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느 나라나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특별히 남을 더 의식하고 비교 경쟁하는 데 익숙하고 그 정도가 유달리 심한 문화를 가진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 아닌가 싶다. 우리 교육 또한 본의 아니게 비교 경쟁 방향으로 지금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 교육의 결과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장단점으로 극명하게 나뉘어 발현되었다. 불과 50년~60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최빈국 대한민국이 지금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10대 경제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되려 OECD국가 중 맨 꼴찌이고 자살율은 15년 이상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출산율 0.7를 기록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직에서 선생님으로 존경을 받고 제자들에게 사랑을 주던 긍지와 보람이 가득했던 시절은 '아 옛날이여'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설과 여건은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나아졌지만 교직에서 누리는 행복은 점점 더 실종되고 사라져 갈 것 같은 분위기이다. 오늘날 많은 선생님이 명예 퇴직에 줄을 서고 있고 휴직계를 제출하는 선생님도 부지기수이다. 경제가 나아지
성인 한 사람의 세포 수는 60조개 정도 된다. 우리 몸의 세포들이 쉼 없이 운동하고 생명 활동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에너지가 필수이고, 잘 흘러 공급되어야 한다. 좋은 에너지, 살아 있는 에너지는 건강한 음식에 포함돼 있다. 반대로 죽은 음식, 몸을 병들게 하는 에너지 역시 음식에 포함돼 있어 섭취하면 나쁜 에너지, 즉 독이 된다. 건강한 음식을 통해 섭취된 에너지는 우리 몸 곳곳을 돌아 다니며, 각 세포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해 세포들을 살리고, 보수하고, 청소하고, 재생하는 과정을 통해 염증과 병을 치료한다. 그러나 죽은 음식은 에너지의 흐름을 방해하고 세포에 독으로 쌓여 염증과 병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건강한 음식과 죽은 음식의 구분은 어떻게 할까?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자연 그대로의 음식과 집밥은 건강 음식이고, 공장에 들어갔다 나온 가공 음식은 죽은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제철에 나오는 토마토를 씻어서 한 입 먹는 것과 공장에서 나온 토마토 쥬스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칼로리는 같을 수 있지만 하나는 내 몸을 살리는 음식이고 다른 하나는 내 몸에 독이 될 수 있는 음식이다. 그렇다고 매
성경에 보면 신이 사람을 흙으로 만들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는 일이다. 바로 살아있는 에너지 ‘생기’다. 우리 말 ‘사람’의 어원은 ‘살아있음’의 준말이다. 살아있다는 말은 숨을 쉬고 움직인다는 말이다. 바로 에너지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란 하나의 무기체 물질 덩어리가 아닌 바로 살아있는 유기체 에너지 그 자체라는 말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사람 자체를 에너지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에너지는 흐름이 좋아야 한다. 양극에너지와 음극에너지가 조화를 이루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계속 흘러야 한다. 에너지가 잘 흐르지 않거나 멈춰 있으면 독이 생겨 염증과 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의 에너지에는 혈액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혈액은 첫째, 생명을 보존하게 하는 산소를 몸 세포 구석구석 운반하고 공급하는 일을 한다, 둘째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소 에너지를 온 몸 세포에 공급하는 일을 한다, 셋째는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균을 죽이고 병을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 내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혈액 순환이 잘 되고, 순환하는 혈액이 얼마나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느냐에 달려
‘선생’이라는 말은 제자보다 먼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제자들에게서 인생의 참 의미와 행복을 맛보며, 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내게 이미 주어지고 정해진 운명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삶을 바라보는 눈과 대하는 태도, 바로 내 마음의 창틀은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고 변화한다. 우리는 내 운명이 꽃길만 걷기를 바라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오개념과 고정관념에 빠져 평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 오아시스와 같고 불행으로 이끄는 욕심일 뿐이다. 세상이 내가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면 얼마나 좋겠나 만은 지구상에 그런 인생은 없다. 아파트 101동에 사는 사람이나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이나 겉모습을 벗기고 보면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진짜 오래가는 행복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 곧 긍정하고 감사할 수 있는 행복 프레임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변하지 않는 환경을 바라거나 탓하지 말고 주어진 운명에 감사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깨닫고 재미를 느낀다면 날마다 성장하는 삶으로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할 것이
