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해마다 8·15 광복절을 전후해 동해의 작은 섬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은 어김없이 뜨거워진다. 올해 역시 일본 정부는 한국 조사선의 독도 주변 해양 조사에 항의하는 정례적 정치 공세를 반복했고, 한국 정부는 엄중한 독도 영토 주권을 재천명했다. 지난 수십 년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어 온 이 소모적 갈등은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해치는 깊은 우울한 정서를 대신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학계의 객관적 자료, 심지어 일본 자국의 근대 역사 기록조차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억지 주장은 그칠 줄 모른다.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진실을 외면하는 일본의 태도를 언제까지 비탄하고 분노하기만 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감정적 대응의 굴레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Fact)과 보편적 교육(Education)의 힘으로 이 오랜 갈등의 고리를 끊어낼 획기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설적이게도 일본 스스로가 만든 관공서의 공식 기록이다. 1877년 태정관 지령(太政官指令)에 의하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최고 국가기관이었던 태정관(현재의 내각)
더에듀 | 우리는 그동안 교사와 학교를 지키기 위한 국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해 왔던가? 여기에는 온갖 말과 ‘교권 5법’이란 법조문만이 난무할 뿐 실제로는 실천하는 행동에 따른 실질적인 효과가 없음에 아쉬움만을 토로해 왔다. 하지만 최근 안민석 경기도 교육감이 직접 자신이 만든 ‘교권보호단’의 출범에 즈음하여 많은 고민과 결단 끝에 드디어 강력한 행동에 옮기는 결단을 발휘해 교육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교사를 지키고 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강력한 교육 철학에 근거해 “교사 협박을 용납할 수 없다”는 용기 있는 남다른 의지이기에, 이전의 형식적인 법조문 상의 교육감의 권한과는 달리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은 이 나라 교사와 교육을 위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우려를 불식하고 향후 우리 교육에 대한 기대와 함께 희망을 불어넣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바른길을 지도하는 것은 교사 본연의 숭고한 교육 행위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교실에서 이 정당한 교육활동은 종종 가혹한 대가를 요구받는다. 다툼을 말리고 훈육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자식 지상주의’에 따른 극심한 이기적인 학부모에 의해
더에듀 |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도 뼛속에 각인되는 첫 문장을 꼽으라면 단연 레프 톨스토이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의 도입부일 것이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 불멸의 통찰을 오늘날 대한민국의 학교 현장에 대입해 보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잘나가는 행복한 학교는 서로 닮았고, 사사건건 시끄러운 불행한 학교는 저마다의 기상천외한 이유로 흔들린다.” 우리 주변의 학교들의 실상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 보자. 어떤 학교는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 그리고 학부모회까지 톱니바퀴 돌듯 맞물려 평화로운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반면, 어떤 학교는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퇴근길까지 교권 침해, 악성 민원, 학교폭력, 부서 간 갈등이라는 불협화음의 헤비메탈이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전국으로 번져가는 이 불행한 학교들의 ‘제각각인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이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글에서는 인간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면서 학교 공동체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해법을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사사건건 충돌하는 학교들을 들여다
