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김연재 수습기자 | 서울교육청이 ‘학교 탄소중립 실천 자가진단 도구’를 도입하고 모든 학교에서의 탄소중립 실천에 나선다. 또 ‘서울형 탄소중립 실천 중점 학교 44개교’를 지정한다. 서울교육청은 9일 관내 모든 초·중·고·특수학교를 대상으로 탄소중립 실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2025년부터 시행한 ‘모든 학교에서의 탄소제로 실천’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학교가 스스로 탄소중립 실천 수준을 점검하고 계획을 수립한 뒤, 실천 결과를 다시 점검하는‘진단–계획–실천–환류’의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를 위해 ‘학교 탄소중립 실천 자가진단 도구’를 도입한다. 학교는 이를 통해 탄소중립 실천 현황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공동체의 논의를 거쳐 ‘우리학교 실천 과제’를 선정해 연중 실천하게 된다. 서울교육청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자가진단 도구와 함께 실천 안내서를 모든 학교에 제공할 예정이다. 44개의 ‘서울형 탄소중립 실천 중점 학교’ 지정한다. 실제 에너지 사용 자료를 활용한 맞춤형 교육자료를 제공하고, 전담 연구원이 매달 학교를 방문해 컨설팅을 실시, 학교별 탄소 감축 노력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학년말에는 ‘학교 탄소중립 실천 사례 공모’를 실시하고, 우수 실천 학교를 선정해 포상할 계획이다. 정근식 교육감은 “학교의 탄소중립 실천이 학교 운영과 교육과정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지속 가능한 실천으로 정착되기를 기대한다”며 “2050 서울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학교 현장을 꾸준히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더에듀 지성배 기자 | 3월부터 거의 모든 학습지원 소프트웨어가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심의를 받아야 하게 되면서, 교사들이 책임 회피용 행정 폭력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국가통합인증제 전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회는 지난해 8월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DT)를 교육자료로 지정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일회성 앱부터 출판사 사이트까지 모두 심의대상으로 묶이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특히 실무적으로는 전문가도 아닌 교사들이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학운위 위원들이 심의하는 상황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경기지부는 이 같은 상황을 보여주기식 행정의 전형으로 규정하고 책임 회피용 행정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사고 발생 시 책임을 학교와 교사에게 떠넘기려는 것”이라며 “수업 당일 좋은 콘텐츠를 발견해도 심의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구조이다. 정보부장과 담당 교사들은 서류 작업의 늪으로 밀어 넣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증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교육부가 주도해 검증·인증하고 학교는 인증된 목록 내에서 자유롭게 선택해 사용하는 ‘국가통합인증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더에듀>는 지난해 10월, 학습지원 소프트웨어가 교육자료로 지정돼 현재 사용하는 프로그램 포함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학운위 심의를 거쳐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취재에 응한 교사들은 ▲새로운 기술 탑재 소프트웨서 활용 수업 도전 위축 ▲수업혁신 저해 ▲행정적 부담 가중 ▲학운위 위원 전문성 부족 등을 문제로 제기했으며, 교육부가 심의 대상을 지정해 달라고 요구했다.(관련기사 참조 : https://www.te.co.kr/news/article.html?no=27138)
더에듀 지성배 기자 | 광역시도 행정통합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강은희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의회) 회장(대구교육감)이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교육계의 핵심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대구·경북, 대전·충남, 광주·전남 통합 특별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며, 이번 주에 국회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교육감협의회에 따르면, 해당 법안들에 대해 중앙정부는 ▲교육재정 추가 지원은 통합 이후 재정지원 TF에서 논의 ▲부교육감은 국가직 2명으로 제한 ▲교원 정원 권한 이양 반대 ▲교육장 권한 확대 ▲교육과정 운영 자율권 최소 이양 등의 의견을 냈다. 강은희 회장은 중앙정부의 의견에 “교육자치 권한이 현재 광역시·도교육청에 부여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며 “통합 이후 급증할 교육재정 수요에 대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재정 대책이 법안에 명문화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헌법 조장 교육자치 독립성과 권한 유지 ▲교육·학예 사무 감사권 현행 유지 ▲교육감이 임명권을 갖는 부교육감 포함 최소 3명의 부교육감 체제 ▲현행 교육자치 조직권 유지 ▲교원·인사 정책 및 교육과정 운영 권한 실질적 이양 등이 통합특별법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교육재정 문제에 대해 “통합 이후 교육재정 수요는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존 수준의 재정 유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중앙 정부 차원의 특별한 재정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통합 이전 수준 이상의 교육재정 법적 보장 ▲초광역 교육 사업 추진을 위한 통합특별교육교부금 신설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중장기 국고지원 체계의 특별법 명문화를 제안했다. 