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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샘의 천년고도 역사문화 기행] ⑤중국의 박물관과 산시 역사박물관

더에듀 |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을 모델 삼아 만들었다는 계획 도시 경주와 일본의 교토, 동아시아 3개 나라의 천년고도 시안, 경주, 교토를 방문하며 보고 공부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록에 근거한 역사 문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기회로 직접 경험한 내용들을 복기하면서 불분명함이 명확해지고 새로워지는 경험을 해보고자 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중-

 

중국은 광활한 영토에 수려한 경치 뿐 아니라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유물과 유적들이 많다. 그래서 중국의 3대, 4대, 10대 식으로 손꼽는 것들이 많다.

 

한국에도 박물관들이 많지만 중국에도 그 이상으로 박물관이 많다. 중국 사람들은 박물관도 위와 같은 식으로 꼽는다.

 

중국에서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곳으로는 수도인 베이징에 있는 국가 박물관, 시안 산시 역사 박물관, 상하이 박물관으로 넓디 넓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진귀한 유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20세기 초 중국은 전쟁과 내전, 외세 침략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무엇보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군의 위협이 커지자, 중국 정부는 자금성의 황실 보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수만 점의 유물이 상하이, 난징, 쓰촨 등지로 이동했고, 전쟁 중에는 산 속 깊은 곳에 보관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국민당(장제스 정부)과 공산당의 내전이 다시 격화되자, 국민당은 패배를 예상하고 자금성 및 난징 중앙박물관 등에 있던 소장품 중 특히 귀중한 60만여 점 중 약 30만 점을 선별하여 타이완으로 이송했다. 이후 기증품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70만여 점이 보관되어 있다.

 

 

이곳이 바로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유명한 타이베이에 있는 고궁박물관이다.

 

만약 옮기지 않았다면 일본군 약탈, 문화대혁명 파괴 등으로 상당수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베이징의 자금성에 있는 고궁박물관에는 고궁은 있지만 유물이 없다고 하기도 하고 타이베이에 있는 고궁박물관에는 고궁은 없지만 유물이 있다고도 한다.

 

 

산시성의 성도인 시안에 있는 산시 역사박물관은 전체 면적 7만여평방 미터의 국가급 역사박물관으로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와 가장 현대화된 역사박물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중앙에 위치한 건물은 2층 높이, 면적은 6㎢ 로, 원시시대부터 1840년 아편전쟁 중에 산시성에서 출토된 각종 전시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서쪽에는 2500㎡의 주제 전시관이 있는데, 주로 실크로드 등 산시성의 역사, 문화 등에 관련된 문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전시품은 청동기, 도용, 금·은 장신구, 당나라 무덤 벽화 등이다.

 

산시성은 일찍 80만년전부터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였는데 이 곳은 염제와 황제의 탄생지이며 주무왕은 이곳에 강대국인 주왕조를 세웠다.

 

이후 혼란스러웠던 전국시기를 거쳐 진한, 그리고 당에 이르기까지 산시성은 줄곧 고대 중국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주, 진, 한, 당 등 14개의 왕조와 정권이 서안을 도읍으로 지정했었는데 중국 역사의 절반이 이곳에서 펼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물관은 중심선을 기준으로 양쪽이 대칭되어 있으며 가운데 건물의 2층과 3층에 있는 제1, 2, 3 전시홀에서는 상고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산서에서 출토된 다양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2층과 3층의 제 1, 2 ,3 전시홀에서 열리고 있는 <산시고대문명> 상설 전시회는 선사시대, 주, 진, 한, 위진남북조, 수당, 송원명청 등 7개 부분으로 구성되었으며 2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상나라와 주나라의 청동기, 진·한 시기의 도자기, 도룡, 당나라의 당삼채와 금은옥기, 다채로운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주나라 부터 당나라 때까지의 유물이 볼만하다.

 

산시 역사 박물관 외에도 다양한 박물관들이 많은데 그 가치에 비해 인정 받지 못하는 박물관 중에 하나가 산시 박물관이다. 비가 오던 날 택시를 타고 도착한 시안 박물관은 산시역사박물관에 비해서 주목도가 낮은 편이다.

 

박물관의 한 장소에는 당나라 시대에 세워진 소안탑이 우뚝 서 있고, 주변은 비정과 정원으로 꾸며져 있어 마치 작은 공원 같은 분위기였다.

 

고목들 사이로 비석과 석조물, 전통 건축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어 산책하며 고대 유적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안박물관 부지 내 천복사 유적지에 자리하고 있는 소안탑. 당나라 경룡 연간(707~710년)에 건립된 이 탑은 원래 추천사탑이라 불렸지만, 명나라 이후부터 소안탑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탑의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바로 지진과의 사투다. 1300년 동안 70회 이상의 지진을 겪으며 ‘4번의 균열과 3번의 자연 복합’이라는 기적 같은 현상을 보여줬다.

 

1487년 6급 지진으로 탑이 남북으로 갈라졌다가 1521년 균열이 스스로 합쳐졌고, 1556년 중국 역사상 최강의 화현 대지진(8.4급)으로 꼭대기 일부가 무너진 후, 1920년 닝샤 대지진(8.5급)으로 다시 균열이 생겼다.

 

균열이 생겼다가 스스로 복구되는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 해서 ‘신비한 탑’이라고도 불린다.

 

흥미로운 점은 1556년 지진으로 무너진 꼭대기를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옛 것을 고치되 옛 모습 그대로’라는 중국의 문화재 복원 철학에 따른 것으로, 인위적인 복원보다는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존중하는 방식이다.

 

원래 15층이었던 탑은 현재 43.395미터 높이로 서 있다.

 

소안탑이 위치한 천복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었다. 원래 수나라 양제와 당 중종의 궁터였던 이곳은 684년 고종 황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찰로 개조되었고, 690년에는 무측천이 직접 “대추천사”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현판까지 써주었다.

 

당대 최고의 승려들이 활동한 장안 제1의 불교 사찰이었던 셈이다. 소안탑 자체는 의정이 서역에서 가져온 불경, 불상, 불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실크로드를 통한 불교문화의 전파와 당나라 불교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물인 것이다.

 

박물관 1층에 들어서자마자 시안의 대형 지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면서 반듯반 듯 길을 내고 그에 맞게 건물들을 지은 계획도시이자 국제도시, 그 모습은 인근에 있는 나라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돔 형태의 구조가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이 도시의 오랜 역사를 품은 하늘 아래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자 속에 숨은 경제사, 중국 한자에서 돈과 관련된 글자들을 보면 모두 조개패(貝)가 들어가 있다.

 

실제로 조개껍데기는 고대의 화폐였고, 買(사다), 賣(팔다), 財(재물) 같은 글자들이 모두 여기서 나왔다.

 

작은 조개껍데기 하나가 중국 경제사와 한자의 기원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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