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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서 '길'을] ①자살=극단적 선택?...개인 문제로 치부된 공적 언어의 부재

‘선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투병의 끝’으로 바라보기

더에듀 | 한국은 자살률 1위라는 현실을 안고 있지만, 동시에 회복의 힘을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도 품고 있다.  <더에듀>는 고통의 시간을 지내고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안신영 큐어링랩 대표의 ‘상처에서 길을’ 연재를 통해 조용히 상처를 견디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의 고통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다. 더불어 사회가 함께 공감하고 회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여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OECD 자살률 1위, 모든 세대가 위험에 놓인 한국


오늘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5.2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하루 평균 36명이 목숨을 끊고 있는 셈이다.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 그리고 노년의 상황 모두 절망적이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자살은 이미 가장 높은 사망 원인이다. 중·고등학생 열 명 중 한 명은 우울감을 호소하며, 6% 이상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다. 보호받아야 할 시기에 오히려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청년에게도 자살은 교통사고나 질병보다 더 흔한, 가장 큰 죽음의 원인이다. 노인 자살률은 OECD 평균의 세 배에 달한다.

 

 

한국 사회가 삶의 출발선부터 마무리까지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죽음의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된 사회라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토양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 부른다. 순간의 충동이나 개인의 의지로 축소시켜 버린다. 하지만 자살은 결코 선택이 아니다. 오랜 시간 이어진 보이지 않는 투병의 끝이다. 우울증과 불안, 트라우마와 외로움이 몸과 마음을 갉아먹어 삶의 힘을 소진시킨 결과이다.


개인의 경험 속에서 드러나는 사회의 부재


범죄 피해를 겪으면서 삶의 기반이 무너진 적이 있다. 치료와 소송, 생계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지만, 피해자를 지탱해줄 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었다. 고립은 점점 깊어졌고, 결국 자살 시도까지 내몰렸다. 그 순간은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살아낼 힘이 다 소진된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이런 죽음을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로 덮는다. 언어 하나가 긴 투병의 과정을 지워버린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는 높은 자살률 그 자체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고통에 응답하는 공적 언어의 부재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울증과 외로움 끝에 세상을 떠난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언어의 차이는 태도의 차이이고, 곧 제도의 차이로 이어진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승섭 교수’는 사회가 어떤 언어를 쓰는지가 질병과 고통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사회가 고통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외로움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집단적 질병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7명이 지난 한 달 동안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중 20% 가까이는 “항상 혹은 자주 외롭다”고 응답했다.

 

독거노인의 경우 심각한 외로움을 경험한 비율이 20%를 넘고, 사회적 고립 위험군은 36%를 웃돈다. 외로움은 이미 한국 사회의 일상적 풍경이자 치명적인 위험 요인이다.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외로움과 고립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온 결과다.

 

더 큰 문제는 치료받아야 할 이들이 치료조차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신과 진료는 여전히 비보험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치료비는 개인의 몫으로 남고, 지속적 치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신적 투병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이를 감당할 복지 체계조차 마련되지 않다.

 

정신적 고통은 분명히 ‘투병’임에도 한국 사회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제도적 지원을 미루고 있다. 말로만 사회적 문제라고 할 뿐,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원이 가지 않는다.


해외 각국의 자살 예방 대응 방식


해외는 다르다.

 

‘영국’은 ‘외로움부 장관’을 신설했고, ‘일본’은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두었다. ‘뉴질랜드’는 GDP가 아닌 ‘삶의 만족도, 친절, 온정’을 국가 성취 지표로 삼는 LSF(Living Standards Framework)를 운영한다.

 

이들 국가는 자살률이 한국보다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고립과 정신건강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다루고 있다.

 

한국(25.2명)과 비교했을 때, 일본은 17.4명, 뉴질랜드와 영국은 11명 수준이다.

 

우리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대응은 오히려 뒤처져 있다는 것이 뼈 아픈 사실이다.

 

해외에는 ‘정신건강 연차’ 제도도 있다. 하루쯤은 우울해서 쉴 수 있는 권리다. 그러나 육아휴직조차 제대로 쓰기 어려운 나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건강 연차를 누가 감히 사용할 수 있겠는 가.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정신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이 칼럼을 연재하는 이유는 고통에 응답할 수 있는 공적 언어를 세우고 싶기 때문이다. 애도할 수 있는 말, 서로의 외로움에 다가갈 수 있는 말, 정신적 투병의 과정을 사회가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고 싶다. 언어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곧 제도를 움직이는 일이며, 결국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자살은 막아야 할 죽음이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삶을 붙드는 사회적 과제이다. 죽음을 막는 사회가 아니라,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 하루만큼은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 아닌 ‘보이지 않는 투병의 끝’으로 바라보고, 떠난 이를 애도하며, 여전히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손을 붙잡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안신영= 예비 사회적기업 ㈜큐어링랩 대표 안신영. 사회적 기업가이자 청년 창업가로, 외로움과 고립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범죄 피해와 정신적 투병, 그리고 자살 시도를 겪은 경험은 필자에게 고통을 숨기기보다 사회적 언어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명을 남겼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에게 “다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해결책은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비언어적이고 평가하지 않는 반려동식물을 통해 신경생리학적 리듬을 회복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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