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을 모델 삼아 만들었다는 계획 도시 경주와 일본의 교토, 동아시아 3개 나라의 천년고도 시안, 경주, 교토를 방문하며 보고 공부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록에 근거한 역사 문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기회로 직접 경험한 내용들을 복기하면서 불분명함이 명확해지고 새로워지는 경험을 해보고자 한다. |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중-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면서 다양한 나라 사람들로 북적였던 국제도시 시안을 생각하면 그 당시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상을 해본다.
지금도 번화한 시내의 밤에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일 때 불야성이라는 말을 쓴다. ‘불야성’이라는 이름은 밤에도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마치 낮과 같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시안이 당시 국제도시로서 사람들로 북적이며 번영했던 모습을 우린 대당불야성이라고 한다. 현재 시안이라는 도시에는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 거리’가 있는데 이는 당나라의 영광과 번영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공간이다.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은 당나라 문화를 배경으로 한 광장으로 밤에도 휘황찬란한 거리, 즉 불이 꺼지지 않는 거리로 중국 시안 야경 명소이다. 그리고 대당불야성 중앙 거리에는 역사 인물, 예술 작품, 당 제국의 종교, 문화, 과학, 예술 등 지위와 성과를 재현시켜 놓았다.

대당불야성 거리는 남북으로 약 1.5km에 이르는 거리로 당나라 건축물과 조명이 어우러져 밤에도 대낮처럼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9개의 테마 조각상과 역사 인물 동상, 그리고 다양한 문화시설(음악당, 미술관, 영화관 등)이 있어 당나라의 번영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거리 공연, 분수쇼, 전통 복장 체험, 다양한 문화 공연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어 관광객으로서는 볼거리가 너무 많다. 대당불야성 거리의 초입에 있는 북광장의 분수쇼는 세계 최대 규모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고구려와 연관이 많았던 당 태종, 측천무후, 현종 등 역사 속 인물과 이백, 두보 등 문인들의 조각상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전통 복장 대여점을 통해 당나라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근래 경복궁 등 궁궐에서 한복을 대여하여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중국 또한 유적지 등에서 중국의 전통복장인 한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대당불야성은 시안을 대표하는 야경 명소로, 당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현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모든 장소가 그렇지만 야경은 말 그대로 끝판왕이다.
손오공이 등장하는 소설인 서유기에 보면 삼장법사가 등장을 한다.
삼장법사는 당나라 당태종 시절의 유명한 고승인 현장법사이다. 중국을 떠나서, 서역까지 여행하고, 다시 수십 년간 현지에서 공부를 한 뒤, 중국으로 돌아와야 했으니, 그 길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고행길이었을 것이다.
실제 현장은 불경 원문을 들고 중국으로 돌아와 한문으로 번역하여 후세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그래서 지금도 삼장법사 하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현장법사’를 떠올린다.
서유기는 삼장법사가 쓴 대당서역기를 바탕으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런 역사적 사실이 소설 서유기의 등장인물 삼장법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대당불야성이 시작되는 거리의 입구에 보면 현장법사의 동상이 있다.
이곳에서 뒤편에 있는 대안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이 많다. 대안탑을 보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고 대자은사라는 절에 입장해야 한다.
‘대안탑’은 대자은사 경내에 있는 탑이다.
‘대자은사’는 당 태종 22년(648년) 시안성 남쪽에 세운 절이다.
대안탑은 652년 당나라 고승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서 가지고 온 경전이나 불상 등을 보존하기 위해 고종에게 요청하여 건립한 탑이다. 높이 7층 64m. 처음에는 5층이었지만, 중간에 10층까지 증축되었고, 현재 7층만 남았다.
목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가는데 생각보다 층고가 매우 높다.
대안탑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보살의 화신으로 기러기의 무리에서 지상으로 떨어져 죽은 기러기 한 마리를 탑을 지어 매장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안탑은 처음에는 5층으로 세웠으나 704년 측천무후 때 10층으로 증축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란으로 7층 64m로 낮아져 지금에 이른다. 그래도 대안탑은 소안탑에 비해 외모는 거의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대안탑 주변은 역사적 의미가 깊은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근처에 야경이 멋진 대당불야성과 대당부용원이 있어 시안 여행의 행심 관광지로 자리하고 있다.

대안탑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는 작은 소안탑이 있다.
‘소안탑’은 시안 박물관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천복사 경내에 있기도 하다.
당나라 승려 의정 대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을 보관하기 위하여 710년에 천복사 안에 소안탑을 세웠다. 소안탑은 원래 15층 벽돌로 건축하였으나 1556년 산시성 대지진 때 무너져 지금은 13층 43.3m로 낮아졌다.
천복사는 684년에 고종이 병으로 승하하자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서 절의 이름도 처음에는 헌복사라고 했지만 이후에 천복사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둘 다 처음에는 안탑(뜻 :기러기 탑)으로 불렀으나 후에 비슷한 두 탑을 구분하기 위하여 조금 높은 탑을 대안탑, 낮은 것을 소안탑으로 불렀다.
소안탑은 대안탑보다 55년 정도 후에 세워졌다. 소안탑은 시안 중심부에 있는 종루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6km 거리에 있다.
소안탑과 대안탑은 서로 3.5km 정도 떨어져 있다. 대안탑은 실크로드 출발점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대안탑 광장 근처에 오니 여러 식당과 백화점들이 보이는데 특이한 한자가 보이는 식당이 있다. 보기에도 복잡한 이 한자의 발음이 biang 뱡,비앙, 뺭 이라고 발음이 된다.
이 한자는 뺭뺭면을 부르거나 쓸 때만 쓰는 한자이다.
빵뺭면은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먹는 국수 음식으로 유명하다. 뺭뺭면은 면의 두께가 두껍다. 폭이 넓은 면으로 넓은 중국 당면과는 다르게 투명하지 않고 불투명한 일반 밀가루면 색을 띄고 있다.
생각보다 맛있는 시안의 뺭뺭면을 보면서 중국과 서역을 오고 가는 곳으로 유명했던 실크로드의 도시 장안에서 뺭뺭면을 먹었을 서역인들의 모습을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