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제주 서귀포여자중학교 자율동아리 ‘슬가람시인들’ 소속 학생 12명이 지난해 1년 동안의 문학활동을 결산하는 시 문집을 세상에 내놨다. 1년간 매월 2회씩 모여 시를 쓰고 토론을 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을 거쳐 정서적 성장과 소통 능력도 함께 높아졌다. <더에듀>는 시 문집 ‘슬가람시인들’을 세상에 소개하며, 학생들의 지난 1년을 기록하고자 한다. 시인 학생들 소속은 시 작성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행성> 전윤빈 고요한 밤하늘에 행성들은 말을 삼킨 채 천천히, 끝없이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그들은 늘 제자리를 지킨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교육부가 표준수업시수 법제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직무유기 상태라는 지적의 감사원 공익감사가 청구됐다. 대한초등교사협회(대초협)는 11일 감사원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청구서를 제출했다. 지난 2002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한국교원노동조합(한교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초중등학교 교원의 표준수업시수를 설정’하기로 했다. 전교조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임을 강조하며 초중고 각각 18-18-16시간을 요구했으나 교육부는 24-20-18시간을 안으로 마련해 평행선을 달렸다. 이후 2007년 전교조와 정부는 20-18-16시간이 적정하다는 데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법제화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대초협은 정부가 표준수업시수 법제화 약속을 어겨 국민에 대한 행정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무려 2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국가 기관의 공적인 약속을 믿고 묵묵히 교단을 지켜온 교사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피해와 절망만을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학교 내 인력 운용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대초협은 “초등 담임교사들은 주당 20~29시간을 담당하지만 일부 비교과 교사들은 0~3시간만 담당한다”며 “동일 급여 체계를 적용하는 만큼 수업 시수가 적은 인력에게 창의적체험활동이나 안전·보건 교육 등을 분담시켜 담임교사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상식적인 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24년 교육부 업무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교사는 하루 평균 1.7시간을 수업 준비에 쓴 반면, 2.3시간을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데 사용했다. 이들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익감사 청구서를 감사원에 접수하며 ▲교육부 엄중 감사 ▲초등교사 표준수업시수 20시간 법제화 및 초과 수당 즉각 신설 ▲수업 시수 부족 인력에게 정당한 업무 분담 등을 요구했다. 청구서에는 300명이 넘는 현장 교사들이 서명했다. 한편, 대초협은 지난해 국민의힘에 △주당 표준수업시수 상한제 △교무업무전담 행정교사 선발 △교사의 수업 의무 법제화 △교원 업무 정상화 특별법 제정 △학급당 학생 수 단계적 감축 등 5대 수업 중심 교육 공약을 제안했다.
더에듀 | 즐겨 읽는 책 중에는 최재천 교수의 저서들이 책장의 공간을 상당히 차지한다. 그가 저술한 다양한 책 속에서 반복되는 교육적 메시지는 늘 우리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성찰’의 기능을 수행한다. 고교 시절 의대 진학에 실패에서 우연히 동물학을 공부하게 된 배경의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실패 경험인 것 같지만 그가 택한 ‘전화위복’의 자세는 학자로서 반듯한 입지를 구축한 일종의 복음서와 같다. 이 글에서는 생물학자로서 그의 사상과 특히 저서 ‘희망수업’을 통해서 우리 교육에 시사하는 바를 중점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대한민국 교육은 거대한 ‘승자독식의 실험장’으로 변질됐다. 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고, 옆자리 친구에게 노트조차 빌려주기를 꺼리며 넘어야 할 벽이자 적으로 인식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배움의 전당이 아닌 생존의 전쟁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살벌한 풍경 속에서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가 건네는 ‘희망수업’은 단순한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우리 교육이 잃어버린 '생명의 본질'을 되찾아 주는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평생 자연을 관찰하며 얻은 통찰을 통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비결이 ‘연대’와 ‘협력’에 있음을 역설한다. 