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 매년 10월 9일, 우리는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리는 국경일로 지정된 ‘한글날’을 맞이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한글날은 1991년에 경제 성장을 내세워 ‘공휴일 조정’이라는 이유로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2012년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서 2013년부터 다시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국민 여론의 80% 이상이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한글날은 제579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다시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이 된 것인가?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한글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특별한 시간을 각기 위해서였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만든 글자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로 창제되어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과학적인 문자로 유네스코에서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를 넘어, 민족의 혼과 얼이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다매체·다언어 환경 속에서 한글의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는 일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교육적으로도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과제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언어는 정체성의 뿌리이다
언어는 한 사람의 사고를 형성하고, 사회와 소통하며, 문화를 계승하는 가장 근본적인 도구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하였다. 이는 곧, 우리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과 글의 수준이 곧 그들의 사고력, 감수성, 문화적 깊이를 반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는 외래어와 신조어의 무분별한 사용, 줄임말과 비속어의 일상화 등 언어 감수성을 위협하는 현상이 점차 심화하고 있다. 디지털 소통이 일상화된 시대일수록, 족보에도 없는 희한한 우리말이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어 이에 대한 올바른 사용과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언어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삶의 언어 교육’으로
기존의 언어 교육이 문법 지식과 독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언어를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실천하게 하는 교육적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한글날과 같은 뜻깊은 날은 우리말 교육의 방향을 되돌아보고, 교육 현장에서 실천가능한 언어 감수성 교육의 기회를 마련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요즘은 학생들의 일상에서 문해력의 결핍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어 우리 말과 글의 사용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교육청의 2023년 ‘학교 언어순화 활동 사례집’에서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우리말 지킴이’ 동아리 활동을 운영하며 학생들이 일상 언어에서 외래어를 우리말로 순화하거나, 줄임말 대신 온전한 표현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활동에 참여한 한 학생은 “무심코 사용하던 말들이 우리말의 품격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학생 주도의 언어 실천 활동은 말과 글의 소중함을 단순히 ‘앎’의 차원을 넘어 ‘삶’ 속에서 체득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좋은 교육 사례라 할 수 있다.
가정·지역사회와 연계한 언어·문화 교육
하지만 언어 교육은 학교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정과 지역사회 역시 언어·문화 형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할머니·할아버지와의 세대 간 대화로 이어지는 격대 교육, 지역 방언의 이해와 존중,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독서와 글쓰기 활동 등은 우리말의 다양성과 정서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특히 사투리와 방언은 단순한 구어체가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정서, 공동체적 유대를 담고 있는 ‘살아있는 언어’이다. 이를 교육적으로 조명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 또한 바람직한 언어·문화 교육의 일환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교육을 보다 효능감 있게 실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디지털 시대의 언어, 다루는 방식이 중요하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언어 공간은 온라인이다. SNS, 유튜브, 메신저 등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언어 사용은 그 자체로 중요한 교육적 주제가 되었다. 비속어, 혐오 표현, 과도한 축약어 사용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를 넘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윤리의식, 책임감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언어 사용의 책임성과 예절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언어교육’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며, 말하는 방식은 곧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는 사실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몫이라 할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한글날은 단순한 기념일로 인식되어 단지 쉬는 날이라는 생각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의 말과 글을 되새기고,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계승할지를 고민하는 날이어야 한다. 세종대왕의 창제 정신은 백성을 위한 따뜻한 위민정신과 소통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철학은 오늘날 교육에도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테는 그의 소설 ‘마지막 수업’에서 외국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받아 자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제와 억압을 당해도 자기 나라의 말을 쓰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나라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감동적인 마지막 수업을 학생들에게 남긴 바 있다.
이처럼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그 민족의 정체성과 기억, 존재 의식을 담고 있는 소중한 자산임을 밝히고 있다.
요즘 국적을 알 수 없는 각종 외국어에 의해 위상을 잃어가는 우리 말과 글은 우리가 더욱 아끼고 사랑하여 지켜야 할 ‘전통’인 동시에, 가꾸어야 할 ‘현재’이며, 물려주어야 할 ‘미래’이다.
교육은 그 연결고리로서 가장 큰 책임을 지닌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우리말을 통해 스스로를 더 정확히 이해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세상과 건강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은 곧 한글을 온전히 기념하는 길이자, 품격 있는 교육의 시작이라 믿는다.
한글날을 맞이하면서 이 땅의 우리들은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