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에듀 김승호 기자 |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DT)를 둘러싼 정책 변동은 단순한 실행계획의 수정이 아니라, 정책 핵심 신념체계의 변화로 볼 수 있는 중대한 정책변동이다.”
AIDT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정책갈등 상황에 대해, 정책 찬반 진영 간의 신념 충돌과 정치적 갈등으로 분석한 연구가 교육행정학연구에 실렸다.
정예화 이화여자대학교 정예화 연구교수와 남예슬·김현하 박사과정 연구진은 최근 발표한 논문 ‘옹호연합모형을 활용한 AI 디지털교과서 정책과정 분석’(교육행정학연구 제43권 제1호)에서, AIDT를 두고 “옹호연합 간 정책 핵심 신념 충돌로 인한 중대한 정책변동”이라고 진단했다.
연구는 AI 디지털교과서 정책과정을 ①2025년 전면도입 여부 ②법적 지위를 교과서로 볼지, 교육자료로 볼지 두 단계로 나눠 분석했다.
2023년부터 교육부는 AI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교과서를 정규 교과서로 지정하고 2025년 도입을 목표로 했으나, 2024년부터 야당·교원단체·학부모 등을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됐다. 이후 국회는 AIDT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명시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정부는 이에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결국 2025년부터는 학교가 도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방향이 바뀌었다. 해당 법안은 결국 국회에서 파기됐다.
연구진은 찬반 진영을 ‘옹호연합’으로 개념화했다. 찬성 연합에는 교육부, 여당 의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에듀테크 업체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AI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학습으로 교육 형평성과 공공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반면, 야당 의원과 전교조, 진보성 교원단체, 일부 시도교육청, 학부모 단체는 반대 연합을 구성했다. 이들은 “교육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으며, 교사의 자율성과 학생 개인정보가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정책 변경의 주요 원인으로 국민 여론과 정치적 대응을 지목했다. 2024년 5월, AIDT 도입 유보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접수돼 한 달 만에 5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같은 해 12월, 학부모·교사 10만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도입 반대’ 응답이 86.6%에 달했다는 결과도 영향을 미쳤다.
또 외부환경적 요인도 지목됐다. 우선 연구진은 2022년 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취임이 정책 추진에 가속도를 붙인 사건으로 분석된다. 에듀테크와 AI 교육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이 장관은 ‘하이터치 하이테크’(High Touch High Tech) 철학을 바탕으로 AIDT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또한, AI 기술의 발전과 세계 각국의 디지털 교과서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영국, 일본, 미국 사례를 인용하며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반대 측은 핀란드와 스웨덴의 ‘디지털 교과서 후퇴’ 사례를 들어 경고음을 냈다.
연구진은 “AIDT를 교육자료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 그리고 교육부의 도입 자율화 결정은 정책핵심 신념체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전환점”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사례를 “단지 기술 도입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정책을 둘러싼 교육 철학과 신념의 충돌’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책 행위자들은 서로 다른 기저신념—교육의 형평성, 자율성, 개인정보 보호 등—을 바탕으로 연합을 형성했고, 이는 전형적인 옹호연합모형의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AIDT는 ‘전면 도입’에서 ‘학교 자율 선택’으로 전환됐으며, 이는 ‘정책변동 이론상 중대한 변화’라는 결론이다.
정부는 2025년까지 AIDT의 전국 도입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는 희망하는 학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정책이 추진되던 과정에서 반대 진영의 가치와 우려를 일정 부분 반영한 결과이며, 동시에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기술과 교육 사이의 균형점을 다시 찾으려는 시도로 분석됐다.
정책은 일단 실행되었지만,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향후 AIDT를 둘러싼 논의는 기술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교육적 효과에 대한 실증적 검증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