그는 책에서 “인간은 혼자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며, 교육의 목적을 개인의 성공에서 인류의 공생으로 확장한다. 자연계에서 가장 성공한 종들은 예외 없이 협력하는 종들이라며 인간 역시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s)’, 즉 공생하는 인간으로 진화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p.42) 이런 사실은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린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한다. 교육학적으로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는, 파편화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지성의 전당인 하버드 대학 출신의 생물학자답게 ‘생태적 감수성’이라는 거대한 그릇 안에 모든 학문을 ‘통섭(최 교수가 처음으로 소개한 단어)’하려 시도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질문 없는 교실’을 꼽는다. 그는 자신의 유학 시절, 엉뚱한 질문을 던졌을 때 “Good Question!”이라며 눈을 반짝이던 스승들의 태도가 자신을 학자로 만들었음을 고백한다. 그가 전하는 몇 가지 우리 교육에의 강력한 성찰적 요소를 살펴보자. ①실패를 허용하는 힘: 과학은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끊임없이 틀리면서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p.88) ②통섭(Consilience)의 실제: 그는 문과와 이과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 위기나 팬데믹은 생물학적 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인문학)가 동반될 때만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156) 이처럼 ‘희망수업’은 교육이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용기”(p.112)를 길러주는 과정이어야 함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최 교수 목소리를 빌려 우리 교육의 미래를 제안한다면, 그것은 ‘경쟁’에서 ‘경연’으로의 대전환이 될 것이다. “누군가를 짓밟고 일어서는 ‘경쟁(Competition)’이 아니라, 각자의 기량을 뽐내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경연(Contest)’의 장이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p.210)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우리 교육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첫째, 다양성의 존중이다. 숲이 건강하려면 수만 종의 생물이 공존해야 하듯, 교육 현장도 1등부터 100등까지 한 줄로 세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100명이 각자의 방향으로 1등이 되는 ‘다양성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둘째, 생태적 전환이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나의 확장’임을 가르쳐야 한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p.245)는 최 교수의 좌우명은 환경 교육이 교과서를 넘어 삶의 태도로 정착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셋째, 숙성하는 배움이다. 그는 공부를 ‘평생 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입시라는 단기 레이스가 아니라, 세상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일깨워 주는 평생 교육의 관점이 도입되어야 한다. ‘희망수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이 필요함을 가슴속에 품게 된다. 우리는 과연 아이들에게 이기기 위한 무기를 쥐여주고 있는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손을 내미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가? 최재천 교수가 제시하는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생명체와 손잡지 않고는 인간도 생존할 수 없다”(p.302)는 냉철한 생물학적 진리에 기반한 절박한 희망이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최 교수가 주장하는 이러한 ‘공생의 문법’을 펼칠 때, 비로소 교실은 숨을 쉬고 아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교육학의 영원한 슬로건,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진리는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공생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기성세대가 교육의 문을 활짝 열어주어야 할 때라고 믿는다.
