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문제행동을 보인 아이,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제행동을 보인 아이를 보면 우리는 아주 따끔한 벌을 주고 싶습니다. 따끔한 벌을 주면 어쨌든 문제행동을 멈추니깐요. 저는 벌이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은 벌을 받고 싶지 않아서라도 문제행동을 일시적이나마 멈춥니다. 이건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어른들도 '벌'을 받고 싶지 않아 법을 지키고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행동을 해도 아무런 불이익도 없는 사회와 교실보다는, 벌과 엄격한 규율이 있는 사회와 교실이 저는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까지 부정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학교라는 공간은 일반적인 사회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어쨌든 교육을 하는 공간이니까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학교, 교실에서 벌이 행해지는 방식은 ‘교육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교실에서 벌이 이루어지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언제나 기억해야 할 생활지도의 첫 번째, 공감하기 친절하며 단호하다는 건 ‘감정에 친절하고 행동에 단호’하다는 것이라 했습니다. 뭔가 있어 보이게 써서 그렇지 사실 진짜 별거 아닙니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감정 공감 먼저 한 번 해주고 혼내라!’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혼내는 것과는 다르긴 하지만, 뭐 거칠게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말은 쉬운데 실천하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이전 글에서 말했듯, 많은 교사가 교권 사태 전후로 아이들 감정 읽어주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딱히 부정적이지 않은 교사들조차도 감정 읽어주기를 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릴 적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에게 딱히 공감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성인과 학생은, 더 보편적으로 나이 많은 사람과 나이 어린 사람은 좋든 싫든 수직적 관계를 강요받았고, 이런 관계에서는 공감이 들어설 자리가 딱히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조선미 교수에게 실망한 까닭은 육아 교육 분야에서 한창 뜨고 있는 조선미 아주대 교수는 최근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라는 제목의 직무연수를 열었습니다. 마치 라디오 상담처럼 교사가 자신이 힘든 점을 적어 사연을 보내면, 조 교수가 그 사연 중 하나를 골라 조언해 주는 형식으로 꾸려진 연수였습니다. 한 교사가 ‘친절하지만 단호한’ 교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식의 사연을 보냈는데 조선미 교수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친절하지만 단호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건 이상적이며 비현실적 욕구이다. 친절과 단호함을 조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쁜 사람으로 비추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다. 다정할 땐 다정하게, 엄격할 땐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 일견 타당한 말이기도 합니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두려워 단호해야 할 때 단호하지 못하는 걸 꼬집는 것 같기도 합니다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교사들은 엄하고 무섭습니다. 요즘은 선생님들이 너무 친절해서 문제 아니냐고요? 그 또한 맞습니다. 너무 친절하거나, 친절하기‘만’ 한 건 분명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 전 글(‘친구 같은 교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에서 충분히 다뤘으니 넘어가도록 할게요. 그런데 정말 학교에는 친절한 선생님이 넘쳐날까요?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교권 사태는 정말 선생님들의 친절함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요? 제가 직접 보고 느낀 바로 학교에는 두 부류의 교사가 공존합니다. 무서운 선생님과 친절한 선생님 모두 있습니다. 학교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절반 정도는 무섭고 절반 정도는 친절합니다. 물론 무서운 선생님도 때로 친절하고, 친절한 선생님도 때로 무서울 때도 있어서 칼로 무 자르듯 딱 나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어떤 성향을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비해 친절한 선생님이 많아진 건 맞습니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초임 교사, ‘친구 같은 교사’를 꿈꾸다 저는 처음 교사가 되면서, ‘친구 같은 교사’를 꿈꾸었습니다.