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정은수 객원기자 | 2025년도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을 앞두고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에듀>는 우리보다 앞서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우리가 걱정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기 위해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고교 학점제 현장 사례를 소개한다. |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 온타리오주나 너무 부담스럽도록 많은 과목을 개설하지 않아도 되는 형태로 고교학점제가 운영되고 있거나 운영될 예정인데,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와 이런 형태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고교학점제의 취지가 다양한 진로에 대비하기 위한 과목 선택권을 주겠다는 취지인 만큼 당연한 의문이다. 그래서 초기 도입 논의 때도 다양한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
수강 인원과 시설 부족하면 개설 취소 가능
다행히 지난해 나온 고교학점제 도입·운영 안내서와 이달 공개된 운영 안내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수요와 공급 간의 균형을 선택해 이런 부담을 해소하는 방안이 있다.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 기준안에 과목 개설을 위한 최소 인원을 설정하도록 해 너무 적은 수요가 있는 과목은 개설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예시로 14명 또는 평균 학급 재적 인원 90% 이상 등을 제시하고 있다. 공간이나 교원 부족 등의 이유로도 개설을 안 할 수 있다.
온타리오주도 비슷하다. 명확하게 운영 지침으로 최소 수강 인원 기준을 공시하지는 않지만, 수강 인원이 적거나 시간표 편성 등의 이유로 개설을 취소할 수 있다.
기자가 킹스턴 고교에서 교생 실습을 할 때 전문대 진학반 과목 개설을 요구하는 교사에게 부장 교사가 정원을 이유로 수요가 없어서 안 된다는 답변을 한 것을 봐도 수강 인원은 과정 개설 여부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다만, 숫자가 명시돼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유동적인 부분은 있다. 기자가 실습했던 학급 중 하나는 11명 정원으로 개설됐는데, 장애 학생이 많은 학급이라는 이유를 고려한 것이었다.
이렇듯 개설 취소가 가능해 수강 신청 시 보통 1, 2순위의 예비 신청 과목을 받는다. 굳이 폐강 시 학생이 다시 신청하도록 하지 않고 예비 신청 과목을 받는 것은 과정 개설에 대해 교사, 시설, 시간표 등을 고려해 교내에서 조정을 최대한 하고 개설 취소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필수 학점 때문에 과정 선택의 기회도 제한적
수강 인원 때문에 과정 개설을 제한하지 않아도 애초에 학생의 선택 기회도 무조건 많기는 어려운 구조다. 학점의 반 이상이 필수 학점이기 때문이다.
30학점 중 17학점이 필수다 보니 첫 해인 9학년은 8학점 모두 필수 학점을 듣는다. 이 중 영어, 수학, 과학, 지리, 프랑스어, 체육 6학점은 과정도 모두 학교 지정이다.
나머지 2학점은 보통 예술, 비즈니스, 기술 중에 선택한다. 예술은 음악, 미술, 무용, 드라마 중 한 과정을, 비즈니스와 기술 분야 개설 과목 중 한 과정을 1, 2학기에 각각 선택한다. 학교에 따라 9학년에 비즈니스 또는 기술만 제공하기도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택 폭은 넓어진다. 10학년은 필수 학점 과정 5개와 선택 과정 3개, 11학년은 필수 2개와 선택 5~ 6개, 12학년은 필수 1개와 선택 5~7개가 된다.
우리보다 높은 필수 학점 비율 때문에 선택 과정의 개수는 30학점만 듣는다고 가정할 때 결국 13개 정도다. 그래도 그 13개의 과정을 고를 때 선택의 폭은 그렇게 좁지만은 않다.
지난 화에서는 우리의 일반계고와 비교하기 위해 계열별 과정을 한 과목으로만 비교할 때는 비슷한 정도의 선택 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한 학생이 꼭 한 계열을 정해서 선택 과정을 수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 학교에 모두 모여 있는 대학 진학, 전문대 진학, 취업 등 계열 간 선택 경로가 막혀 있지 않아, 중간에 진로 계획이 바뀌면 다른 경로로 갈 수 있다. 물론 심화 과정 중엔 선수 과정이 있거나 일부는 교사 추천 조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계열 간 이동, 학교 선택은 자유로워
이렇게 다양한 계열별 과정 운영이 가능한 바탕은 대규모 학교다. 온타리오주의 고교는 한 학년이 같은 지역의 초등학교에 비해 4배 정도 많다. 규모가 크니 여러 계열을 한 학교에서 운영해도 될 만큼 교사와 교실도 많고, 과정 개설에 필요한 수강 인원 확보하기에도 좀 더 쉽다.
오랜 기간 대규모 고교가 형성돼온 온타리오주와 달리 우리는 갑자기 고교 규모를 바꿀 수는 없다. 대신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동교육과정이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다양한 선택 과정을 제공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학교선택권이다. 여러 제약으로 한 학교 내에 선택할 수 있는 과정이 제한된다면, 다른 과정을 개설하는 학교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2학기가 되면 초중학교의 마지막 학년인 8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지역 고교들이 순회하면서 입학 설명회를 열어 개설과목을 소개한다.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필요한 과정이 있는 학교에 지원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학교선택권이 중요한 이유는 학생들의 과정 개설에 대한 요구가 넘쳐서 부담이 되는 일이나 개설된 과정의 선택 폭에 대한 큰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개설 과정을 다 알려주고 그걸 보고 학교를 골랐으니 크게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학교선택권이 있으면 쏠림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일부, 특히 국제학생이 많은 대도시에선 이런 쏠림 현상 때문에 성적순으로 자르는 학교도 간혹 있지만, 중소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대도시의 쏠림도 결국 진로 선택의 차이보다는 학교 면학 분위기 등에 있다.
기자가 근무하는 라임스톤교육청처럼 7학년 때에 한 번 더 학교 선택권을 주는 경우도 있다. 7학년 때 영재, 취업, 예술 집중, 프랑스어 몰입 등을 제공하는 학교(7~8학년)로 옮길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온타리오주의 고교학점제가 그래도 학생의 선택 폭은 좀 더 넓은 편인데, 이는 여러 계열을 한 학교에서 운영하면서 계열 간 경로 변경이 자유롭고, 애초에 진학 때부터 제공 과정에 따라 학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교학점제를 추진하면서 학교선택권에 대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학교선택권 보장을 천명하기도 했지만, 아직 어떤 형태로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