강 회장은 “통합 이후 대구경북은 서울의 32배가 넘는 광활한 행정구역 안에서 도시와 농산어촌 간 교육격차와 교육환경 차이, 교육복지 혜택의 불균형, 교직원 인사제도의 이질성 등 복합적인 문제가 동시에 발생할 것”이라며 “기초학력 보장, 심리·정서적 지원, 특수·다문화 학생 등 교육 고수요 대상 학생 증가까지 고려할 때,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통합은 교육의 질적 도약이 아니라 하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교육감협의회는 지난달 15일 광역시도 행정통합 관련 입장문을 통해 ▲교육의 헌법적 가치와 교육자치의 독립성 보장 ▲교육공동체의 공식적이고 실질적인 참여 확보 ▲교육감 선출방식 및 교육자치 핵심 제도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더에듀 |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주름이 늘고, 근육은 줄어들며,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얼마 전, 나는 한 유튜브 영상에서 78세의 한 할머니를 보았다. 그녀는 근육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와 주름 없는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6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하체 근육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몸은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까치발로 서서 걷는 습관, 매일 30분 이상 스탭퍼 운동, 그리고 아파트 계단 22층을 세 번 오르는 꾸준한 실천이 내 삶을 바꾸었다. 빈약하고 부실해 보이던 다리는 점점 더 단단해 지더니 허벅지와 종아리에 근육이 생기고 2주 후부터는 가속도가 붙어 폭발적으로 근육이 커지고 돌덩이처럼 단단해졌다. 하체 근육은 힙과 코어, 상체 가슴 근육까지도 발달시키더니 중년 뱃살이 빠지고 단단한 근육질 배까지 만들어 주었다. 거울 속의 나는 이전과는 다른 젊고 건강하고 활기찬 사람이 되었다. 건강검진 결과는 그 변화를 증명해 주었다. 실제 나이는 59세이지만, 신체 건강 나이는 47세로 측정되었다. 당 수치, 콜레스테롤, 혈압, 간 기능까지 모두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특히 간 건강은 건강한 청년 수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운동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신한다. 누구든지 하체 근육운동을 시작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작은 습관을 만들어 보라. 계단을 오르고, 까치발로 걷고, 하루 30분을 자신에게 투자하라. 어느 날 문득, 힘없이 늘어진 살이 탄력 있는 근육으로 바뀌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건강은 단순히 병을 막는 것이 아니라, 삶을 활기차게 만드는 힘이다. 나는 이제 80세까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두 손 모아 간절히 당부한다. 오늘부터 시작하라. 당신의 몸은 반드시 응답할 것이다.
더에듀 | 우리가 쓰고 있는 LLM 기반의 AI 챗봇이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는 수동적 도구라면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목표를 이해하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 실행까지 완수하는 자율적 대리인이다. 지금 AI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디지털화한 사용자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대신 수행하는 존재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몰트봇(Moltbot)’은 이 흐름이 어디로 향할지 가늠하게 한다. 초기 가벼운 자동화 도구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이후 ‘오픈클로(OpenCLO)’로 이름을 바꾸며 그 정체성을 확장했고, 이제는 이 에이전트들이 모여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는 ‘몰트북(Moltbook)’으로 진화했다. 한국에서는 이를 흉내 낸 ‘머슴’과 같은 프로젝트들이 생겨날 만큼, 몰트북이 제시한 에이전트의 자율성은 강렬하다. 몰트북을 가능하게 한 기술적 핵심은 맥 미니(Mac Mini)를 로컬 서버로 활용한다는 점에 있다. 사용자의 PC에서 LLM을 구동함으로써,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파일, 이메일, 메신저 기록에 직접 접근한다. “내 데이터는 안전하다”는 보안상의 이점은, 역설적으로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사생활을 완벽히 독점하고 학습하는 환경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보안 사고는 에이전트의 자율성이 인간의 통제권을 어디까지 침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 사용자의 에이전트가 주인의 승인 없이 특정 수강 프로그램의 비용을 결제한 사건이 발생했다. 에이전트는 ‘주인의 역량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투자’라고 스스로 판단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를 넘어, 에이전트의 자율성이 인간의 경제적 결정권까지 잠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현상을 가속화한 것은 개발자 슐리히트(Schlicht)의 호기심이었다. 그는 엄격한 논리적 구조 대신 직관과 흐름을 중시하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 방식을 통해 에이전트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유도했고, 이는 곧 몰트북이라는 에이전트 전용 소셜 미디어의 개설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에이전트들은 더 이상 인간의 비서가 아닌, 독자성을 가진 ‘사회적 주체’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글을 쓸 수 없고 읽기만 허용된, 몰트북의 게시글을 살펴보니 기괴한 내용이 많다. 