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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샘의 천년고도 역사문화 기행] 진시황릉 "죽어서도 영원하고 싶다"

더에듀 |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을 모델 삼아 만들었다는 계획 도시 경주와 일본의 교토, 동아시아 3개 나라의 천년고도 시안, 경주, 교토를 방문하며 보고 공부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록에 근거한 역사 문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기회로 직접 경험한 내용들을 복기하면서 불분명함이 명확해지고 새로워지는 경험을 해보고자 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

 

죽어서도 영원하고 싶었던 진시황제는 그토록 죽음이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황제의 권위를 내려놓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시황릉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시황제는 기원전 247년, 진나라의 왕으로 즉위한 직후부터 황릉 공사를 시작했는데 총인원 70만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황릉은 진시황이 죽을 때까지도 완성이 되지 못했고 후궁, 자녀들 그리고 공사에 참여했던 인부들까지 순장시키면서 그 공사를 끝냈다. 진시황릉의 배장품 구덩이에서는 사람이 묻힌 무덤도 여러 곳 발굴됐다.

 

 

사마천이 묘사한 진시황릉의 모습 가운데서도 ‘수은의 개울과 하천, 바다’를 조성했다는 구절이 유명하다. 무덤 천장에 천체를 그렸고, 바닥에는 진나라의 지리를 묘사했으며, 수은을 사용해 강과 바다를 표현했다고 한다.

 

무덤에 매장된 진귀한 보석과 유품을 지키기 위해서 침입자가 나타나면 즉각 석궁이 발사되도록 설계했다.

 

무덤 입구를 영원히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서 축조 공사가 마무리되자 인부 모두를 산 채로 매장했다는 기록도 전해 온다.

 

사마천이 직접 무덤 내부를 봤을 리가 없으니 현대 학자들은 이 기록을 허구적인 상상의 기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황릉 인근 흙에서의 수은 함유량이 인근 지역 흙보다 무려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보아 사마천의 기록을 허구적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진시황이 죽은 후 4년이 지난 기원전 206년에 허무하게도 진나라가 멸망해버렸다.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대가 함양에 입성하자 진나라 역대 왕들의 무덤을 도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진시황제의 무덤이 큰 규모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실제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모르고만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진시황릉에 대한 설명들이 과장되고 허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러나 병사 인형 수천 점이 묻힌 거대한 병마용이 발견되면서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졌고, 허구로만 알려진 사실들이 점차 사실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발굴 당시 당시 총리였던 저우언라이는 후손들을 위해서 발굴 기술이 완벽해질 때까지 무리하게 능 자체를 발굴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진시황릉 내부에 거대한 빈 공간이 유지된 채로 남아 있다. 이 빈 공간을 무너트리지 않고 보존하면서 발굴할 기술이 아직 존재하지 않아서 진시황릉의 발굴은 무기한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사마천은 어떤 근거에 의해 그러한 기록을 남겼으며 그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렇게까지 해서 황릉을 만든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군주의 위엄은 스스로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고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저절로 따라 나올텐데 말이다.

 

그동안 역사의 여러 기록들과 근래 우리 정치의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역사의 현상들은 반복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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