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김연재 수습기자 | 작품명 ‘월빛루’(달이 비추는 길)가 (가칭)울산특수교육연구원 공사 설계 공모에 당선됐다. 장애 학생의 특성과 학습 속도를 고려한 공간 구성과 효율적인 동선 등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울산교육청은 26일 울산 중구 성안동에 설립되는 (가칭)울산특수교육연구원 설립 공사 설계 공모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번 설계 공모는 장애 학생들이 평등하고 차별 없는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미래 교육 기반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 또한 장애 학생의 재능 계발과 진로 설계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교육 공간과 지역사회와 연계된 개방형 공간 설계를 주요 방향으로 설정했다. 총 13개 작품이 접수됐으며, 심사 결과 주식회사 와이피디자인그룹 건축사사무소와 ㈜미건건축사사무소의 공동 작품이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당선작은 ‘월빛루(달이 비추는 길)’를 설계 개념으로 제시했다. 달빛처럼 조용히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의 삶을 비추며 성장과 자립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당선작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학습 속도를 고려해 공간을 구성하고, 다양한 직무 체험 시설을 마련해 장애 학생들이 차별 없이 배우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안했다. 대지의 높낮이 차이를 적극 활용해 건물의 층을 계단형으로 배치하고, 공간 영역별 구획 계획과 내외부를 효율적으로 연계한 동선이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 공간과 지역 주민 이용 공간을 분리한 구성도 인상적이다. 울산교육청은 약 7개월간 설계 용역을 거쳐 2027년 2월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며, 2028년 11월 준공을 목표로 한다.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대지 높낮이 차이를 활용한 영역 구분과 효율적인 동선 계획이 돋보인다”며 “학생과 지역 주민이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각각의 활동이 가능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창의적이고 안전한 교육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교원이 학습지원대상학생에게 정규수업 외 시간에 실시하는 교육은 아동복지법 적용을 제외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교원이 안심하고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국회 교육위원회)은 26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현재 학교는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습지원대상학생에게 학습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규수업 외 시간에 실시하는 학습지원교육을 두고 아동학대로 해석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 위축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김 의원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기초학력보장법 제8조 제2항에 따라 학습지원대상학생에게 교원이 정규수업 외 시간에 실시하는 학습지원교육은 아동복지법 적용을 배제하는 교육행위로 추가 신설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는 정당한 교육행위임을 법률에 명시해 교원의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것. 김 의원은 “학습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돕는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아동학대로 오해받아 위축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교원이 안심하고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학생 개개인의 학습권도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교 현장에서 기초학력 지원교육이 더 책임있게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현행법에서는 교원이 학생에게 생활지도, 교내 스마트기기의 사용·소지 제한 등 정당한 행위는 아동의 신체적·정신적 학대행위로 보지 않도록 아동복지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더에듀 | ▲국립외교원 파견 박지영 ▲국방대학교 파견 김현주 ▲국방대학교 파견 박대림 ▲교육자치협력과장 김진형 ▲교육부 신미경 ▲카이스트 파견 신광수 ▲카이스트 파견 문상연 ▲전북특별자치도 교육개혁지원관 파견 이용학 ▲중앙교육연수원 정책연수과장 남점순 ▲교육국제화담당관 최하영 ▲서울대학교 파견 김율