더에듀 |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거창한 말을 꺼내기가 너무 민망하고 학교가 이렇게까지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고 미처 돌아가는 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작년 8월 서울의 한 특성화 고교 ‘인공 지능 활용 능력 민간 자격 시험’에서 발생한 집단 부정행위 사건이 그것이다.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이토록 윤리적 도덕 해이 상태로 추락한 것인지 심히 공포스럽다. 이는 지난 7월 31일, 1년이 다 되어 가는 현시점에서 뒤늦게 언론 매체인 위키트리 기사와 YTN 보도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지난해 8월, 인공지능 활용능력 민간 자격시험이 열린 한 서울의 고교 교실에서 상식적으로 1도 납득하기 힘든 비리가 저질러졌다. 시험을 감독하고 학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교사가 앞장서 우수 학생의 답안을 사진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비대면 실시간 카메라 감독을 피하기 위해, 노트북 화면에 답안을 띄워 칠판 크기로 확대해 교실 전체에 공유했다. “1번은 무엇, 2번은 무엇”이라며 교사가 직접 ‘집단 커닝’의 판을 깔아 주었다. 이것이 과연 신성한 배움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이렇게까지 해서 시험을 쳐야 하나 회의
더에듀 | 두말할 나위 없이 교육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은 그 미래를 살아갈 주체를 세우는 일이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가 제시한 ‘학교 시민교육 국가기준안 원칙(案)’ 시안은 표면적으로는 교실 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편향되지 않은 균형 잡힌 시민을 양성하겠다는 원대한 목적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 매끄러운 수식어를 한 꺼풀만 벗겨보면, 현장 교사들과 학생들의 목을 짓누르는 육중한 ‘지침의 바위’가 얹혀 있음을 보게 된다. 이 거창한 원칙의 본질은 무엇이며, 왜 이것이 우리 교육의 미래를 오히려 가로막을 수 있는 걸림돌이 될 위험을 안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시안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정치적 중립성’의 엄격한 준수다. 교실 안에서 교사가 특정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쟁점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균형 있는 시각 제공’이다. 찬반이 대립하는 이슈를 다룰 때는 반드시 양측의 주장을 동등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셋째, ‘헌법적 가치의 존중’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와 기본권을 교육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언뜻 들으면 나무랄
더에듀 | 지금도 생생하게 세월을 거슬러, 매년 고3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작성 기억에 따른 특별한 감응과 경험을 소유하고 있다. 오랜 진학지도 담당자(고3 학급 담임 및 학년 부장)로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상황을 배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학생부를 작성한 기억 말이다. 특히 집중적인 학생부 작성 기간에는 잠을 설치며 마치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해 한 편의 인생 보고서를 쓰듯이 개요 짜기, 작성하기, 탈고 등의 총체적인 순서를 거치며 교육자로서의 혼을 갈아 넣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때는 자다가 생각이 나면 벌떡 일어나 입력을 하기도 했으며, 꿈속에서조차 학생 개개인의 세부능력 및 종합 특성을 다듬는 몰입의 과정이 연속되었다. 오랜 경험을 거듭하면서 평소에 조금씩 수업반 학생들이든 담임반 학생들이든 한 명 한 명의 데이터를 축적해 입력함으로써 한꺼번의 집중적인 작업의 부담을 더는 슬기로운 지혜로 발전시켰다. 적어도 교육자로서 지도한 학생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였으며, 교육자의 양심에서 허용하는 작은 의무이기도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사와 학생 간의 깊은 신뢰로 이어지고 일부 학생들은 나중에 자신의 학생부를 확인하고 어떻게 이
더에듀 | 최근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HOPE)〉가 극장가에서 모처럼 대형 스크린을 잠식하고 있다. 이는 한국 영화가 거둔 기술적 성취와 독창적인 SF적 상상력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인 동시에, 극단적인 자극성과 피로감, 불친절한 서사 구조라는 한국 대중 영화의 고질적인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양날의 칼이라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영화가 던진 ‘구원과 믿음’이라는 묵직한 주제 의식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귀를 찌르는 상스러운 욕설과 후반부 외계인의 난해한 대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예술적 감흥을 느끼기 전에 정서적 피로감과 단절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것이 영화 창작의 의도일까, 하는 의혹이 일었다. 