더에듀 | 대한민국에서 역사 논쟁은 언제나 정치로 이어지고, 정치 논쟁은 결국 교육으로 돌아온다. 그 상징적인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은 누구인가.” 이 질문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승만’이라는 이름이 있다. 이승만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단순한 인물 평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출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수 역사관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실제로 태어난 시점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며, 그 국가의 초대 지도자는 이승만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선택했고, 공산주의 팽창 속에서 국가의 생존을 지켜냈다. 특히 ‘한국 전쟁’이라는 국가 존망의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은 이 체제 선택 덕분이라는 평가이다. 반면, 진보 역사관은 다른 지점을 강조한다. 대한민국의 뿌리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며, 1948년은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승만 정권의 권위주의 정치와 장기 집권, 그리고 ‘4·19 혁명’으로 이어진 역사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두 시선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역사 논쟁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국가 인식을 배우고 있는가.” 역사 논쟁이 교실로 들어온 나라 한국의 역사 교육은 오랫동안 정치의 영향을 받아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해석이 달라지고, 역사 서술의 강조점이 바뀌었다. 어떤 시기에는 국가 정통성이 강조되었고, 어떤 시기에는 민주화 투쟁이 중심 서사가 되었다. 문제는 그 사이에서 학생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기본 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국가는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해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 헌법, 시장경제, 시민권, 국가 책임이라는 기본 구조를 모른 채 역사 논쟁만 배우는 교육은 균형 잡힌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교육감 선거는 단순한 행정 선거가 아니라 교육 철학의 경쟁이 되고 있다. 필자는 그동안 교육 담론에서 ‘교육은 이념이 아니라 경영’이라는 화두를 던져 왔다.교육을 이념 논쟁의 장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설계하는 운영 시스템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 논쟁을 넘는 교육의 기준 건국 대통령을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민주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교실에서 필요한 것은 논쟁 그 자체가 아니라 기준이다. 대한민국은 어떤 국가인가. 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는가. 국가는 시민에게 무엇을 책임지는가. 이 질문에 대해 학생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은 결국 미래를 만드는 작업이다.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도 과거의 승패를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대한민국 교육, 이념 논쟁 속에서 흔들릴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설계하는 교육 경영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이들의 교실에서 시작되는 선택이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 <더에듀>는 교육감 선거 출마자들의 칼럼을 받고 있습니다.
더에듀 | 제주 서귀포여자중학교 자율동아리 ‘슬가람시인들’ 소속 학생 12명이 지난해 1년 동안의 문학활동을 결산하는 시 문집을 세상에 내놨다. 1년간 매월 2회씩 모여 시를 쓰고 토론을 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을 거쳐 정서적 성장과 소통 능력도 함께 높아졌다. <더에듀>는 시 문집 ‘슬가람시인들’을 세상에 소개하며, 학생들의 지난 1년을 기록하고자 한다. 시인 학생들 소속은 시 작성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시험> 김도희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도 천천히 오라고 해도 다가오지 말라고 해도 기어코 나에게로 다가오는 세계 최고의 재앙
더에듀 지성배 기자 | 김영배 서울교육감 예비후보가 보수 후보 단일화 기구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후보자들과 원칙을 먼저 세워야 하지만 이행되지 않은 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이다. 김 예비후보는 10일 후보 단일화 기구에 원칙과 기준이 없다면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보수 진영 후보 단일화 기구인 서울·경기·인천 좋은교육감후보 추대시민회의(좋은교육감시민회의)는 지난달 23일 (직함생략)김영배·류수노·신평·윤호상·이건주·임해규 등 6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며 본격 출발을 알렸다. 그러면서 3월 말~4월 초 단일화 완료 및 추대하기로 했다. 방식은 후보들이 합의한다. 이를 위해 3월에 후보 토론회와 심층인터뷰, 공약 발표회 등의 진행을 예고했다. 그러나 김 예비후보는 원칙을 세우는 데 후보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의 주장은 먼저 후보들 간 합의한 원칙을 마련하고 단일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김 예비후보는 “후보의 기준, 절차, 일정, 로드맵, 방송채널선정 등 단일화 절차와 형식은 오로지 후보들 간의 서면 합의에 의한 공정함이 최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좋은교육감시민회의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후보들이 100% 여론조사 방식에 동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날 좋은교육감시민회의는 김영배 예비후보가 빠진 채 5명과 간담회를 열었다. 김 예비후보가 다른 일정을 이유로 참석치 않은 이 자리에서 여론조사 100%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확정됐으며, 단일화 기구는 “사실상 합의”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 김 예비후보는 “해당 기구가 추진하는 어떠한 서류에도 서명한 바 없으며 논의 과정에서 특정 방식에 합의한 사실 또한 전무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유튜브를 통해 열린 6인 공개 토론회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선관위 예비후보 등록조차 하지 않은 인물을 후보자로 참여시켜 유권자의 선택에 혼선을 준 이런 토론회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는다”며 “단일화 기구에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 좋은교육감시민회의 관계자는 후보자들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알리며, 대화를 진행해 사정을 들어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절대 단일화 기구가 끌고 가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중동 지역 군사 분쟁 심화로 이란 및 중동 7개국 거주 교민 조기 귀국 상황에 맞춰 재외국민 특별전형 자격 요건을 올 1학기까지 인정하기로 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은 1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중동 상황 관련 재외국민 특별전형 운영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현재 외교부는 이란에 5단계 여행경보(여행금지), 바레인과 UAE,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일부, 요르단 일부 등 7개국에 3단계 여행경보(출국 권고)를 발령한 상태이다. 이에 이란 및 중동 7개국에 거주 중인 교민의 조기 귀국하더라도, 재외국민 특별전형 자격요건은 올 1학기까지 인정하는 특례를 각 대학에 안내했다. 즉, 현 시점에 귀국해도 올 1학기까지 자격요건은 충족한 것으로 인정한다. 또 중동지역 상황 악화로 인한 제3국 체류 및 재학에 대한 인정은 대학별로 상황을 참작해 판단할 것을 권장했으며, 분쟁상황이 연장될 경우 특례 적용도 연장 가능하다고 밝혔다.
