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학교 현장의 사법화 문제를 지적하며 교육적 해결 구조의 회복을 권고했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대화와 중재라는 교육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신고와 수사, 소송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현실을 우려한 것이다.
학교가 갈등을 조정하는 교육공동체가 아니라 법적 요건을 따지는 ‘사법 대기소’처럼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 제기 자체는 정확하다. 그러나 인권위의 권고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학교의 사법화는 학교 현장의 대응 방식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와 정책 구조가 법적 책임 중심으로 설계되어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동학대처벌법, 학교폭력예방법...학교 갈등, 교육적 조정 아닌 준사법적 영역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의 교육정책 흐름을 보면 하나의 분명한 특징이 있다. 교육 문제를 교원의 교육적 전문성과 판단의 영역에서 해결하기보다 법과 행정 절차를 통해 관리하려는 경향이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법과 제도만 보더라도 흐름은 분명하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교사의 생활지도를 형사법의 판단 구조 안으로 끌어들였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학교 갈등을 교육적 조정의 영역이 아니라 준사법적 절차로 다루는 구조를 만들었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은 학교와 교원을 행정기관처럼 민원 처리 체계 속에 편입시켰다. 여기에 각종 학생 지원 정책과 통합 지원 정책은 학교를 교육기관이 아니라 복지·상담·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기관처럼 기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과 입법이 하나의 공통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학교와 교원을 학생의 학습 경험의 질을 높이는 교육 전문직으로 강화하는 교육·교원 정책이 아니라, 교육기관을 행정기관처럼 관리 가능한 조직으로 재편하는 방향이다.
잔혹한 사건 대응 "사회적 분노와 여론 대응 방식으로 '법' 등장"
이러한 정책과 입법 흐름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하나의 반복되는 패턴이 보인다. 특정 사건이 발생하면 정치권과 정부가 사회적 분노와 여론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서둘러 새로운 법을 만드는 관행이 반복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계모의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제정되었고,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의 학교 적용 확대는 서이초 사건 이후 정치적 논의 속에서 더욱 강화됐다.
최근 시행된 학교 CCTV 설치 역시 하늘이 사건과 같은 개별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역시 1990년대 후반 사회문제로 부각된 학교폭력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04년 제정된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방식의 입법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결과를 낳았다. 교육 문제를 교육법의 틀 안에서 해결하기보다 형사법적 판단 체계 안으로 편입시켜 온 것이다.
이미 일반 형사법 체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법 조항을 추가하면서, 결국 학교와 교원이라는 교육 주체의 역할과 직무를 교육법이 아니라 형사법의 시각에서 판단하도록 하는 상위 구조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이러한 입법 방식이 특히 학교를 대상으로 더욱 강하게 작동해 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다른 전문 영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환자 학대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병원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별도의 ‘환자학대처벌법’을 만들지 않는다. 병원 민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병원 민원처리법’을 제정하지도 않는다.
의료 현장에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환자의 안전을 이유로 의사의 핵심 업무 공간인 진료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정책이 일반적인 의료 정책으로 제도화되는 경우는 전무하다.
더 중요한 점은 아무도 의료진에게 “당신들은 환자 치료만 할 것인가”라고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환자 돌봄과 같은 간병인의 역할이나 복지, 심리·정서 지원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의료진의 법적 직무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환자 관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환자 복지 지원을 위한 조정·연계 업무를 의료진의 법적 직무로 부과하지는 않는다.
또한 환자 맞춤형 통합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별도의 ‘환자맞춤형통합지원법’을 만들어 병원과 의료진의 의무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병원이라는 기관의 존재 목적은 의료 전문성에 기반한 치료와 건강 회복에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삶 전반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의료 전문직의 법적 직무로 확대하도록 제도를 설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교와 교원에게는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돼 왔다.
학교는 학습과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학생의 성장과 학습을 책임지는 특수 목적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을 위한 행정·복지·사법 기능까지 포괄적으로 수행하도록 요구받아 왔다. 학생의 삶 전반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학교와 교원에게 맡겨 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육 전문직인 교원에게는 학습과 생활지도 업무뿐 아니라 복지 행정, 조사 대응, 민원 처리와 같은 업무까지 법과 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부과돼 왔다.
