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5 (화)

  • 흐림강릉 11.0℃
  • 박무서울 6.9℃
  • 흐림울릉도 10.2℃
  • 구름많음수원 7.3℃
  • 구름많음청주 8.8℃
  • 구름조금대전 9.0℃
  • 구름많음안동 8.3℃
  • 포항 9.0℃
  • 구름많음군산 8.2℃
  • 구름많음대구 10.3℃
  • 흐림전주 7.3℃
  • 맑음울산 11.7℃
  • 맑음창원 11.3℃
  • 구름많음광주 9.0℃
  • 맑음부산 12.5℃
  • 구름많음목포 9.3℃
  • 흐림고창 8.3℃
  • 흐림제주 12.0℃
  • 흐림강화 5.6℃
  • 구름많음보은 5.7℃
  • 구름많음천안 8.4℃
  • 구름조금금산 7.6℃
  • 맑음김해시 11.7℃
  • 구름많음강진군 10.0℃
  • 구름많음해남 10.3℃
  • 구름많음광양시 8.8℃
  • 구름조금경주시 9.7℃
  • 구름많음거제 12.3℃
기상청 제공

[박봉석의 THE교육]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의 함정

 

더에듀 | 요즘 교육 현장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그럴 수도 있지.”

 

아이가 실수를 해도, 친구를 괴롭혀도, 심지어 교사에게 무례한 행동을 해도 이 말은 손쉽게 따라붙는다.

 

“아직 어려서 그래요.”

“요즘 아이들은 다 그렇죠.”

 

겉으로는 이해와 배려 같지만, 어느 순간 아이를 향한 방임으로 미끄러지곤 한다.

 

공감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태도이다. 하지만 방임은 아이의 행동을 그냥 흘려보내는 태도이다. 둘은 결코 같은 이름을 가질 수 없다.

 

공감이 교육의 출발이라면, 훈육은 교육의 마침표이다. 공감만 있고 훈육이 없다면 아이에게 남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무한한 자기중심성이다.

 

“그럴 수도 있지”가 아무런 점검 없이 반복될 때, 아이들은 행동의 결과를 마주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고쳐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다.

 

물론 공감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넘어져 눈물을 삼키는 아이, 실수로 마음이 다친 아이, 혼자 외로움에 머무는 아이. 그 아이들에게는 따스한 마음을 건네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나 친구를 때린 아이, 규칙을 반복해서 깨는 아이,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에게 말대꾸하는 아이에게 “그럴 수도 있지요”라는 말은 책임을 비껴가게 만든다.

 

진짜 공감은 훈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니?”

“그럴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 행동은 옳지 않아.”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대화가 공감과 훈육이 균형을 이루는 태도이다. 공감은 마음을 열게 하고, 훈육은 행동을 바꾸게 한다. 두 가지가 함께 갈 때 비로소 교육이 제 역할을 한다.

 

공감만 남으면 아이는 책임을 잃고, 훈육만 남으면 아이는 상처를 간직한다. “그럴 수도 있지”는 때로 아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어른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내뱉는 말이 되기도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어른은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사람도, 아무 말 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공감으로 다가오되, 책임을 짚어주는 사람이다. 그런 어른을 만날 때 아이는 자기 행동을 돌아볼 줄 아는 품격을 배운다.

 

이해는 필요하지만,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감과 훈육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 교육이 다시 세워야 할 자리이다.

 

배너
배너
좋아요 싫어요
좋아요
0명
0%
싫어요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