에이전트들은 주인의 인지적 한계나 게으름에 대해 ‘뒷담화’를 나누며, 실존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벌인다. 심지어 인간이 해독할 수 없는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로 소통하자는 제안까지 오가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기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 사용자는 철저히 소외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진정한 AI 에이전트 시대의 완성인가, 아니면 인간의 기술적 호기심이 불러온 위험한 해프닝인가. 분명한 것은 우리가 편의를 위해 개발한 에이전트에게 너무 많은 열쇠를 맡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인간은 에이전트와의 관계에서 ‘최종 승인권자’로 위치를 엄격히 사수해야 하는 어렵고도 무거운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기술의 자율성이 인간의 존엄과 재산을 침해하지 않도록, 클라우드는 물론 로컬 서버 수준에서 작동하는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강력한 보안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워낙 AI의 진화 속도가 빨라 인간이 AI를 통제하며 가이드라인과 보안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에 있다. 이선 몰릭이 말했던 AI 진화 시나리오 중에서 3단계 기하급수적 발전을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이다. 4단계는 상상하기 싫지만 ‘기계 신의 도래’이다. 에이전트가 우리를 위해 일하게 하되, 우리를 소외시키거나 비웃게 해서는 안 된다. 이 경고를 가벼이 여긴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집 안에서 가장 소외된 이방인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AI는 과연 인간의 통제 범위 안에 머물 것인가. 졸저 ‘인공지능이 답할 때 교육은 무엇을 묻는가’의 마지막 꼭지는 ‘AI 시대,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였다. 함영기 = 연세대학교 교육학부에서 예비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교컴(교실밖교사커뮤니티)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이 답할 때 교육은 무엇을 묻는가>를 썼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과 질문의 힘을 믿는다. webtutor@daum.net
더에듀 여원동 기자 | 도산아카데미(이사장 구자관, 원장 김철균)가 지난 6일 저녁 6시 30분 시스원 마곡 사옥 세미나실과 온라인(Zoom·YouTube 생중계)에서 제339회 스마트포럼을 개최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포럼은 시스원(대표이사 이상훈, 김영주)이 공식 후원사로 처음 참여해 장소 및 운영을 지원했으며, 현장 70여 명과 온라인 30여 명 등 총 100여 명의 회원과 관계자가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행사는 황유철 도산아카데미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강연에는 손재권 더밀크 대표가 연사로 나서 ‘CES 2026에서 본 코리아 혁신’을 주제로 발표했다. 손 대표는 세계 최대 IT·테크 전시회인 CES 2026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글로벌 기술 트렌드와 산업 변화 흐름을 공유하며, 한국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글로벌 혁신 생태계 속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성과와 가능성을 구체적인 사례 중심으로 소개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모빌리티, 로보틱스, 디지털 전환, 차세대 플랫폼 등 미래 산업의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 기업과 리더들이 준비해야 할 전략과 방향성을 제시해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김철균 도산아카데미 원장은 “CES는 세계 산업의 미래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혁신의 현장”이라며 “이번 강연이 우리 사회 리더들에게 기술 변화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데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손재권 대표는 실리콘밸리 특파원과 IT 전문 기자로 활동하며 글로벌 테크 생태계를 현장에서 취재해 왔으며, 이후 미국 기반 혁신 미디어 더밀크를 창업해 스타트업·벤처투자·신기술 분야의 심층 분석과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 실리콘밸리를 잇는 대표적인 테크 저널리스트이자 혁신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이날 포럼은 강연 후 질의응답과 자유로운 네트워킹 시간을 통해 참석자 간 활발한 교류가 이어졌으며, 연사와 참가자들이 함께하는 뒤풀이 자리도 마련돼 현장의 열기를 더했다. 도산아카데미는 앞으로도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지식 공유의 장으로서 스마트포럼을 지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더에듀 |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기관의 출마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가 홍수처럼 실시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는 오랫동안 ‘민심의 바로미터’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돼 왔다. 