학교의 정체성의 혼란, 구성원에게 지우는 역할의 혼란
결국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법이 많다는 데 있지 않다. 교육기관인 학교를 어떤 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는가에 대한 정책 철학의 혼란에 있다.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다양한 사회 문제를 처리하는 종합 행정 기관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흔들리면서 교육의 본래 기능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교원의 업무는 학습과 생활지도라는 교육 전문 업무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교사는 교육과정 운영을 책임지는 교육 전문직이면서 동시에 복지 행정 업무를 수행하고, 경찰 행정과 유사한 조사 업무를 수행하며, 법원 행정과 유사한 분쟁 대응 업무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여기에 민원 대응 업무까지 더해지면서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온 교육 행정 업무 위에 새로운 행정 업무가 계속 추가되고 있다. 그 결과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행정과 사법 절차가 뒤섞인 복합 행정 공간처럼 변해 가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결국 교원이 본연의 교육활동에 투입해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비본질적 업무로 분산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 교원 전문성은 약화되고 학생들이 제공받는 학습 경험의 질 역시 떨어지면서 공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학교를 흔든 사건 대응 입법 그리고 약자 보호 프레임
‘사건 대응 입법’은 여론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법적 책임 구조만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사회 갈등을 처리하는 행정·사법 기관처럼 기능하도록 재편돼 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교원 전문성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교육적 해결 과정을 시도하면 ‘은폐’나 ‘축소’라는 의심을 받기 쉽고,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책임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결국 교사는 교육적 판단보다 법적 위험을 먼저 고려하게 되고, 학교는 갈등을 교육적으로 조정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법적 분쟁을 관리하는 기관처럼 운영된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배경이 있다. 바로 ‘약자 보호’라는 프레임이다.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 자체는 정당하다. 그러나 최근의 정책과 입법은 법적 주체들 간의 균형 잡힌 권리 보호라기보다는, 특정 주체의 권한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그 과정에서 학생과 교사는 교육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법적 주체로 분리되었고, 갈등은 교육적 문제라기보다 권리 충돌의 문제로 재구성되었다.
이러한 구조가 반복되면서 학교 내부의 신뢰는 점차 약화됐고, 교육의 핵심 가치인 신뢰가 사라진 자리를 법과 절차가 채우기 시작했다. 결국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사법과 행정 절차가 작동하는 공간으로 변해왔다.
학교 사법화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인권위 권고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단순히 학교 현장의 인식 변화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 교육정책과 입법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책의 출발점은 학교와 교원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는 문제 정의에서부터 달라져야 한다.
첫째, 학교는 교육행정기관도 복지기관도 아니다. 민원을 처리하는 행정기관도 아니며, 사법적 판단을 수행하는 기관 역시 아니다.
학교는 교육과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의 학습과 성장을 책임지는 특수 목적 기관이다. 학교는 학습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육기관이며, 교사는 그 과정을 책임지는 전문직 교육자다.
이러한 기본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교육의 목적과 정책의 결과를 혼동해서도 안 된다. 이 원칙이 정책과 법 제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둘째, 교육 문제를 행정 절차와 법적 책임 구조로 관리하려는 정책 방향 자체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갈등 관리와 문제 해결의 기본 원리는 법적 처벌이 아니라 교육적 판단과 조정에 두어야 하며, 사법 절차는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또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원의 교육활동이 교육적 전문성의 기준이 아니라 일반 형사법 체계의 판단 대상으로 다루어지는 현재의 구조 역시 재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학교와 교원의 법적 직무인 학습과 생활지도, 즉 교무업무 외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교육행정·사법·복지 업무를 재구조화해야 한다. 교육기관이 수행해야 할 학습과 생활지도와 교육행정기관이 수행해야 할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한 학교의 사법화는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인권위 권고의 실질적 의미는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교육을 법과 행정 절차의 관리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책 관점을 바꾸라는 요청이다.
학교의 사법화는 교사가 만든 문제가 아니다. 교육 문제를 교육이 아니라 법과 행정 절차로 해결하려 했던 정부 정책과 입법이 만들어 낸 구조적 결과물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인권위 권고 역시 또 하나의 정책 문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교육정책은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그 정책의 실제 구현은 결국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학습과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가 아니다. 학교를 학교답게, 교원을 교원답게,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을 교육답게 바라보는 교육 중심의 정책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