더에듀 | 나는 중등학교 역사 시간 서세동점기에 태국은 인도차이나반도 중앙에 위치해 식민지를 당하지 않았다고 배웠다. 완충국이어서 식민지가 되지 않는 행운을 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최근 태국을 여행하면서 완충국만으로 독립을 지켜낸 것이 아님을 알고,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조선 고종, 일본 메이지, 태국(당시 시암) 라마 5세는 모두 유사한 시기에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왕으로 40여 년 간 재위했다.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세 군주는 모두 19세기 말~20세기 초 동아시아 근대화와 제국주의 시대의 중심인물로, 제 나라의 운명을 크게 바꾼 지도자들이었다. 일본 메이지는 근대화에 성공해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이 되었고, 조선 고종은 근대화와 외교에 실패해 식민지로 전락했으나, 태국 라마5세는 나라의 독립을 지키자는 노력으로 나라를 지켜냈다. 세계사에 비추어 세 군주가 당시 적절한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비교사적으로 보면 더 잘 보인다. 세 나라의 군주를 비교해 보기로 하자. 태국(당시 시암) 라마5세 태국의 쭐랄롱꼰Chulalongkorn 라마 5세(1853~1910, 1868~1910 총 42년간 재위)는 당시 시암(현재 태국)의 근대화를 이끈 대표적 군주이다. 그는 아시아 군주 중 최초로 유럽을 방문했고, 근대화에 앞장선 일본을 방문(1897)해 메이지 정부와 교류하면서 일본을 근대화의 모델로 삼았다. 일본의 서구 문물 수용, 독립 유지 전략을 배우고 군사 행정 개혁을 참고했다. 일찍이 근대적 개혁, 균형 외교를 통한 독립 유지에 애썼던 라마 4세를 이은 라마5세는 태국에서 군주제를 유지하면서 서양식 근대적 행정제도와 법률제도를 정비하고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확립하였으며 근대적 군대를 창설했다. 철도 건설, 우편 전신 제도를 도입했다. 단계적으로 노예제를 폐지하고 서양식 학교를 세워 국민을 교육하여 ‘국민통합’을 이루었다. 그는 태국의 근대화를 서둘러 미개한 나라를 문명화한다는 제국의 식민지화 명분을 극복했다. 인도·버마·말레이를 차지한 영국의 동진(東進)과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병합한 프랑스의 서진(西進) 사이에서 독립 외교를 벌여 국가의 식민지 전락을 막았다. 태국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 중립지대, 즉 완충지대를 두면 좋다는 양국의 이해관계를 잘 활용한 균형 외교, 중립 외교를 한 것이다. 태국은 말레이·라오스·캄보디아 등 일부 영토를 양보해 ‘살을 일부 베어주고 뼈를 지키는’ 전략을 유지했다. 라마 5세는 태국은 노예제 폐지와 내부 통합, 근대적 법제와 행정제도 도입, 서양식 군대 학교 철도 통신망 구축, 능숙한 외교술, 일본 성공 사례 모방 등으로 나라의 독립을 유지하는데 기여해 ‘대왕’으로 칭송된다. 일본 메이지 천황 일본의 메이지 천황(1852~1912, 1867~1912 총 45년간 재위)은 메이지유신(1868)의 주역이다. 에도 막부체제를 종식시키고, 폐번치현을 통해 봉건적인 번체제를 폐지하여 지방영주의 권한을 박탈했고, 사무라이의 특권과 칼 차는 것을 폐지하였으며, 일부 사무라이 엘리트를 중심으로 천황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를 수리했다. 그는 근대적 메이지 헌법을 공포(1889)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했다. 서양학문을 적극 수용하고 의무교육체제를 도입했다. 오늘날 동아시아 교육에 쓰이는 교과명이나 주요 학술어는 거의 모두 일본이 정립한 것이다. 당시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철도 건설, 근대적 은행제도, 군수, 제철, 조선 산업을 육성했다. 징병제(1873)를 도입했고 서양식 육·해군을 창설하여 수뇌들은 내각을 거치지 않고 천황과 직접 국정을 상의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조선과 대만에 영향력을 확보했고, 과학적으로 철저히 준비한 러일전쟁의 승리로 세계 강대국 반열에 올랐다. 