더에듀 | 지난 편에 교과지도교사(1수업 2교사제 포함), 비교과 생활지도교사, 상담교사의 채용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이러한 세 부류의 인력이 학교의 주류가 될 때, 학교는 비로소 살아있는 유기체가 된다. 행정 전문가는 줄이고, 학생지도 전문가는 늘려야 한다. 교육청에 앉아 있는 교육전문직보다 상담교사와 생활지도 교사가 훨씬 더 많이 배치된다면,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인 학교폭력과 기초학력 미달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나라들과 간략하게 비교해 봐도 우리가 나아갈 길은 자명하다. 다음은 우리나라와 해외 선진국의 초·중등 교육기관의 인적 구성 비교표다. 영국의 ‘학생 지도 인력’ 구조는 대한민국과 가장 먼 대척점에 있다. 영국의 평교사 비율은 46.5%로 낮아 보이지만, 실상은 교사 보조(TA), 생활지도 전문가, 상담사 등 40.2%를 차지하는 ‘지원 인력’이 교실 안에 함께 상주한다. 이처럼 영국은 교사 한 명이 고군분투하게 두지 않는다. 40%에 달하는 전문 지원 인력이 교실 최전선에서 아이들의 숨결을 챙긴다. 반면 우리는 그 인력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교육전문직’이라는 이름의 행정가들만 늘리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유사한 직군 구조를 가졌음에도, 전문직(지도주임)의 정기적 현장 복귀와 유연한 순환을 통해 행정의 동맥경화를 막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의 교육전문직은 현장과 유리되어 있다. 일본처럼 전문직을 ‘잠시 맡는 업무’로 되돌려놓지 않는 한, 상부 지시 철저 이행, 교사의 건의 묵살을 일삼는 보신 행정의 곰팡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1914년 교사 2명이 배치되어 있는 영국 초등학교의 2학년 학급 모습이다. 이 학교는 나의 네 자녀 중 세 명이 2년 반 동안 다녔으며,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저학년의 경우 한 학급당 세 명의 교사들이 학생을 지도했다. 우리는 영국의 초등교육 현장에서 중요한 암시를 얻을 수 있다. 학교 교육이 시작되는 만 5세부터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기 위해 한 교실에 3명의 교사를 배치하는 것은 행정이 교실을 ‘관리’하는 대신, 교실 속으로 ‘침투’해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님이 내가 기고했던 기사를 읽고 영국에서는 오래전 보조교사 제도가 정착됐는데, 한국에서는 보조교사에 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유학 경험을 통해 내가 목격한 제도를 한국 정부에 건의해 보조교사 제도를 시작하게 되었으나, 최근 들어 일부 ‘교육 수장’들이 IB 등에 집중하고 있어 잘 운영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학교 행사의 방송 장비 운용과 행사 진행, 사회 등을 교장이 모두 발로 뛰며 진행하는 것을 영국 유학 시절 네 자녀 중 세 자녀를 학교에 보낸 학부모의 시선으로 목격했다. 교사들은 교장과 장학사를 보필하러 따라다니는 대신, 학생들을 위해 안전과 정숙 지도를 하고 있었다. 교육의 힘은 화려한 정책 보고서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눈을 맞추는 그 찰나의 순간에 존재한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도 이처럼 유연하고 순환적이어야 한다. 현재의 고립된 전문직 직군을 해체하고, 모든 전문직이 정기적으로 교실로 복귀하는 ‘순환근무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행정업무를 하던 이가 다시 아이들의 서툰 글쓰기를 돕고, 수업에 헌신하던 이가 잠시 행정의 자리에 앉아 현장에 필요한 도구를 조달하는 방식, 이것이 바로 혈액이 심장과 온몸을 오가며 생명을 유지하는 근원적인 율동이다. 고착된 장벽을 허물고 생명의 숲으로 나는 제언한다. 교육전문직의 고정 직군을 폐지하고, 모든 교육행정 인력을 ‘순환하는 교사’의 범위 안에 두어야 한다. 첫째, 전문직 선발 과정에서 ‘승진 점수 계산기’를 치워야 한다. 점수가 아닌,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얻은 ‘생명의 지혜’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글쓰기 수학 수업처럼, 교사 자신의 교육 철학을 글로 쓰고 실천한 궤적이 전문직 임용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둘째, ‘전문직-교장-교감’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사다리를 해체해야 한다. 행정 지원은 직위의 상승이 아니라 ‘역할의 분담’이 되어야 한다. 행정을 경험한 교사가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행정의 문법을 아는 더 유능한 수업 전문가가 될 것이며, 수업을 진행하러 돌아온 장학사는 더 이상 학교 현장의 현실로부터 괴리된 공허한 보신 행정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셋째, 학교 문턱을 넘어서는 배움의 공간, 즉 동네 도서관, 각종 방과 후 교육기관 등을 교육청, 지자체, 중앙 정부가 책임지고 구축해야 한다. 