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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학창시절을 돌아보자. 교실은 늘 새로운 구성원으로 채워졌고, 그곳에서 다양한 역사가 만들어져 왔으며, 어른이 된 오늘도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한 가지 색이 아닌 셀 수 없는 무수한 빛깔로 가득 찬 곳에서 수없이 많은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더에듀>는 ‘꿈몽글 교사들’과 함께 교실에 펼쳐진 다양한 색을 찾아가는 여정 ‘오늘의 교실’을 시작한다. 교실은 그때도, 지금도, 내일도 살아있다는 것만 기억하자. |
“‘좋은 수업’이 존재함에도 교실이 무너지는 이유는 수업의 질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이는 ‘교육’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신뢰·절차·보호)이 동시에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학교에 대한 담론에서 우리는 대개 수업을 먼저 떠올립니다. 교육의 체계화된 형식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 바로 수업이기 때문이겠지요.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공간이란 점을 생각하면, 교육의 핵심이 담겨있는 시간이기도 하기에, 수업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교육적일 것이며, 또 교육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업이 재미없어서, 수준이 낮아서, 주입식이라서 등등의 다양한 이유를 붙여 교실이 무너지는 현상의 근거를 ‘수업의 문제’로 세우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교실의 모습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사실 수업은 괜찮습니다. 다층적입니다. 그리고 유익합니다. 그럼에도 교실은 불안합니다. 이 불일치가 오늘 교실의 핵심입니다.
다음은 ‘오늘의 교실’의 모습을 관찰한 기준의 메모를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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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 L. 30대 남.
1교시: 수학 수업. 분수의 나눗셈 단원 중 학습 내용을 정리하는 차시 - 핵심 발문(發文): 1÷4의 의미를 설명해 봅시다. - 핵심 전략: 나눗셈의 의미를 두 가지로 정리하여 이해하기 - 강의식 수업 방법 사용. 교사의 발문 위주. 주입식 수업은 아닌지?
2-3교시: 사회 수업. PBL 수업으로 단원 융합. - 핵심 활동: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운영. 학급을 하나의 국가로 설정하여 역할 분담. - 핵심 전략: 학생들의 활동을 통해서 법 제정, 개정, 판결, 행정 등의 활동을 경험하게 하기 - 이런 유형의 수업이 바람직하고 흥미로운 건 명확한 팩트일 듯. 이런 수업을 안 하는 교사의 책임.
4교시: 국어 수업. 논설문 읽기에 대한 차시 - 핵심 발문: 이 문단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이 주장은 어떤 근거로 뒷받침되나요. - 핵심 전략: 교사가 설명하되, 학생이 구조를 찾아 말하도록 유도함. 개념 확인 발문이 이어짐. - 다시 교사 발문 위주의 수업. 주입식 수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5-6교시: 창의적 체험 활동 수업. - 핵심 발문: 찾기 힘듦. 주제 관련 기관 제공 자료 활용 위주. - 앞선 교과 수업과는 다른 밀도의 참여도. 교실 내 에너지와 참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짐.
수업 후: 생활 지도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 - 상황: 교육적 지도 결과에 대한 불신. 객관적 증거 요구. 학교의 처리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 - CCTV 없이는 교사의 지도를 믿지 않겠다는 학부모. 대처 방안은? - 학교폭력 신고와 생활 지도, 그 사이에서 교사의 역할은? |
위 기록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강의식 수업은 ‘주입식’ 수업일까?
많은 사람이 ‘강의식 수업 = 주입식 수업’이라는 등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강의식 수업은 종종 ‘설명 위주 수업’, ‘교사 중심 수업’이라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합니다.
실제 수업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위 박스에 담긴 L 선생님의 수학 시간은 분명 강의식 수업을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관찰자인 기준은 ‘주입식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는 수업 형식이 아니라 학습이 작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수학식을 ‘말(언어)’로 번역하도록 발문이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역수 곱하기로 곧장 밀어붙이는 암기법 대신 나눗셈의 의미를 다시 강조하며 이해의 토대를 복원했습니다. 학원 선행을 한 학생은 쉽게 푸는 습관을 멈추고,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은 대충 이해한 척 자신을 속이며 도망가지 않게 하는 장치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장면은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수업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교사가 많이 말하느냐/학생이 많이 말하느냐’가 아니라, 학생이 갖고 있는 기존의 지식 구조에 ‘의미 있게 연결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수벨(Ausubel)의 유의미 수용학습은 이 점에서 설득력이 생깁니다. 설명이 많은 수업일지라도, 의미 연결이 분명하게 설계되어 있으면 학습자는 단순한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이해의 주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교실에서 ‘강의식’과 ‘프로젝트 수업’이 공존할 때,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
사회 수업도 완전히 다른 결로 전개됩니다. PBL 기반의 학급 국가 운영(입법·사법·행정부), 화폐, 선거, 비례대표, 법 제정, 판결까지. 학생들은 ‘교과서로 배우는 민주주의’를 ‘경험으로 사는 민주주의’로 바꾸어 냅니다. 여기서 흔히 나오는 반응은 두 갈래입니다.