내가 교직을 처음 시작한 1990~2000년대 초까지는 선생님들 사이에 승진하는 것이 나름 중요했고, 은연 중에 교장 관리직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선생님들 사이에 많았다. 교장은 그만큼 존경받는 위치였으며, 큰 권한을 갖고 소신껏 학교 경영을 펼쳐 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2020년대 이후 최근에는 교장직을 그렇게 간절히 선호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 또한 그렇다. 그 이유는 과거의 교장직이 누렸던 권위나 권한보다는 책임과 의무가 늘고, 더 많은 희생과 수고가 요구되는 봉사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학교 문화가 변하고 학생이 변하니 교사도 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변하기 때문에 교장도 마찬가지로 변해야 한다. 시대에 맞춰 끌려가라는 말이 아닌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해 앞서서 변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학교에 작년에 부임하신 새 교장을 소개하고 자랑하며 이 시대에 맞는 교장 관리자 상을 제시하고 싶다. 우리 학교 교장은 크게 세 가지가 참 좋다. 첫째는 교사에 대한 편애가 없고 모든 교사를 존중과 배려해 주려는 정성과 수고가 교사들에게 큰 감동과 고마움을 준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교사라고 예외일 수
4학년 1반 선생님이 학교폭력 담당부장 교사인 나를 찾아와 상담을 했다. 어제 점심시간에 반 대항 여자 피구대회를 마친 후 자기 반 이예은(가명) 학생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내용인즉슨 예은이가 3반 송하연(가명) 학생이 던진 공에 맞아 손가락을 다쳐 병원을 다녀왔다는 말과 함께 경기 중 다치게 한 학생으로부터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3반 선생님도 송하연(가명)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아 당황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의 일이 부모님 싸움으로 크게 번질 것 같은 상황이었다. 학교폭력 일은 아주 사소한 일도 초기 진화를 잘못하면 크게 번지게 된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담임교사와 학교폭력 담당 교사는 당황하지 말고 차분한 마음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위를 살피는 것인데, 학부모나 주변 사람 이야기로 상황을 짐작해 판단하면 정말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하연 학생을 조용한 공간에 불러 따듯하게 맞이해 안심시키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은 “경기에 열심히 집중했고 예은 학생을 개인적으로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마음도 없었으며 그런 관계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
인간과 AI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무의식적 감정을 갖고 있지만 이를 의식적으로 완전히 통제하기 불가능하다. 반면 AI는 실제 감정은 없지만 프로그램으로 감정을 콘트롤 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인간은 의식하든 무의식이든 감정을 자동으로 느끼지만, AI는 조정된 프로그램에 의해 반응할 뿐이다. 이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선생님이 사명감 높고,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고, 교육과정을 충실히 수행해도, 학생들의 학습 활동이 계획대로 왕성하거나 그 성과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몸과 마음 상태, 곧 밝은 얼굴과 긍정적 태도로 행복하게 수업과 학급 경영을 할 수 있느냐이다. 이는 학생들의 학습력과 학교 교육 성패의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교사가 업무에 과도하게 분주해 있고, 심신 스트레스가 가득하면 부정적 기운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건강하고 행복한 학급경영과 충실한 교육과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교사가 행복하면 밝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수업 태도와 학교 생활도 행복하고 충실하게 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이 시행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학교폭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고 해결책 또한 갈수록 더 어렵고 힘들어지고 있다. 이 문제로 많은 선생님이 조기 퇴직이나 명예퇴직으로 학교를 떠나고 있어 뼈 아프게 다가온다. 여러 번 개정을 진행하며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시스템과 매뉴얼을 도입했지만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10년 이상 주무 담당했던 교사로서 느끼는 바를 적어 본다. 첫째, 학교 폭력의 본질적 변화를 놓치고 있다.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으로 그 정의가 ‘학생 간 일어나는 폭력’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으로 크게 변화했다. 이는 학생이 학교폭력의 주체에서 객체로 변화한 큰 의미를 담고 있다. 학생이 학교 폭력의 주체일 때에는 교사가 잘잘못 시비를 가려 교육적 지도와 처벌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면, 객체로 전락하면서 그 주체가 학부모가 되어 버렸다. 시작은 학생들 간 사소한 폭력으로 시작됐지만 해결은 학부모 간 큰 다툼을 통해야 하는 방향으로 바뀐 결과를 가져왔다. 학교폭력 피해자 학생과 가해자 학생은 이미 용서하고 화해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양측 학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