현장의 필요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환하는 행정가’만이 각종 방과후 교육기관을 지을 수 있다. 흐르는 생명만이 교실을 구원한다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듀이는 삶을 미래의 고정된 목표를 위해 참아야 하는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현재 흐르고 있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보았다. 영국 소설가 D.H. 로렌스가 “살아있는 것은 변화하며, 정지된 것은 죽은 것”이라고 외쳤듯이, 교육전문직이 고정된 권력이 되어 교실 위에 군림할 때 우리 교육은 사멸한다. 그러나 행정과 현장이 벽을 허물고 서로의 자리를 오가며 순환할 때, 교실은 비로소 아름다운 것들이 우후죽순 돋아나게 될 것이다. 승진 계산기, 계급 상승 사다리를 던져버리고 다시 아이들의 눈동자를 응시하라. 교실이라는 교육의 흙바닥을 밟아라. 교육의 미래는 고립된 회의실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읽고 쓰는 소리로 가득 찬 교실 속에 있다. 순환하는 생명만이 우리 교육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다.<끝>
더에듀 | 교육전문직은 장학사나 연구사로, 교감이나 교장으로, 그리고 더 높은 교육청 고위 관료로 전직한 이후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직군에 머무른다. 100%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교육전문직에게 교사 발령을 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고립된 직군의 함정: 보신행정이라는 질병 행정이 고정적인 직업이 되는 순간, 교육전문직은 ‘지원자’가 아닌 ‘지배자’가 된다. 현장과 유리된 지 오래된, 또는 교육전문직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들의 정책은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온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현장 교사들을 질식시키는 차가운 행정 명령일 뿐이다.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학생을 지도하지 않는 전문직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보신’ 연구로 권위를 유지한다.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실적을 부풀리고, 고통스러워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규정이라는 무덤에 매장한다. 그들이 교육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며 익힌 ‘효율성’은 전문직이 된 후 ‘보신의 전문성’으로 진화한다. 이것은 교육계 전체에 동맥경화를 초래하는 치명적인 질병이 된다. 심장에서 나간 피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와 정화되듯, 전문직 또한 현장의 흙먼지를 뒤집어쓰러 교실로 돌아와야만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교사-장학사 순환 보직 논의가 있다고는 한다. 최근 교육부는 ‘교권 회복’과 ‘현장 중심 행정’을 위해 전문직의 현장 복귀를 장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미온적인 대처로는 학교 현장의 피로 누적과 교육 혁신에 대한 직무 유기만을 느끼게 된다. 교육청 관료와 교육전문직, 그들과 유유상종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이 왜 필요할까? 혹시 교육부 관료들이 원하는 초중등 교육계의 인적 환경 때문 아닐까라고 추정한다. 학교 현장에서 지난해 일사불란하게 진행된 정책 중 하나가 디지털 교과서였다. 나는 이에 반대해 절대 협조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일해야 했던 교사들은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그 업무에 소진해야 했다. 이를 추진하여 교육청에 보고해야 하는 학교 관리자와 업무 담당자는 나를 불편하게 여겼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나? 현장의 ‘교사들’이 교육의 미래를 지탱한다 내가 영국에서 목격한 지혜는 단순했다. 한 교실에 세 명의 교사가 머물며 아이의 눈을 맞추는 것, 그것이 교육의 전부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정책을 기획하는 장학사가 아닌,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최전선의 보병’이다. 첫째, 교과지도 교사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 ‘1수업 2교사제’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초부진 학생 곁에서 도움을 줄 전문적인 지도 인력이 교실마다 상주해야 한다. 둘째, 비교과 생활지도 교사의 전면 배치가 시급하다. 거칠게 분출되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폭력이나 일탈 대신 창조적인 힘으로 전환해 줄 수 있는 전담 인력이 학교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셋째, 상담교사는 학교의 심장 역할을 해야 한다. 