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정은수 객원기자 | 2025년도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을 앞두고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에듀>는 우리보다 앞서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우리가 걱정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기 위해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고교 학점제 현장 사례를 소개한다. |
얼마나 다양한 과정이 개설되는지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통계로 보이는 숫자와 현장의 상황이 차이가 큰 대목이기 때문이다.
주 교육부 통계는 숫자일 뿐
이수 시간이 비슷하다면, 우리나라와 온타리오주에서 편성하는 과정 수는 어떨까?
지난해 배포된 고교학점제 도입·운영 안내서에 나온 충북 괴산고 사례를 보면, 전체 학교에 개설된 세부 교과목(이하 과목)은 89개다. 몇 가지 가상의 예시도 있는데, 각각 70개와 81개를 편성했다. 대략 70~80여 개의 과목을 편성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편성 과목이라도 일부는 상황에 따라 개설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우선 교육부 학점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1~2022학년도 개설 과정은 1360개에 달한다. 이 통계만 보면 엄청나게 많은 과정을 개설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중에는 수강생이 주 전역에 10명 미만인, 전문대에 가서 듣는 직업 심화 과정 등도 다수 포함돼 있다. 그 외에도 수강생이 주 전체에 기껏해야 수십 명에서 일이백 명인 경우는 더 많다. 대부분 학교에는 개설되지 않은 과정이란 얘기다.
실제로 온타리오주의 교육과정 문서는 대략 영어와 프랑스어로 각각 300여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나머지는 분화된 지역 특색 교육과정, 산학 협력, 특정 모국어 등 세부 내용이 교육과정에 없는 과정들이다.
그렇기에 실제 학교 현장의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기자가 보결 수업을 하는 프론트낵고는 매년 약 100 페이지가량의 수강 신청 편람을 배부한다.
이 안내서에 나열된 편성 과정은 223개다. 교육부 통계보단 많이 적지만, 여전히 선택권이 그렇게 더 많을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숫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와는 다른 온타리오주 고교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특수·전문계도 같은 학교에…계열별 편성까지
우선은 온타리오주 고교에는 진학하는 일반계 학생, 취업하는 전문계 학생, 특수 학교급의 특수 교육이 필요한 영재와 중증 장애 학생이 모두 함께 있다.
그러다 보니 목공 기술, 건축 기술, 자동차 정비 같은 직업계 실기 과정도 있고, 자조 능력 개발, 사회성 개발, 의사소통 발달 등과 같은 중증 장애 학생을 위한 ‘학교에서 사회로(School to Community) 프로그램’ 과정도 포함돼 있다.
중증 특수와 전문계 학생들이 같이 다니고 있고 전문계에서 일반계를 선택에 따라 선수 학점만 취득하면 오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양성 측면에서 온타리오주 고교가 가지는 강점일 수는 있지만, 일반계 고교와만 비교한다고 생각하고 이들 과정을 빼면 197개로 줄어든다.
또한, 온타리오주의 ‘과정’의 기본 개념은 우리나라의 ‘세부 교과목’과 비슷하지만 몇 가지 차이가 있다.
하나는 계열별 편성을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같은 과목을 계열별로 다른 성취 목표를 갖고 운영한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같은 과목이 서너 과정으로 분화돼 있기도 하다.
지금은 계열 통합을 추진하고 있어 9학년과 일부 10학년 교과는 통합돼 있지만, 여전히 특수교육 대상자를 위한 별도 과정이 있다.
프론트낵고에서는 영재 또는 우수 학생을 위한 심화(enrichment) 과정과 성취 목표를 따라오지 못하거나 장애가 심한 학생을 위한 지역(Locally Developed)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통합이 안 된 10학년 일부 과목은 일반 학생 대상으로도 진학(Academic)과 실용(Applied) 두 계열로 나뉜다. 11, 12학년은 대학 진학(University Preparation), 대학/전문대 진학, 전문대 진학(College Preparation), 취업 준비(Workplace Preparation) 계열이 있다.
프랑스어 사용 학생들이 프랑스어로 이수학점을 다 취득할 수 있도록 GKRL 위한 별도 프랑스어 과정도 개설돼 있다. 그것도 프랑스어 확장 프로그램과 프랑스어 몰입 프로그램이 따로여서 두 개씩 추가로 개설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예를 들어, 필수 과목인 10학년 영어는 한 과목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진학, 실용, 심화, 지역 등 4과정으로 나뉘고, 좀 더 문해가 부족한 학생을 위한 과정이라 내용은 다르지만 10학년 필수 영어 학점에 해당하는 ‘문해 기술’ 과정까지 겹친다.
10학년 필수 ‘수학의 원리’는 프랑스어 과정까지 별도여서 프랑스어를 포함해 같은 범위의 과정이 진학, 심화, 프랑스어 진학, 프랑스어 심화로 4개다. 내용은 꽤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10학년 필수 수학에 해당해 앞선 과정과 중복해서 선택하지 않는 ‘수학의 기초(실용)’와 ‘수학(지역)’ 과정도 2개다.
게다가 일부 과정은 학년이 달라 별도 교육과정으로 구성돼 있지만, 이전 학년의 같은 이름의 과정이 선수 과정도 아닌 데다 주요 성취 기준도 동일하거나 대동소이하고 세부 성취 기준의 예시만 다른 경우도 있다. 교과서를 쓰지 않는 온타리오주 학교의 상황을 생각할 때 과연 다른 과목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예시가 다른 만큼 세부적인 수업 내용이나 활동에는 차이가 있어 해당 분야로 진로를 계획하는 두 과정 모두 듣도록 권고하지만, 진로와 상관없이 학점을 채우는 학생들에게는 현실적으로는 해당 과목을 선택할 기회가 두 학년에 걸쳐 있는 정도에 불과한 느낌이다.
계열 구분도 없고 두 학기에 걸쳐 듣는 과목도 한 과목으로 보는 우리나라와 비교하기 위해, 특이사항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선수 과정 조건 없이 계열이나 학년만 다르고 내용이 겹치거나 내용이 다소 다르더라도 같은 학년, 같은 교과의 필수 과정인 경우를 빼고 보면 116개로 줄어든다. 4년간 116개면 3년간 80여 개인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