메이지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해 천황과 의회가 협치하는 근대산업국가로의 전환에 성공하였고,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도약하면서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하는 제국으로 발돋움시켰다. 앞서 라마 5세가 노예제 폐지, 절대군주의 왕권을 지키는 중앙집권화, 서양식 법 행정제도 도입, 영토 일부 양보 등으로 식민지화를 방지하면서 국가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어적 근대화’를 했다면, 메이지는 막부체제 붕괴, 징병제 도입, 공업화, 해외 전쟁 수행 등으로 서구 열강과 동등한 강대국 제국으로의 ‘공격적 근대화’를 했다. 나라를 지키는 근대화와 강대국이 되기 위한 근대화의 차이였다. 조선 고종 조선(대한제국)의 고종(1852~1919, 1864~1907 총 44년간 재위)은 초기는 흥선대원군의 섭정을 통해 쇄국정책을 펼쳤고, 친정을 하면서 근대행정기구인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1897)하여 절대왕권을 수립했고 형식상 청나라와 종속관계에서도 조금 벗어났다. 근대적 토지조사사업, 상공업 진흥, 전차 철도 우편 제도 도입, 별기군과 같은 신식군대로의 재편을 시도한 광무개혁도 단행했다. 그러나 개화파와 수구파의 갈등, 외척의 발호, 갑신정변(1884)과 동학농민운동(1894) 등으로 혼란을 거듭하여 좀처럼 근대화의 진척을 보지 못하였다. 양반중심의 신분제는 유지됐고, 근대국민국가를 만들 수 있는 ‘국민’을 만들지 못했으며, 결국 근대적 의미의 국민통합을 이루지 못했고, 전통적 봉건적 왕조체제에 머물렀다. 외교는 국제관계나 국제정세를 읽지 못하고 친청, 친러, 친미로 옮아가며 갈팡질팡했다. 그 결과 1095년 을사조약으로 인한 외교권 박탈, 1907년 강제퇴위·정미7조약으로 인한 군대 강제 해산으로 1910년 한일합방을 맞이했다. 우리가 배우지 못한 한일병합조약의 내용은 왕과 왕실, 고관대작, 지방유지 등에게 작위와 은사금 및 관리로의 등용을 약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총 한 방 안 쏴보고 나라를 팔아넘겼다. ‘착한 조선’이 ‘나쁜 일본’에 의해 강점당했다는 가르침은 매우 의문시된다. 고종은 자주독립의 인식은 있었으나 국제정세와 국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불우한 군주였다. 일본은 급속한 산업과 군사적 성장을 했으나, 조선은 국내의 혼란과 갈등, 경제 군사적 열위, 내부 개혁의 지지부진, 국제정세에 어두운 외교 실패로 인한 국제적 고립 등으로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세 나라, 세 군주 비교 역사학자 아널드 J. 토인비에 따르면 역사는 도전과 응전으로 엮인다. 이는 당면한 사태에 대한 서로 다른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시대, 아시아에 닥친 제국주의 세계 질서, 서세동점의 유사한 위기, 근대국가를 만들고 국가의 독립을 지킬 수 있는가에 대한 다른 선택의 결과, 각국은 서로 다른 운명을 맞았다. 일본은 강해져서 살아남았고, 태국은 외교로 살아남았으나, 조선은 열강의 전장이자 식민지로 전락했다. 일본의 메이지 천황은 변혁군주로, 태국의 라마5세는 나라의 독립을 지키려 한 개혁군주로, 조선의 고종은 국내외 위기 속의 우유부단했던 불우한 군주로 자리매김했다. 근대화에 대해서도 일본은 메이지 유신, 신분제 폐지, 산업화로 급진적 근대화를, 태국(시암)은 노예제 폐지, 행정 개혁, 균형 외교로 점진적 개혁을, 조선은 갑오개혁, 광무개혁, 정치적 갈등, 개화파와 수구파의 갈등, 외척 발호, 외교 혼선으로 혼란스런 개혁에 휩싸였다. 제국주의와 국제정치 속 외교 전략을 비교해 보면, 일본은 팽창 전략을, 태국은 완충국 외교를, 종주국 청의 영향 아래 조선은 강대국 의존 외교를 채택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근대 국민형성을 통한 근대국가를 만드는 데서도 신분제 폐지, 군대와 징병, 국가 동원 능력, 산업 경제력 기술력 기반이 서로 달랐다. 