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은 데에는 제 학창시절 과거가 한몫했습니다. 제 중학교 시절은 정말 처참했습니다. 다른 글에서 쓴 적이 있는데, 제가 다닌 중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깡패였습니다. 거의 모든 선생님이 매를 들고 왔고, 조금만 떠들어도 손바닥은 기본이고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은 매타작으로 멍들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간혹 매를 들고 오지 않는 선생님도 계셨는데, 매 대신 우리는 싸대기를 맞았습니다. 준비물 안 갖고 왔다고, 그들이 때리기 좋으시게 제 얼굴을 살짝 기울여 자리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점점 제 차례가 다가올 때는, 긴장감도 그런 긴장감이 없습니다. 쇠몽둥이로 단체 엎드려뻗쳐 자세로 엉덩이 맞기, 도미노처럼 일렬로 서서 싸대기 줄줄이 맞기, 바리깡으로 머리 고속도로 나기, 한 시간 동안 엎드려뻗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그랬다. 일단 남중이었고, 그래서인지 어둡고 칙칙했다. 건물이 길게 일자형이었던 이 학교는 정확히 절반은 중학교, 절반은 상고였다. 그러니까 복도의 한쪽 선을 넘으면 거기부턴 고등학교(그것도 소문이 안 좋았던)가 되는 거였다. 교문을 들어서면 그 앞에서 우리를 맞는 것은 덩치 큰 고등학교 선도부들이었다. 다행히도, 고딩들이 우리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화장실은 전교에 달랑 한개, 그것도 건물 밖에 있었고 소변기는 철판형이어서 오픈된 채로 볼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철판에 물은, 나오지도 않았다. 그 중학교는 그랬다. 선생들이 모두 깡패였다. 어찌나 애들을 패던지, 나 같은 모범생도(부끄럽지만, 난 모범생이었다) 허벅지에 피멍 들기가 일상이었다. 손바닥,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 등 안 맞아본 곳이 없다. 싸대기? 물론 그것 또한 일상이었지. 미술 준비물 안 가져왔다고 우리는 각자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지난 8일 김승현 선생님이 <더에듀>에 게재한 ‘05년생 교사가 온다: 성과급 그리고 세대별 공정성 담론의 변화’라는 글을 통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게 되어 좋았으나 큰 줄기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글을 쓴다. 건강한 말들이 오갔으면 좋겠다. 성과급 제도, 가치 논쟁이 문제인가 김승현 선생님은 “성과급 폐지 담론의 근거가 사실에 대한 정확한 해석보다 성과급 제도 자체에 대한 가치 논쟁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이 매년 일선 학교의 다면평가 관리위원회에서 ‘이런 회의는 없어져야’, ‘성과급이 없어져야’와 같은 공염불로 끝나는 까닭이다”라고 했다. 또 “사실근거에 기반한 반대논의가 아니다 보니 논의의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논쟁의 초점은 성과급이 과연 교육 현장에 적합한 보상 제도인가 하는 가치문제로 엉켜있다”고도 진단했다. 그러면서 “공정 담론에 초점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다시 바스러졌다. 한 목숨이 또 사그라졌다. 제주도에 자리 잡은 한 중학교. 이 중학교 교사 ㄱ씨는 ㄴ군의 지속된 문제행동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아프다며 학교를 나오지 않으려 하자 “병원 갔다가 학교 오라”는 ㄱ선생님의 그 단순한 카톡 속에서, 무뚝뚝하지만, 아이를 생각하는 살뜰한 마음이 느껴졌다. 무단 결석을 피하고자 ㄴ군에게 진료서 등 증빙서류를 가져올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아직 중3인 ㄴ군은 담배도 피웠다. ㄱ교사는 흡연 지도도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교사로서 할 수 있는 배려 섞인 지도가 ㄴ군 누나에게 왜, 어떻게 다가왔길래 그런 것일까. “아이가 ㄱ교사 때문에 학교를 가기 싫어한다.”, “ㄴ군에게 폭언을 했느냐”라는 취지로 ㄴ군 누나는 항의했다. ㄱ교사는 5월 18일까지 줄곧 민원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전화는 더욱 빗발쳤다. 하루에만 12통의 전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오전
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그랬다. 일단 남중이었고, 그래서 어둡고 칙칙했다. 건물이 길게 일자형이었던 이 학교는 정확히 절반은 중학교, 절반은 상고였다. 그러니까 복도의 한쪽 선을 넘으면 거기부턴 고등학교(그것도 소문이 안 좋았던)가 되는 거였다. 교문을 들어서면 그 앞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덩치 큰 고등학교 선도부들이었다. 다행히도, 고딩들이 우리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화장실은 전교에 달랑 한 개, 그것도 건물 밖에 있었고 소변기는 철판형이어서 오픈된 채로 볼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철판에 물은, 나오지도 않았다. # 그 중학교는 그랬다. 선생들이 모두 깡패였다. 어찌나 애들을 패던지, 나 같은 모범생도(부끄럽지만, 난 모범생이었다) 허벅지에 피멍 들기가 일상이었다. 손바닥,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발바닥 등 안 맞아본 곳이 없다. 싸대기? 물론 그것 또한 일상이었지. 미술 준비물 안 가져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