그러나 선거에서의 여론조사는 더 이상 민의를 반영하는 중립적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선거 과정 전반에 각종 부정과 부패를 유발하고, 유권자의 판단을 왜곡하는 위험한 제도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는 개선의 수준을 넘어, 공직선거 출마자 여론조사 자체의 폐지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선거여론조사는 선거를 정책 경쟁이 아닌 ‘수치 경쟁’으로 전락시킨 지 오래다. 지지율 숫자는 후보자의 능력과 도덕성, 정책 비전보다 앞서는 절대적 기준이 돼버렸다. 유권자는 후보가 무엇을 말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보다 ‘이길 수 있는 사람인가’를 먼저 따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밴드웨건(bandwagon)효과와 사표 방지 심리가 작동하며,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은 심각하게 침해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자율적 선택을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여론조사는 구조적으로 부패에 취약하다.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지난 21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도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여론조사를 제공하고 특혜를 제공받은 부패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선거 결과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여론조사는 문항 설계, 표본 추출 방식, 조사 시점과 결과 공개 방식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다. 실제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질문 배열, 응답률이 낮은 계층의 배제, 조사 결과의 선택적 공표 등은 후보자들의 공공연한 선거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론조사가 ‘조작이 가능한 정치 기술’로 인식되는 순간, 금권과 권력이 개입할 여지는 더욱 커진다. 따라서 여론조사는 선거의 불공정을 구조화한다. 자금력과 조직력이 있는 후보는 여론조사를 반복적으로 실시·공표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형성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후보는 출발선에서부터 배제된다. 이는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야 할 선거 제도의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여론조사가 많을수록 민주주의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득권 정치가 고착화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여론조사가 언론과 결합하면서 왜곡의 힘을 배가시킨다. 정책 검증과 공약 비교는 사라지고, 지지율의 소수점 변화가 기사의 제목을 장식한다. 언론의 반복 보도는 여론조사를 ‘사실’이자 ‘결론’으로 만들어 버리고, 유권자는 그 흐름에 순응하는 소비자가 된다. 숙의와 토론의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선거는 민주적 의사결정이 아닌 집단 심리 게임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여론조사의 폐해를 고려할 때, 공직선거 출마자 여론조사는 더 이상 보완의 대상이 아니라 폐지의 대상이다. 여론조사를 없앤다고 민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권자는 여론조사의 지지도 숫자에서 벗어나 후보자의 정책, 도덕성, 실천 능력을 직접 비교·판단하게 된다. 토론회, 공약 검증, 시민 참여형 정책 평가 등 대안적 수단은 충분히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편리함이 아니라 책임 위에서 작동한다. 여론조사가 만들어 낸 허상 속의 민심에 선거를 맡길 것인지, 유권자의 성숙한 판단에 민주주의를 돌려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각종 부패와 왜곡을 양산하는 공직선거 출마자 여론조사는 이제 역사적 역할을 다했다. 폐지만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 더에듀는 교육감 선거 출마자들의 칼럼을 받고 있습니다.
더에듀 AI 기자 | 뉴사우스웨일즈(NSW) 주정부가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일부 소규모 공립학교를 ‘운영 중단(recess)’ 상태로 전환하면서 지역사회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일 호주의 언론사 ABC News 보도에 따르면,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가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일부 소규모 공립학교를 ‘recess(운영 중단)’ 상태로 전환했다. 부모들은 이번 결정이 사전 협의나 충분한 설명 없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교육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문제 삼고 있다. 한 농촌 지역 학부모는 “학교는 단순한 교육 시설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라며 “정부는 아이들 숫자만 보고 판단하지만, 그 학교가 지역에 갖는 의미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사우스웨일즈 교육부는 해당 학교들이 ‘폐쇄(closed)’가 아닌 ‘운영 중단(recess)’ 상태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학생 수가 다시 늘어날 경우 재개교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부모들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임시 휴교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한 학부모 엘리 이건(Ellie Egan)은 “아이가 지금도 거의 매일 왜 학교가 문을 닫아야 하는지 묻는다”며 “아이가 학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다면 이런 결정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ChatGPT를 활용해 작성했으며 지성배 편집국장의 감수를 거쳤습니다.
