이 타인의 시선에 맞춰 숨을 죽일 필요는 없다.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의 모양새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지 않아도 된다. 나의 작은 목소리, 나의 느린 걸음, 나의 색다른 취향까지도 그대로 사랑하며 걸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
더에듀 | 한 국가의 미래는 어떤 인재를 길러내느냐에 달려 있다. 인재 교육의 성과는 시험 성적이나 스펙이 아니라, 공적 책임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서 드러난다. 최근 이혜훈 지명자를 둘러싼 공적 논의는 정치인의 자질을 넘어, ‘우리 학교 교육이 어떤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도덕성과 청렴성은 더 이상 부가적 덕목이 아니라, 인재 교육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도덕성은 지식 위에 세워져야 할 교육의 토대이다. 지식과 기술은 방향을 잃으면 위험한 도구가 된다. 공적 권한을 행사하는 위치에 설수록 도덕적 판단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혜훈 지명자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원칙’과 ‘책임’은 학교 교육이 지향해야 할 핵심 가치와 맞닿아 있다. 학교는 옳고 그름을 암기시키는 공간이 아니라, 왜 그것이 옳은지 스스로 질문하고 성찰하도록 돕는 공간이어야 한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책임있게 바로잡고 회복하는 법을 교육해야 한다. 도덕성은 복잡한 상황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힘이다. 청렴성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청렴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선택과 반복된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