결국 일본은 제국주의 강대국이 되었고, 태국은 독립국가를 유지했으며,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했다. 요컨대 19세기 후반 동아시아를 이끈 세 군주의 역사는 근대화와 독립은 당대 지도자였던 절대군주의 능력에 크게 의존했음을 보여준다. 메이지 천황은 결단력과 혁신적 개혁 의지로 일본을 근대적 산업국가, 강대국으로 탈바꿈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 팽창까지 성공했다. 라마5세는 태국이 영국과 프랑스 같은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균형 외교와 점진적 개혁을 능숙하게 조율했다. 반면 고종은 자주독립과 근대화에 대한 인식은 있었으나, 청일러 사이에서 국제정치에서 고립되고 경제·군사력에서 열세였던 구조적 한계, 내부 정치의 혼란과 개혁 지연으로 인해 병합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본인과 왕실은 별 손해날 것이 없었으나 식민지 아래 대다수 백성들은 노예적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절대군주의 능력과 의지와 그가 지휘했어야 할 내외적 조건으로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산업화 수준, 군사력, 국제 질서, 내부 정치 구조, 국민교육 등 외부적·구조적 요인을 잘 조율했을 때만 국가의 독립과 근대화가 가능했다. 즉, 일본과 태국은 능력과 환경이 맞아떨어졌고, 조선은 인식은 있었으나 내외부 구조적 제약 때문에 실패했다. 따라서 19세기 동아시아 근대화와 주권 유지의 역사는 군주의 능력과 그가 조율했어야할 구조가 서로 얽힌 복합적 역사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 군주의 선택과 운명을 통해 우리는,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개혁의 추진력과 내외부 환경조건의 조화임을 깨닫게 된다. 20세기와 21세기 초반부 한국 미중갈등 속에서 오늘날 우리 역사교육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원조를 받던 최빈국이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공산화를 이겨내고 근대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나라를 두고, 한쪽은 종북중러를 하면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한쪽은 한미일 동맹을 통해 자긍심과 애국심을 품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 교육에서는 19세기 말 조선이 여러 나라와 맺은 조약들을 종합 비교해서 가르치지 않는다. 단지 일본과의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불평등 조약으로 규정하면서, 조약의 특정 조항, ‘일본인이 조선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일본 영사관에서 처벌하고, 조선인이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조선영사관에서 처벌한다.’에서 뒤는 자르고 앞만 가르치면서 불평등조약이라고 가르친다. 당시 조선이 일본과 서양 열강들(미·영·독·프·러)과 맺은 조약은 조선이 자주국, 독립국, 주권국으로 인정된 바이나, 청나라와 맺은 것은 대등한 독립국가 간 ‘조약’이 아니라 종주국과 부속국의 ‘장정’(章程)에 불과했다. 청은 우리가 서구 열강과 조약을 맺을 때마다 조선이 청의 부속국임을 단서 조항으로 할 것을 요구하여 거절당한 바 있었다. 얼마 전 시진핑은 세계를 향해 대한민국은 수천년간 자기들의 속방이었다고 비하 폭언했다. 당시 모든 조약을 나란히 비교해 보면 청나라와 맺은 ‘장정’이 가장 불평등했고, 다른 나라와의 조약은 유불리를 따져서 교육할 일이다. 우리는 일본과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나 식민지 청산의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심지어 6.25 이후 70여년 간 전쟁을 막아주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숨기고 안 가르친다. 여차하면 반미를 하라고 가르친다. 일부 좌파진영 정치인들은 후쿠시마 원전오염수 선동에서 보듯이 왜곡된 역사를 배우면 결국 ’반일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선전선동에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역사를 편향되게 가르치는 것이다. 국민들을 이렇게 우매하게 키운 대가는 장차 무엇으로 귀결될까?
