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캐나다 온타리오주 동남권 여러 학교에서 보결 교사로 근무하는 정은수 객원기자가 기자가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캐나다 보결 교사의 하루하루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소개한다. (연재에 등장하는 학교명, 인명은 모두 번안한 가명을 쓰고 있다.) |

“다른 교과 수업은 상지고에서는 어떻게 해? 내가 상지고에서 수학 자원봉사 할 땐 사실 되게 지루했거든.”
“처음 보결 갈 때는 당황스러웠지. 내가 실습할 때는 교과서 한 번 안 쓰고, 우리가 연수 받을 때 배운 대로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막상 보결 수업 계획은 그냥 영상 보고 학습지에 답안 쓰는 거였으니까.”
“내가 보결 처음 할 때는 수업계획이 그냥 교과서 읽는 거라 좀 당황스러웠어.”
“맞아, 교과서로 그냥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
“근데 애들이 전혀 참여하려고 안 해서 나중에 물어보게 됐는데, 보결 교사가 올 때만 그렇게 하는 거고 그래서 애들도 더 재미가 없던 거더라고.”
“응, 거의 한 해를 한 학교에 쭉 다니다 보니까 그것도 선생님마다 달라서 어떤 선생님은 진짜 수업 계획을 그대로 주는 경우도 있고, 또 그냥 보결 교사가 진행할 수 있게 좀 더 단순한 계획을 주는 경우도 많더라고. 그래도 수학은 어차피 개념을 알려주고 몇 가지 예제를 풀어주고 문제 풀이하는 식으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비슷하더라. 너처럼 핸즈온 활동 같은 걸 하는 선생님은 드물지.”
“아무래도 수학은 다른 교과처럼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재구성하기 어렵고 가르쳐야 할 게 많으니까.”
“그래, 다른 교과는 그게 좀 더 쉽지. 그런데도 사실 영어 수업이 보통은 더 재미가 없더라. 그냥 책 읽고 글 쓰고 하는 활동이 대부분이고.”
“맞아, 나도 앞 시간이 영어 수업인데, 나는 밤새 활동을 준비해 가서 교실에 들어갔는데 영어 선생님이랑 애들이 그냥 책 읽고 있더라.”
어제 오랜만에 같이 교사 자격증 전환 연수를 받았던 동기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역사 부전공 연수를 다시 받게 된 상황을 이야기하다 보니 수학 보결 수업 경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됐다.
외국에서 온 교사들은 처음 연수를 받을 때의 내용과 사뭇 다른 보결 수업 계획을 받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활동 수업은 다 어디 가고 학습지만 하란 거지?
옥토중에서 처음 보결을 시작하게 됐을 때는 상대적으로 실제 수업에 가까운 수업을 하게 돼서 그런 느낌을 못 받았지만, 상지고에서 첫 보결을 하는 날에는 꽤 충격이 컸다. 단순히 다큐멘터리 하나 틀어주고 그걸 보고 준비된 학습지를 작성하는 수업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 고등학교 교실에 와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실습 때는 그렇지 않았다. 군포고 황미영 선생님은 상당히 학문적인 고3 수업을 하는데도 매일 두세 가지 다른 활동을 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스토리보드도 만들고, 토론도 하고, 가상 도시 발전 지도도 그려보고, 퀴즈쇼도 하고, 트윗도 만들고, 랩도 듣고, 아무튼 안 하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반미선 선생님은 상대적으로 하루하루는 주로 텍스트를 보거나 사진, 영상을 보면서 토의하는 비슷비슷한 수업 구조였지만, 그래도 날씨가 좋으면 동네 산책하면서 지역사도 살펴보고, 하루에 한 가지 정도는 미술, 음악, 체험 같은 색다른 활동을 했다.
그래서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수업을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 교장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그냥 교과서로 진행하는 방법을 조언받았을 때도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오래된 작은 사립학교라 옛날식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옥토중에서 힘겹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상지고에 갔더니 그런 수업 계획을 받은 것이다.

그래도 배운 것과 비슷한 수업을 하던 옥토중을 경험하고 나서도 충격이 있었던 것은 선입관 때문이기도 했다.
교사로 일하기 전에 학생 시절에 회암교육청에서 멘토로 상지고 학생을 가르치면서 그 학생이 듣는 몇몇 수업 내용을 보게 됐는데, 수학은 문제 풀이가 대부분이고 역사도 사실을 묻는 위주의 지필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군포고 역사과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묻는 지필시험으로 평가를 하는 선생님은 한 명도 없었기에 상지고는 좀 오래된 방식의 교육을 하는 분위기인가 싶은 느낌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그런 단순한 수업 계획을 마주하게 되니 더 실망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알고 보니 보결 수업 계획은 선생님마다 제각각
그런데 이제 돌아보니 그런 게 아니다. 보결 교사 때만 교과서를 읽고 담당 교사가 수업할 땐 다르게 하는 경우도 많다.
보결 교사를 3년 차가 되면서 상지고 선생님 대부분의 수업을 맡아봤는데, 어떤 선생님은 진짜 자기 수업 계획 그대로 맡기는 사람도 있고, 어떤 교사는 보결 교사가 따라 하기 편한 단순한 수업 계획을 하기도 한다. 어떤 교사는 두 가지 방법 모두 보결 교사에게 열어놓고, 선택에 맡기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온타리오주 모든 선생님들이 평소에는 황미선 선생님 같은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본 수업 중 교사협회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모범으로 꼽을 만한 사례고, 보결 수업처럼 단순하진 않더라도 평소에도 조금 더 지식 위주의 식상한 수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보결 교사에게 감독만 하면 되는 시간을 맡기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자습 시간(Work Period)이라고 번역해야겠지만, 주로 기존에 진행 중이던 과제를 마무리하거나 새로운 학습지지만, 기존에 배운 내용을 토대로 스스로 할 수 있는 학습지를 하게 된다. 그 외에도 그동안 밀린 평가 과제를 하거나 타 과목 과제를 허용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경우는 그야말로 자습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로 심화 교과를 하는 고2, 고3 수업에 이런 경우가 많은데 한편으로는 아무래도 전공 교과가 아닌 보결 선생님이 들어오면 가르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잘못된 수업을 하게 두느니 자습을 시킨다
물론 보결 교사를 생각해서만은 아니다. 보결 교사가 제대로 못 가르치면 어차피 새로 가르쳐야 하는 정도를 넘어 오개념만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군포고의 황 선생님은 그래서 보결 선생님을 부르는 데에도 까다로웠다. 역사 전공이어도 이전 보결 수업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시 안 부르고 그냥 아무나 불러서 자습을 시키거나 차라리 교생에게 수업을 맡기고 보결 교사에게 감독을 맡기기도 했다.
심지어 교감 출장으로 직무대행을 하기 위해 보결이 필요했던 날에는 수업 계획 시간으로 공강이 있는 친한 다른 선생님에게 부탁해 보결을 맡기고 다음 날 자신의 수업 계획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물론 교내에서 이런 식으로 보결을 처리하는 일은 흔하지는 않다. 가끔 업무상 이유로 한 시간 보결 수업을 하게 되고 긴급 보결 교사도 못 구하면 관리자가 그 교실을 감독하는 일이 좀 더 일반적이다. 그런데 황 선생님은 비전공자인 관리자에게도 수업을 맡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자습이나 단순한 학습지 활동 감독부터 실제 수업을 그대로 하는 계획까지 다양한 계획이 있는 가운데서, 일과가 끝나고 가장 보람이 있는 날은 때로는 모르는 과목을 공부해 가며 가르치는 어려움을 겪더라도 어떻게든 학생들의 학습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