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소위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교육감을 보좌하는 비서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절 가량을 글쓰기란 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 그 비슷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호기롭게 시작한 이 다짐은 지금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은 제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

인터넷 서점보다 대형 서점을 선호하는 이유는 장소성이 주는 특별한 느낌과 그날 고른 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요즘의 내 마음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진열대 위에 놓인 수많은 책 중 내가 고른 책을 보면 내가 요즘 가지고 있는 생각과 살면서 느낀 결핍, 그 무언가를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날도 숨죽여 책 진열대 위를 스캔했다. 경건한 마음마저 드는 걸 보면 책을 고르는 행위 자체가 어느 순간부터 내게 중요한 일이 되었다. 주황색 표지에 고딕체로 적힌 요한 허리의 ‘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이라고 적힌 책을 본 순간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저자는 집중력을 되찾는 방법을 찾기 위해 3만 마일을 이동해 전 세계 과학자들을 만났고, 250명 이상의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그리고 미국 매사추세츠주 북동부에 있는 프로빈스타운에 들어가 일정 기간 동안 휴대폰과 인터넷, SNS 등 모든 전자기기의 사용을 멈추는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에 옮겼다.
나 역시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오기라도 한 날이면 어찌할 바 모르는 불안과 업무 차질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이다.
‘휴대폰, 디지털기기 없이 온전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신이 노출되는 팽창과 정보가 들이닥치는 속도를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다.
“점점 진이 빠지게 됩니다.”
수네가 말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는 겁니다... 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관계에서의 깊이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에너지가 필요해요... 깊이를 요구하는 모든 것이 악화되고 있어요.”
-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中에서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점점 진이 빠지고 있다. 너무 빠른 정보, 넘쳐나는 정보에 의해 잠들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지난 과거와 현재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15년 넘게 페이스북을 하면서 4300여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난, 한때 SNS 중독자라 할 만큼 페이스북을 자칭 ‘파랑 일기’라고 칭하며 나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내가 올린 글의 좋아요와 하트 수가 많아지자, 기사를 넘어 자잘한 일상까지 SNS에 올렸고, 그렇게 십년 넘게 꾸준히 이어온 기록은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그러던 중 기자 일을 그만두고 공무원 임용을 앞둔 순간이 되자 이대론 안 될 것 같았다. 15년 넘게 올렸던 게시물 하나하나를 추억하며 비공개로 돌렸다.
SNS 중단을 선언한 마지막 날에는 ‘꼭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는 것 같은 울적함까지 밀려왔으니, 파랑 일기가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인가?’
책의 2장 ‘몰입의 손상’을 읽을 즈음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가는 곳마다 자신을 방송할 뿐 다른 정보는 수신하지 않는 사람들로 둘러싸이는 느낌이었다.
주의가 부패하면 나르시시즘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의가 자기 자신과 자기 자아에만 집중된 상태가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내가 이 말을 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그 주에 인터넷의 무엇이 가장 그리웠는지를 설명하려니 무척 민망하다.
-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中에서
한 개의 게시물을 올려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조회수와 좋아요를 확인하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신호대기 중에도, 골치 아픈 기사 마감 후에도 ‘좋아요’ 수가 늘면 괜스레 흡족해하던 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걸까?’
이 인정 욕구는 늘 분주한 나날을 만들어 냈고, 심지어 휴가지인 베트남 냐짱의 해변에서도 SNS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 나의 뇌는 쉴 틈이 없었다.
그렇다. 오롯이 한곳에 집중하지 못한 채 뭐 하나라도 놓칠까 전전긍긍하는 일상이 이어져 왔던 것이다.
물론 부정적인 점만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바지런하고 꼼꼼한 기록 덕분에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도 보였고, 실제로 틈나는 대로 기록한 습관은 기자라는 직업을 이어가는 데 꽤 도움이 됐다.
하지만 정말 소중한 것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바로 작가가 말하는 ‘집중력!’
카톡, 텔레그램, 문자, 전화, 이메일까지 보도자료와 각종 정보, 제보가 오갔던 나의 스마트폰. 지난 20년 동안 나는 스마트폰이라는 족쇄가 채워진 채 한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계속되는 알람이 지긋지긋했던 어떤 날은 휴대폰을 부숴 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으니까.
전화보다는 메시지로 제보하는 취재원과의 대화로 내 양손 엄지손가락에는 종종 파스가 붙어있고는 했다.
‘어공.’ 말 그대로 어쩌다 공무원이 된 이후에는 브런치 연재 외에 SNS에 게시글을 작성하지 않았지만, 잠시라도 틈이 나면 유랑민처럼 친구들의 피드를 하릴없이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중대한 결심을 했다.
‘SNS 대신 책을 읽기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삶을 되돌아보는 독서 노트, ‘언제나 책봄’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100% 완벽한 디지털 디톡스는 아니지만 조금씩 책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시점에서 요한 하리의 글은 내가 평소 고민했던 부분을 자신의 다양한 경험과 연구를 통해 해소해 줬고, 이 시대에 집중력 위기가 닥쳤음을 강조한다.
집중력 저하가 비단 개인의 문제나 실패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오프라 윈프리가 “세상이 지금 필요로 하는 책”이라고 단언한 것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쏟아지는 각종 정보에 휩쓸려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바다에서 하릴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사람, 적어도 이 험난한 세상에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보다 지혜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 이 글은 브런치에 실린 것을 재구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