상처 입은 영혼들이 언제든 찾아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상담실이 모든 복도마다 숨 쉬어야 한다. 3부를 기대하며 심장에서 나간 피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와 정화되듯, 교육전문직 또한 현장의 흙먼지를 뒤집어쓰러 교실로 돌아와야만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는 믿음은 변함없다. 지금까지 고립된 직군의 함정과 보신행정이라는 문제의 심각성을 진단하고, 현장 중심의 인력 확충 방안을 제시했다. 3부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순환 보직 제도의 도입 방안과 학교 현장의 변화를 위한 교육 주체들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다룰 예정이다.<계속>
더에듀 | 인간의 영혼은 추상적인 관념이나 행정의 칸막이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대지의 햇살을 받고 자라는 나무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과 직접적인 손길 속에서만 온전한 생명으로 피어난다. 나는 그동안 실천해 온 ‘글쓰기 수학 수업’을 통해 죽어있던 공식을 아이들의 살아있는 언어로 되살리는 과정을 목격해 왔다. 그러나 경이로운 생명의 분출이 일어나는 교실의 뒤편에서, 우리 교육의 골격은 여전히 차가운 행정의 비대증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서류가 지배하는 상부 조직을 걷어내고, 학생과 매일 마주하는 교과지도교사, 생활지도교사, 상담교사 등 아이들과 마주하는 ‘최전선’의 인력을 대폭 확충하는 인력구조의 대전환을 단행해야 한다. 우리 교육 현장은 기이하고도 서글픈 분열의 장이다. 한쪽에는 아이들의 거친 숨소리와 연필 깎는 소리가 들리는 교실 안 ‘교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숫자와 서류, 그리고 ‘승진 점수’라는 철옹성 속에 갇힌 ‘교육전문직’이 있다. 그 중간지대에는 수업과 학생들을 대면하는 일은 적게 하고 각종 승진 점수와 성과금은 많이 가져가는, 소수의 ‘교육전문직 예비교사’가 있다. 이러한 경계를 보며, 교육전문직 제도가 품은 병폐와 그 해소 방안을 언급하고자 한다. 교육은 정지된 화석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이어야 하며, 그 강물을 관리하는 이들 또한 결코 강물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기계적 행정의 비대화와 교실의 빈혈 상태 그동안 실천해 온 ‘글쓰기 수학 수업’은 수학을 차가운 기호의 나열이 아닌, 아이들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살아있는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기초부진 학생이 지필 100점 학생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정답이라는 결과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사고 과정을 글로 쓰며 존재의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배움은 이렇듯 직접 부딪치고, 읽고, 쓰는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행위다. 그러나 지금 교육전문직을 꿈꾸는 일부 교사들을 보라. 그들에게 교육은 더 이상 ‘아이와의 마주함’이 아니다. 교육전문직 점수가 인정되는 수업연구대회 출품 수업에만 집중하는, 수업 말고도 챙겨야 할 점수가 많은 그들은 교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계산하며 자신의 생명력을 도구화한다. 성과상여금이라는 금전적 보상까지 가져가려는 탐욕 또한 드러내고 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하에 교육 경험은 승진에 반영되는 ‘점수화된 경력’으로 박제된다. 이들은 아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대신 승진 가산점을 채우기 위한 서류 작업에만 몰두한다. 전문직이 고정직군인 이상, 교육은 교실이라는 생명의 현장을 떠나 행정의 기계적 수치에 매몰되고 있다. 이것이 살아있는 감각을 죽이는 기계적 관행의 전형이 아니고 무엇인가? 제도가 문제인가, 인간이 문제인가 교육전문직은 교사에서 교감으로, 장학사에서 교장으로 또는 장학관 또는 교육청의 상위 관료로 가는, 일방향적인 ‘승진 코스’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유유상종하는 집단으로 인식된다. 교육전문직은 학교 운영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며, 교무 업무 중간 관리 및 실무를 조정해 소속 교직원의 업무분장 및 근무 성적 평정, 교무 분장 초안 작성 및 실무 지도하는 인사권을 가진다. 교사는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수동적인 지위에 있기 때문에, 수업을 많이 진행할 것, 혹은 담임교사를 맡을 것과 같은 교육전문직의 지시를 변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주당 20시간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와 10시간만 수업하는 교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주요 원인이다. 1년에 39주 동안 수업을 진행한다고 가정하면, 390시간의 수업 노동 시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390시간의 수업 노동 시간의 차이가 있는데도, 참으로 이상한 관행 때문에 주당 20시간 수업하는 교사가 10시간 진행하는 교사보다 성과금도 1년에 적게는 100여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 가까이 적게 받고, 인사상 불이익을 더 크게 당하는 경향이 있다.