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자유로운 교육이 이상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자율적으로 생각하게 하며, 억압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보된 교육’의 이름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경계 없는 자유는 과연 진짜 자유일까?
요즘 아이들은 ‘자기 안의 욕구와 감정, 충동을 다스리는 법’보다 그것을 ‘표출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기분이 나쁘면 소리를 지르고, 싫으면 자리를 박차고, 불편하면 말을 끊는다. 그리고 누군가 그 행동을 지적하면 이렇게 말한다.
“내 감정이에요.”
“표현의 자유잖아요.”
“나답게 사는 거예요.”
하지만 아이가 배워야 할 건 ‘자기표현’보다 ‘자기조절’이다. 그 조절은 ‘경계’를 인식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경계는 단순히 “하지 말라”는 금지선이 아니다. 여기까지가 나‘이’고, 저기부터 ‘타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존중이 시작된다.
경계가 사라지면 타인의 경계도 무시하게 된다. 결국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삶’이 되고, 그런 아이는 사회 속에서 갈등을 만들며, 관계를 맺지 못하고, 외로움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경계를 가르치는 일, 그것이 훈육이다.
“이 말은 해서는 안 돼.”
“지금은 들어야 할 때야.”
“상대가 아파한다면 멈춰야 해.”
이 단호한 말들이 아이의 마음에 단단한 테두리를 만든다. 그 테두리는 아이를 억누르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아이는 더 자유롭게 뛰고, 실수하며, 성장한다.
모든 운동장에는 라인이 있다. 골대에도, 코트에도, 심지어 무대 위에도. 라인이 없으면 경기도, 연기도, 공연도 성립되지 않는다.
교육도 그렇다. 경계 없는 자유는 무질서일 뿐이다. 질서 속의 자유만이 진짜 자유이며, 진짜 자율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능력은 ‘경계의 감각’이다. 그 감각이 아이를 존중하게 하고, 스스로를 조절하게 하며, 결국 품격 있는 인간으로 자라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