더에듀 | 제주 서귀포여자중학교 자율동아리 ‘슬가람시인들’ 소속 학생 12명이 지난해 1년 동안의 문학활동을 결산하는 시 문집을 세상에 내놨다. 1년간 매월 2회씩 모여 시를 쓰고 토론을 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는 과정을 거쳐 정서적 성장과 소통 능력도 함께 높아졌다. <더에듀>는 시 문집 ‘슬가람시인들’을 세상에 소개하며, 학생들의 지난 1년을 기록하고자 한다. 시인 학생들 소속은 시 작성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애착인형> 최윤슬 너랑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지 너가 갓난아기 일때도 유치원에서 첫 소풍을 간 날에도 가족끼리 여행을 갔을때도 매일 밤 잠에 들 때도 꿈 속 여행을 할 때도 우린 늘 함께 였어 이제 너가 많이 컸나봐 나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너는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고 핸드폰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어 나는 너와 노는 시간보다 침대밑에 있는 시간이 늘었어 그래도 난 괜찮아 이제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돼 나는 너와 함께한 모든 기억들을 가지고 너를 바라볼게
더에듀 | 1992년 개봉한 페니 마샬 감독의 영화 ‘그들만의 리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 위기에 처한 메이저리그 대신 발족한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 리그 실화를 다룬 코미디이다.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 만들어 낸 이 ‘대체 리그’는 당시로선 고육지책이자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2026년 6월 3일 치러질 제9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펼쳐지는 교육감 선거 양상은 영화 제목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모양새이다. 영화는 감동이라도 주었지만, 현재의 교육감 선거는 유권자의 무관심과 제도적 허점 속에서 그들만의 권력 다툼으로 변질되고 있다. 교육감 선거에 없는 세 가지: 당사자, 정당공천 그리고 룰 교육감 선거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데에는 세 가지 결정적인 결핍이 존재한다. 첫째, 교육의 당사자가 없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교육을 관장하는 수장을 뽑는데, 정작 교육의 핵심 주체인 교사들은 정치 기본권이 없다는 이유로 선거에 어떤 방식으로도 개입할 수 없다. 둘째, 정당 공천이 없다. 무소속 후보를 제외하면 정당이 후보를 걸러주는 타 선거와 달리, 교육감 선거는 검증 장치가 전무하다. 매번 10명 내외의 후보가 난립하는 이유이다. 정당 공천은 없지만 현실은 ‘진보 대 보수’로 양분되다 보니, 승리를 위한 ‘단일화’만이 지상과제가 된다. 셋째, 단일화 룰이 없다. 공직선거법상 정당이 아닌 단체가 단일화를 추진하는 수단은 극히 제한적이다.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보수적이고 느리다. 법적 공백 상태에서 현실을 짜맞추다 보니 온갖 잡음이 발생한다. ‘절대 선’이 된 단일화, 후보 위에 군림하는 추진위 이런 제도적 결함을 파고든 것이 이른바 ‘단일화 추진기구’이다. 