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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요!] 금산간디학교 “길 위에서 배우고, 글로 완성하다”

삶을 가르치는 작은 학교의 이야기


시험 대신 길을 걷는 아이들


충남 금산 진악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학교, 금산간디학교. 이곳에는 성적표도, 등수도 없다. 아이들은 시험 대신 길을 걷고, 졸업시험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이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배움이란 ‘지식을 암기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관계를 배우는 일’이라고 믿는다. 한국의 교실이 여전히 입시와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금산간디학교의 교실은 천천히 숨을 고른다.

 

아이들은 오늘 배운 수학보다, 오늘 만난 사람과 자연을 더 오래 기억한다. 배움은 교과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 있고, 스승은 교사뿐만 아니라 사람과 풍경이며, 공부의 목적은 진학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발견하는 일로 받아 들인다.

 

“공부는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교사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말이다. 그 단순한 신념이 이 학교의 모든 교육을 움직인다.

 


사랑과 자발성으로 살아가는 학교


금산간디학교는 비폭력과 평화의 철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전일제 대안 중·고등학교이다. 2008년 개교한 이후 줄곧 ‘사랑과 자발성으로 행복한 학교’를 목표로 해왔다.

 

교과는 일반 교과를 중심으로 하되 영어·수학·과학 같은 지식교과뿐만 아니라 락밴드·시와 사진·어반스케치 같은 감성교과, 요가·축구·걷기 같은 건강교과, 제빵·미싱·요리하기 같은 자립교과를 함께 운영한다.

 

학생들이 친구들을 직접 가르치는 위치에서 수업을 운영하는 학생수업(클라이밍과 복싱)을 처음으로 개설해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도 있다.

 

학생 수는 학년별 20명 남짓, 각 반에는 담임교사 2명이 있어 아이들의 하루를 세심하게 살피고 함께 생활한다. 시험 대신 프로젝트와 발표로 성장을 평가하며 휴대전화는 쓰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면 대화로 풀고 회복적 생활교육으로 관계를 회복한다.

 

입학 첫 달에는 뮤지컬 캠프와 야영을 통해 공동체에 적응하고 2학년이 되면 15주 동안 필리핀에서 해외연수를 하며 언어와 문화를 몸으로 배운다. 울릉도와 독도를 탐방하고, 매 학기 파쿠르·조형예술 등 예술 집중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들은 이 시간을 통해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천천히 찾아간다.

 

졸업 후의 길도 다양하다. 일반고등학교를 비롯해 특성화 대안고등학교, 미인가 대안학교 등 다양한 경로로 상급학교에 진학한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 전공을 살리기도 하고 예술가로, 환경 및 마을 활동가로 또 친환경 농부로 살아간다.

 

학교는 아이가 세상 속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실현하고 있다.

 


길 위에서 배우는 생명교육


배움의 방식은 언제나 몸으로, 관계로, 경험으로 이어진다.

 

지난 9월, 학생들은 영덕에서 강릉까지 13박 14일 동안 해파랑길을 걸었다. 책을 덮고 세상 속으로 나선 ‘생명체험학교’. 휴대전화도, 간식도, 용돈도 없이 시작된 여정이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짐을 꾸리고, 밥을 해 먹으며 하루 수십 킬로미터의 길 위에서 서로를 배우고 세상을 배웠다.

 

그 길에서 그들은 기후위기 현장을 보고, 삼척 화력발전소 폐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울진 원자력발전소를 찾아 에너지의 현실을 배우고, 바닷가에서는 쓰레기를 줍고, 강릉의 독립서점에서는 작가와 마주 앉아 삶을 이야기했다.

 

길 위에서 다투고, 울고, 화해하며 아이들은 조금씩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갔다.

 

“우리는 그저 이 지구를 함께 나누는 수많은 생명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문장은 아이들의 발걸음을 이끈 신념이자 배움의 결론이었다.

 

이 길을 걷는 이유는 단순한 도보여행이 아니다. 기후와 생태, 인간과 사회, 공존과 평화의 가치를 온몸으로 배우는 ‘살아 있는 교과서’가 바로 이 길이기 때문이다.

 


글로 완성하는 삶의 논문


길 위의 배움이 끝나면, 금산간디학교 학생들은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3학년이 되면 누구나 ‘졸업논문’을 쓴다. 대학의 논문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삶의 논문이다.

 

나윤이는 ‘어른이 되면’이라는 주제로 인터뷰집을 만들고 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 다양한 직업과 나이의 어른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한다. 메일을 보내고 거절을 경험하고 때로는 공연장에서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진짜 어른이란 무엇인가를 배워간다.

 

그 과정에서 나윤이는 ‘어른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 배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다른 학생 서준이는 사진집을 만든다.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사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록이다. 서준이는 직접 찍은 사진으로 엽서와 엽서북을 만들어 지역 축제에서 판매해 제작비를 스스로 마련한다. 사진은 그에게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언어가 되었다.

 

졸업논문은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면서도 가장 깊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멘토와 끊임없는 대화, 여러 차례의 수정과 발표 그리고 공동체의 응원 속에서 완성되는 한 편의 글.

 

발표회 날, 교사·학부모·졸업생·친구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웃는다. 그 순간 아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자랐는지를 스스로 깨닫는다.

 


배움이 삶이 되는 학교


금산간디학교 교사들은 교육을 ‘배움이 삶이 되고, 관계가 교과서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학교의 배움은 느리고, 불편하고, 때로는 멈춰 서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속도로 자란다.

 

걷고, 쓰고, 생각하고, 나눈 그 길 끝에서 아이들은 “우린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배움은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이라고 말한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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