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교육전문직은 인사 및 연수 관리자로서 교육공무원의 임용, 전직, 연수 운영 등에 관한 행정적 업무를 처리하며, 교육감이 위임한 범위 내에서 인사 관리 권한을 행사한다. 최저시급으로 계산하더라도 390시간에 1만 320원을 곱하면 402만 4800원이 된다. 즉, 400만원 넘는 노동을 하고도 그 대가를 받기는커녕 상대적으로 더 적은 상여금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그 결과 최소 500만원 이상, 최대 700만원 이하의 차별이 발생한다. 교사의 방과후 수업수당을 시간당 3만원에서 5만원으로 환산하면 최소 1500만원 이상, 최대 3500만원 이하의 차별이 일어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수천만 원의 부당한 차별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교육전문직으로 목표를 정한 교육전문직 예비 교사들 중 상당수가 수천만 원의 부당한 이익을 누리며, 성과금까지 최고등급으로 받는 사례가 대다수이다. 즉, 교육전문직을 노리는 교사들은 영원히 수업도 진행하지 않고, 학생 지도와 관리에 골머리를 썩이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육은 정지된 화석이 아닌 흐르는 강물이어야 이 글은 학교 현장의 비정상적인 인력 구조와 경직된 교육전문직 제도의 대전환을 촉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의 본질인 '아이와의 마주함'이 행정적 수치와 승진 점수에 매몰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교사들이 차별을 겪게 되는 문제를 지적하기 위함이다. 궁극적으로 이 글은 서류 중심의 상부 행정 조직을 걷어내고, 학생들을 직접 대면하는 최전선의 교사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쓰였다. 교육은 정지된 화석이 아닌 '흐르는 강물'이어야 하므로, 교육 정책과 행정을 담당하는 모든 인력이 교실 현장과 유리되지 않고 순환하며, 교사의 수업 및 생활지도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학교를 고립된 섬에서 모두가 함께하는 강물로 변화시키기 위한 인력 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한다.<계속>
더에듀 지성배 기자 | “대학 재학 중 방학에 입대한 교사들의 군 복부 경력 호봉 삭감 관행 중단하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방학 중 입대자들의 호봉 삭감 문제를 청와대가 해결하라며 적극 대응에 나섰다. 지난 2020년 교육부는 전국 시도교육청에 ‘교육공무원 호봉획정 관련 확인 요청’ 공문을 발송했으며, 이후 방학 중 입대 여부를 둘러싼 해석 차이로 입대 시점에 따라 최대 3개월의 경력 삭감 또는 급여 환수 조치가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방학기간을 학기로 볼 것이냐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대부분의 대학은 6월에 방학을 하고 9월에 2학기를 시작한다. 즉 여름방학 기간은 1학기에 속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6월에 입대하면, 방학 기간도 재학 중인 상태로 돼 2개월의 군경력은 인정되지 않는 것. 공무원보수규정에서는 ‘학력과 경력 중복 시 하나만 산입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전교조가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태범 양주 백석고 교사는 “저는 6월 21일 입대했는데, 8월 31일까지 재학기간으로 처리돼 있다”며 “해당 기간에 탈영해서 매일 학교를 다닌 건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교장과 교감은 호봉정정 공문이 와서 어쩔 수 없다며 제 서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호봉을 삭감했다”며 “이제 와서 그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니 너무 화가 났다”고 억울해 했다. 전교조는 이 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적극적 해결 노력을 촉구했다. 박영환 위원장은 “교육부는 군 복무 경력을 100% 인정하는 명확한 지침을 즉시 시행하고 삭감 및 임금 환수 피해를 입은 교사들에게 원상회복 조치를 해야 한다”며 “제대 군인 교사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동일한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기자회견 후 청와대 경청통합수석실 비서관과 공식 면담을 진행, 근본 해결책 마련을 당부했다. 전교조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관 측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 노력 입장을 밝혔다.