후보가 중심이 되어야 할 단일화 논의는 어느덧 특정 세력이 주도하는 추진기구에 의해 좌우된다. 이들은 ‘단일화’라는 대의를 앞세워 후보들 위에 군림한다. 추진위에 합류하지 않거나 원칙 없는 운영에 이의를 제기하면 순식간에 ‘진영의 분열 세력’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시 민주진보교육감선거 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추진위가 모집하는 ‘시민참여단’은 사실상 후보들의 조직 동원 통로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다수 시민이 추진위의 존재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5000원의 회비를 내고 가입할 이들이 과연 일반 시민이겠는가. 심지어 조직 동원의 폐해를 막겠다며 도입한 ‘1인 2표제’마저도, 지지 후보에게 한 표를 주고 나머지 한 표는 유력 경쟁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행사하는 이른바 ‘역선택’ 도구로 전락했다. 홍제남 서울교육감 선거 예비후보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공개질의서를 추진위에 보냈고, 2월 3일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추진위로부터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해 단일화 등록 서류를 내지 않았다. 고무줄 원칙과 오만한 태도, 누구를 위한 교육감인가 원칙 또한 고무줄이다. 추진위는 당초 2월 4일 경선후보 등록을 마감하며 “추가 합류를 위해서는 기존 후보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현직 정근식 교육감의 영입을 위해 등록 기한을 두 차례나 연장했고, 기존 후보 중 2명이 명확히 반대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공식 동의 절차 없이 등록을 강행했다. 그러고는 언론을 통해 ‘합류 환영’ 보도자료를 내며 사실관계를 왜곡하기까지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른바 ‘시민 사회 대표’라 자처하는 추진위 관계자들의 태도이다. 최근 추진위 상임대표가 SNS에 올린 글은 목불인견이다. 그는 후보들을 향해 “전화나 제대로 받으라”, “추진위는 영원한 엄마 같은 존재가 아니다”는 식의 감정 섞인 비난을 쏟아냈다. 이 글에서 읽히는 것은 활동가들의 고충이 아니라, 후보들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려는 추진위의 오만한 사고방식이다. 교육 수장을 뽑는 과정이 이토록 수준 낮은 감정 싸움과 권위주의로 점철되어야 하는가. 결론: ‘그들만의 리그’를 깨기 위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이재명 대통령이 SNS를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며 낮은 자세를 취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교육 자치를 실현하겠다는 교육감 선거판은 여전히 밀실 아닌 밀실에서의 단일화 놀음과 ‘상왕’ 노릇을 하려는 추진위의 구태에 갇혀 있다. 교육감 선거가 ‘깜깜이 선거’를 넘어 ‘그들만의 추태’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제는 시민들이 눈을 떠야 한다. 단일화라는 명분에 매몰되어 민주적 절차와 상식을 훼손하는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추진위는 후보들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후보들은 조직 동원이 아닌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정치 기본권이 박탈된 교사들 그리고 투표권조차 없는 학생들을 대신해 교육 행정의 수장을 뽑는 엄중한 선거이다. 2026년 6월, 우리가 목격하는 것이 영화 같은 감동일지, 아니면 저급한 코미디일지는 지금 이 순간 단일화 과정의 투명성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