“저런 교사는 예외다.”
“다른 교사들도 다 저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두 의견 모두 위험한 생각입니다. 첫 번째 주장은 교육의 가능성을 ‘특별한 소수의 개인기’ 정도로 의미를 축소하고 있으며, 두 번째 주장은 ‘보여준 장면’을 곧장 ‘새로운 의무’로 바꾸어 현장을 압박하는 사상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교실은 교실마다의 성격이 다릅니다. 교실을 구성하는 주인공인 학생들이 다르고, 교육을 이끌어가는 교사가 다릅니다. 그럼에도 하나의 교실에서 선택한 전략을 존중하지 않고, 저 반에는 있지만 이 반에는 없다는 식의 단순한 비교는 교실을 향한 폭력적 언어이기도 합니다.
또한 교실에는 수업만 있는 게 아닙니다. 평가, 행정, 생활지도, 각종 범교과 기반 계기교육, 학부모 상담, 학교 폭력, 기록, 민원 대응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 수업에 대한 비교육적인 평가 언어는 진정한 교육에 대한 고찰이라기보단, 문제를 부각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옆 반은 저렇게 하는데 왜 너는 하지 않냐는 말은 칭찬의 언어가 아니라, 비교와 평가 절하에 기반한 민원과 통제의 시발점이 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교실이 무너지는 순간은 ‘수업 중’이 아니라 교실 밖 상황에서 발생한다
위 박스 안 내용의 정점은 수업이 아닌 수업 후 복도에서 들린 한 통의 통화입니다.
사소한 갈등에 대한 교육적 지도가 순식간에 학교폭력 은폐 프레임으로 전환되고,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며 CCTV를 운운하는 공격적 전략에 노출됩니다. 교사는 교육적 지도(당사자 확인–사과–관계 회복)를 이미 했음에도 이러한 압박을 받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교육적 지도와 학폭 절차는 동일한 트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육적 지도는 관계 회복, 생활지도, 갈등 중재에 중점을 두지만, 학교폭력 처리 절차는 신고–접수–전담기구–심의위의 절차에 따라 엄격히 흘러갑니다. 학교폭력 신고로 공식 접수된 순간, 교사는 중립자가 되어야 하기에 교육적 지도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교육적 지도를 하는 교사는 학교폭력 처리 절차를 중요시 여기는 관점으로 공격하고, 학교폭력 처리 절차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교사에겐 교육적 노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평가로 공격을 시도합니다.
이런 현상이 일으키는 또 다른 문제는 최근 교실에서 교육적 지도의 여지가 빠르게 줄어드는 방향으로 압력이 쏠린다는 것입니다.
‘교육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곧 은폐로 의심받는 구조가 되면, 교실은 결국 절차의 공간으로만 남습니다. 그때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안을 처리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처리가 정말 학교에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폭력이 철저히 처벌받아야 할 범죄라면 사법 기관의 처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 애매한 선에서 어떻게 해도 교사가 공격받는 시스템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능력 있는 교사들,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들이 모두 교실을 떠나거나, 또는 적어도 교육 현장에 영혼을 담지 않고 살아가는 상황에 치달아야 현실을 보려나요. 그런 지경이 되어도 못 본 척하며 대충 우겨 넘어갈 사회란 걸 알기에, 그것마저도 헛된 망상이겠지만요.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L 선생님 교실의 자세한 상황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https://brunch.co.kr/@ggummongle/149)
글: 이준기 / 교실과 학교 밖 공간을 잇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 그림책 『내 마음 네 마음』, 『민정이의 등굣길』 글 담당 - 장편소설 『학폭교사 위광조』 공저자
- 꿈몽글 팀 글작가
그림: 이예솔 / 따뜻한 시선으로 마음에 닿는 그림을 그리고자 합니다. - 꿈몽글 팀 그림작가

꿈몽글 = 글과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사와 전문 작가들이 힘을 합쳐 학교와 교실 속의 따뜻한 이야기를 기억으로 엮어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학폭교사 위광조’, ‘내 마음 네 마음’, ‘민정이의 등굣길’ 등이 있다. <더에듀> 연재 ‘오늘의 교실’에는 14인의 교사들이 함께 한다. 교실에서 교육을 실천한 앤솔로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교사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