더에듀 | 최근 국제 사회를 돌아보면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민주주의와 정의, 대의명분이라는 오래된 가치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국가 간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개인의 삶 속에서도 깊숙이 스며들어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큰 착각이다. 오히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학생을 가르치고 학부모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교사들에게는 이 현실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예전의 교사는 모범을 보여주고 정답을 가르치는 존재였다. 사회가 공유하는 상식과 규범을 ‘선’이라 부르며 공동체가 이를 추앙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 더 나아가 AI 시대에 들어선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회 규범과 도덕, 예의와 배려, 소통과 공감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적대적인 관계로 살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공동체의 가치보다 개인의 삶과 가치관이 더 중요시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공동체 규범으로 개인을 판단하거나 칭찬·비판·정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태도이다. 정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때로는 눈을 감거나 상황에 맞는 거짓말이 필요한 시대다. 진실을 밝혀 승리하겠다는 집착은 오히려 어리석음이 될 수 있다. ‘내가 옳고 성실하면 결국 진심이 전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위험하다. 부모·자식 관계나 진정한 사랑이 아닌 이상, 깊은 이해와 지속적인 관계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결론은 분명하다.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만 보지 말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자. 남의 인생에 오지랖 넓게 간섭하지 말자. 부탁하지 않으면 가르치거나 조언하지 말자. 대신 마음이 통하고 삶이 맞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정답 없는 옳은 삶을 살라”가 아니라 “너의 삶을 살아라”이다. “다른 친구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내가 옳다 네가 틀렸다는 식의 판단과 지적을 삼가라”는 것이다.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설득하려 하지 말고, 억지로 이해시키려 하지 말라. 각자의 방식대로 흘러가도록 두되, 내 마음이 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하면 충분하다. 이 시대의 교사는 더 이상 모범을 강요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학생과 학부모에게 간섭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더에듀 AI 기자 | 2026년 전공별 세계 대학 순위 조사 결과, 아시아 대학들의 전공별 경쟁력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1일 영국 고등교육 전문 매체 타임스 하이어 에듀케이션(Times Higher Education, THE)은 ‘2026년 전공별 세계 대학 순위(World University Rankings by Subject 2026)’를 발표했다. 이번 순위는 인문학, 사회과학, 공학, 의학, 교육학 등 주요 학문 분야를 대상으로 연구 성과, 교육 환경, 국제적 영향력 등을 종합 평가해 산정됐다. THE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 대학들은 북미와 유럽에 비해 전공별 순위 상승 폭이 두드러졌다. 중국 대학들의 약진도 지속됐다. 지난해 교육 및 비즈니스 분야에서 10위권 안에 4개 대학이 이름을 올렸던 데 이어, 2026년에는 3개 대학이 추가로 진입했다. 베이징대학교는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10위, 공학 분야에서 8위로 도약했고, 칭화대학교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10위권에 진입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싱가포르 국립대학교가 19위로 도약하며, 아시아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상위 20위권에 3개 대학이 포함됐다. THE는 “아시아 지역 대학들은 연구 투자 확대와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특정 전공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6년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 기관들은 여러 학문 분야에서 북미와 유럽보다 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전체 순위 상위권에서는 미국과 영국 대학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컸다. 미국은 111개 국가 가운데 상위 10위권에 68개를 올렸고, 영국은 29개로 소폭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아시아 대학들의 성과가 구조적 투자와 정책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필립 알트바흐(Philip Altbach) 보스턴칼리지 국제고등교육센터 명예교수는 “중국, 대만, 싱가포르, 한국 등에서 연구 중심 대학을 강화하거나 설립하는 데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러한 흐름이 아시아 대학들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휴고 호르타(Hugo Horta) 홍콩대학교 교육학부 부교수는 “중국, 홍콩, 싱가포르 대학들은 가까운 미래에 주요 전공 분야에서 상위 10위권에 진입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선두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며 “현재의 투자 여건이 유지된다면 이는 시간 문제”라고 전망했다. # 이 기사는 Article Writer를 활용해 작성했으며 지성배 편집국장의 감수를 거쳤습니다.