이 글에서는 이 작품이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대한민국이 낳은 격조 높은 SF 마스터피스’로 우뚝 서기 위해, 그리고 교육적·인문학적 울림을 주는 진정한 창작물로 거듭나기 위해서 필요한 질적 발전과 개선 방향을 몇 가지 차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우선 감정적 과잉과 욕설의 남발은 ‘자극’을 넘어선 ‘절제’의 미학을 요구한다. 많은 영화가 물의 극단적인 처지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시종일관 거친 욕설과 고함을 도구로 삼고 있다. 〈호프(HOPE)〉
더에듀 | 장맛비가 잠시 주춤한 제헌절인 17일, 전국의 교사들과 교육감들이 ‘아동복지법 개정’ 요구 집회에 참여했다. 이는 지난 주말, 거대한 ‘검은 파도’로 뒤덮인 서이초 교사 3주기 추모식을 겸해 광화문 광장의 집회에 이어진 것이다.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수만 명의 초·중·고 교사들이 뜨거운 지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외친 슬로건은 단 하나, 헌법에 기초한 “가르칠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제헌절 집회는 여느 노동조합의 이익 투쟁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현장에는 경기교육감과 인천교육감 등 수도권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들이 나란히 참석해 ‘아동복지법 즉각 개정’이라는 팻말을 들고 교사들과 함께 아스팔트 위에 앉았다. 진보와 보수라는 정파적 이념을 넘어, 교육감들이 현직 교사들의 거대 집회에 동참해 한목소리로 법 개정을 촉구한 것은 대한민국 교육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기억된다. 그들이 정장의 체면을 내려놓고 뜨거운 거리로 나선 이유는 명확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무능하거나 무도해서가 아니라, ‘아동학대 처벌’이라는 학교의 사법화가 교사의 손발을 묶어버린 ‘제도적 질식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이 절박한 투쟁의 이면을 짚어보
더에듀 | 최근 스포츠계를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요즘 선수들은 AI 로봇과 경쟁하는 걸까, 아니면 인간과 공을 차는 걸까?” 바야흐로 ‘벌크업’의 시대다. 터질 듯한 이두박근, 첨단 데이터 분석으로 칼같이 조율된 식단, 그리고 분당 심박수까지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까지, 바야흐로 ‘기계적인 훈련’과 ‘강철 근육’이 지배하는 그라운드다. 하지만 우리는 첨단 과학 기술이 정점에 달한 이 시대에 오히려 아주 구식이고 아날로그적인 매력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인성(Humanity)’이다. 근육은 100미터를 10초에 주파하게 만들지만, 훌륭한 인성은 그 선수를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주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오늘날 스포츠 선수 육성 패러다임이 왜 ‘식스팩’에서 ‘마음의 근육’으로 이동해야 하는지, 역사적인 사례를 통찰함으로써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인생 역전’ 혹은 ‘인성 역전’의 서사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의 이야기로 시작해 본다. 간혹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팬들이 친근하게 ‘네시(Nessi)’ 혹은 ‘축구의 신’이라 부르는 그 선수, 맞다. 바로 리오넬 메시다. 혹시 시간을 거슬러 그가
더에듀 | 최근 지구촌 교육계를 뜨겁게 달군 뉴스가 있었다. 미국 아이비리그와 유럽의 유서 깊은 명문대들의 러브콜을 단칼에 거절하고, 대한민국 서울대학교의 ‘전액 장학금’ 카드마저 정중히 거부한 베트남의 천재 소녀, 호앙 흐엉 지앙(Hoang Huong Giang)의 이야기다. 그녀는 베트남 고교 졸업시험에서 수학, 물리, 영어 합산 29.75점이라는 경이적인 점수로 수석을 차지한 AI 꿈나무다. 전 세계 대학들이 모셔 가려고 안달이 났던 그녀가 최종 안착한 곳은 서울의 화려한 유혹이 아닌, 밤낮으로 연구실 불이 꺼지지 않는 대전의 KAIST(한국과학기술원)였다. “KAIST가 한국의 ‘MIT’라 불릴 정도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명성이 높아 최종 선택했습니다. 무엇보다 놀거리가 많은 서울보다는, 학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KAIST가 제 꿈을 펼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확신했죠.”(호앙 흐엉 지앙 인터뷰 중에서). 놀거리가 많아 서울대를 거절했다니, 전국의 수험생들이 들으면 “이게 무슨 배부른 소리냐?”하며 놀랄 일이다. 하지만 과학에 미친 영재들에게 KAIST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천재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