더에듀 | 지혜복 교사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교육청 앞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30여 년간 교단을 지켜온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제 2027년 2월 정년까지 단 1년뿐이다. 1월 29일로 예정된 부당전보 취소 소송의 선고는 그가 교사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퇴임할 수 있을지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법원에서 소송이 받아들여져야 복직의 기회가 열린다. 1년밖에 정년이 남지 않은 지 교사에게 이번 재판은 그래서 대단히 중요하다. 지 교사가 공익제보자로 인정되면 재판에서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울교육청은 공익제보자 인정을 거부하고 있다. 해임한 당사자가 지 교사를 공익제보자로 인정하면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지 교사는 즉시 복직해 남은 1년을 학교에서 보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근식 서울교육감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서서 지 교사를 공익제보자로 인정해야 한다. 필자는 지 교사의 고립된 싸움을 보며 참담한 기시감을 느낀다.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 교장의 부정과 비리에 맞서다 강제 전보를 당했던 나의 과거와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장은 ‘전보 내신권’이라는 기계적 행정 원칙을 방패 삼아 나를 축출했다. 형식과 절차는 완벽하게 합법적이었을지언정, 그 본질은 공익을 향한 용기를 꺾으려는 부당한 인사권의 남용에 불과했다. 그 가증스러운 ‘합법’의 가면 뒤에 숨은 불의에 저항하는 길은, 결과에 순응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서는 것뿐이었다. 누군가는 일단 학교를 옮겨 싸움을 이어가라 조언했지만, 떠나온 학교가 ‘남의 일’이 된 상태에서 투쟁의 동력을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부당한 전보를 수용하는 것은 부정과 비리 당사자에게 승리를 헌납하는 패배의 기록이다. 그 패배는 교실에서 ‘정의는 결국 힘 앞에 무릎 꿇는다’는 처참한 교육이 되어 아이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징계를 감수하더라도 옳음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비겁한 평화를 선택할 것인가. 나는 발령을 거부하고 7일간의 철야 단식으로 저항을 선택했다. 공익제보의 가치가 짓밟히는 것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지 교사 역시, 바로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스스로를 외통수의 길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당시 국가 권력이 총칼을 휘두르던 야만의 시대였음에도 나에게 내려진 징계는 ‘정직 3개월’이었다. 과거 총칼을 휘두르던 시대에도 정직에 그쳤던 징계가, ‘민주’와 ‘진보’를 기치로 내건 시대에 지 교사에게 ‘해임’이라는 사형 선고로 돌아온 이 비극적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전임 교육감 시절, 교육청(감)은 지 교사의 전보와 성폭력 제보 사건이 서로 무관한 사안이라는 전제하에, ‘선입선출’ 규정과 인사자문위원회의 결정 등 행정 절차에 따른 전보가 합당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당시 교육청(감)이 범한 가장 치명적인 오류이다. 교육청(감)은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맥락을 전혀 짚어내지 못했다. 교육청(감)은 성폭력 은폐 시도로 ‘기관 경고’를 받은 학교 상황과 누군가는 학교를 떠나야 하는 과원에 따른 인사를 별개의 것으로 취급했다. 스스로 설정한 ‘행정적 합법성’이라는 논리에 갇혀 지 교사를 학교 밖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지 교사의 발령 거부는 결코 개인의 돌출 행동이 아니었다. 제보자가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쫓겨나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서, 지 교사에게 발령지로 떠나는 것은 곧 공익제보의 패배이자 불의에 대한 굴복을 의미했다. 따라서 지 교사는 싸울 수밖에 없는 외통수로 내몰렸던 셈이다. 이처럼 제보자를 외통수로 몰아넣은 근본 원인은 당시 상황을 편협하게 인식하고 기계적 원칙에 머물렀던 교육청(감)의 오류에 있다. 우리는 10년 전 하나고등학교의 비리를 폭로했던 전경원 교사를 기억한다. 당시 서울교육청(감)은 전 교사의 제보가 타당하다며 그를 공식 ‘공익제보자’로 인정했다. 학교 측의 보복성 해임에 맞서 교육청(감)은 그를 보호했고, 결국 그는 당당히 복직했다. 그때 교육청(감)이 내세운 가치는 교육 정의였다. 그런데 왜 지 교사 앞에서는 그 정의가 멈췄는가? 지 교사 역시 교내 성폭력 은폐 시도를 세상에 알렸고, 교육청 스스로도 해당 학교에 ‘기관 경고’를 내리며 제보의 정당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정작 보호가 필요한 순간, 교육청(감)은 민주적 절차라는 알리바이 뒤로 숨었다. 학교의 결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교육청(감)은 마땅히 다른 판단을 내려야 했다. 학교의 인사 규정은 행정의 편의를 위한 지침일 뿐이지만, 제보자 보호는 국가가 법률로 약속한 의무이다. 지침이 의무를 앞지르는 순간, 교육 행정은 정의가 아닌 폭력이 된다. 전경원 교사 때는 ‘정의의 실현’이라 불리던 행동이, 지혜복 교사에게는 왜 ‘명령불복종’이라는 징계 사유로 둔갑해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정근식 서울 교육감은 이 선택적 정의와 행정의 폭력 앞에 책임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1월 29일 재판에서 지 교사가 승소할 수 있도록 교육청(감)이 결단해야 한다. 지혜복 교사는 30여 년을 교사로 살며 전교조와 함께 교육 개혁을 위해 시대에 맞서다 해직도 되었던 사람이다. 내가 교육개혁운동의 과정에서 지켜본 바로는 지 교사는 교육 개혁 운동의 원칙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던 교사이다. 그는 그다운 방식으로 성폭력 사태에 대응했고, 그다운 꼿꼿함으로 교육청(감)의 관료적 판단에 맞섰다. 30년을 교육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지 교사가, 마지막 남은 1년을 교실에서 학생들과 행복하게 수업하다 정년을 맞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