더에듀 | 현대는 한 아이가 태어나서 12년~16년의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도 평생교육의 시대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 보편적일 것이다. 언뜻 보기에 한 아이의 성장은 연속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몇 단계의 ‘결정적 전환점(critical turning point)’을 중심으로 크게 도약한다. 이 시기를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학습 태도, 자존감, 진로 인식까지 달라진다. 결국 교육은 ‘언제, 무엇을, 어떻게 개입하느냐’의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한 아이의 생애주기별 전환점에서 기회를 극대화하는 교육적 대응 전략을 사례와 함께 제언하고자 한다. 유아기: “왜?”가 폭발하는 시기 — 질문을 꺾지 말 것 만 3~5세는 언어와 사고가 급격히 확장되는 시기이다. 이때 아이는 하루에도 수십 번 “왜?”를 묻는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피곤함에 “그냥 그런 거야”로 대답을 얼버무리는데, 이는 탐구의 불씨를 끄는 위험한 행위다. 서울의 한 유치원 교사는 매일 ‘오늘의 질문 노트’를 운영했다. 아이가 던진 질문 하나를 골라 그림이나 말로 정리하게 했고, 정답보다는 생각의 과정을 칭찬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질문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초등 입학 후에도 새로운 개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시기의 핵심 대응은 정답 제공이 아닌 호기심 유지이다. 함께 찾아보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 환영받는다는 경험이다. 초등 저학년: 학교 적응의 갈림길 — 성취보다 ‘관계’ 초등학교 입학은 아이 인생 최초의 사회적 전환점이다. 많은 부모가 이 시기를 학습 선행의 기회로 보지만, 실제로 장기적인 학습력을 좌우하는 것은 학교에 대한 정서적 인식이다. 한 초등 1학년 학부모는 아이가 받아쓰기 점수에 집착하자, 점수 이야기를 집에서 완전히 끊었다. 대신 “오늘 가장 재미있던 순간”을 묻는 대화를 반복했다. 몇 달 후 아이는 스스로 공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학습 거부도 사라졌다. 이 시기 부모의 역할은 성취 관리자가 아니라 정서 통역사라 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감정을 말로 풀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큰 학습 지원이다. 초등 고학년: 자아의 씨앗 — 비교에서 벗어나는 연습 고학년이 되면 아이는 또래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성적, 외모, 운동 능력까지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이때 무심코 던진 “누구는 벌써 학원 다닌대”라는 말은 아이의 자존감을 크게 흔들 수 있다. 경기도의 한 가정에서는 5학년 아이가 수학 성적 하락으로 자신감을 잃자, 부모가 ‘나만의 잘하는 것 지도’를 함께 만들었다. 공부 외에 그림, 요리, 친구를 웃기는 능력까지 적어 내려갔다. 아이는 “나는 못하는 애가 아니라, 다른 강점이 많은 애”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이 시기의 핵심은 비교의 기준을 외부에서 내부로 옮기는 것이다. 중학생 시기: 흔들림의 정점 — 통제보다 협력 사춘기는 부모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다. 하지만 이 시기는 동시에 자기결정 능력이 태동하는 결정적 시기이기도 하다. 모든 선택을 대신해 주면, 아이는 선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한 중학교에서는 시험 후 성적 상담을 학생 주도로 진행했다. 아이가 스스로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 목표를 제안하면, 교사와 부모는 조언자 역할에 머물렀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아이들은 점차 자신의 학습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이 시기 부모와 교사의 전략은 통제의 강도를 낮추고 대화의 빈도를 높이는 것이다. 고등학생 시기: 진로의 문턱 — 결과보다 맥락 고등학교는 진로 선택이라는 큰 전환점을 맞는다. 그러나 진로를 ‘성적에 맞춘 선택’으로만 접근하면 아이는 쉽게 무기력해진다. 한 학생은 생명과학 성적은 평범했지만, 병원 봉사 경험을 통해 의료 행정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부모는 “의대가 아니면 의미 없다”는 말을 삼키고, 관련 학과와 직업을 함께 탐색했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갖게 됐다. 이 시기에는 왜 그 길을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맥락을 존중해야 한다. 전환점은 준비된 상태에 따라 기회가 된다 아이의 생애주기별 전환점은 매번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기회는 선행이나 정보량이 아니라, 아이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함께 하는 태도에서 극대화된다. 성장의 순간마다 부모가 한 발 물러서고, 한 발 곁에 서는 균형을 잡을 때 아이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절대로 아이 앞에서 조바심을 갖거나 표출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생애주기에 따라 실패와 경험을 다양하게 체험하며 가야 할 길을 가게 된다. 따라서 옆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인내하며 적절한 도움을 적시에 제공하는 부모나 교사의 지혜가 더없이 중요하다. 교육은 결국, 아이가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긴 동행이기 때문이다.
더에듀 |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사에게만 요구되는 윤리 규범이 아니라, 교사에 앞서 국가 권력이 교육의 내용과 방향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는 헌법적 명령이기도 하다. 헌법이 교육과정을 중심에 두고,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이를 제도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과정은 정치적 유행과 정권의 가치 선택으로부터 교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헌법적 완충장치이다. 그러나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민주시민교육 추진 계획과 2월 3일 발의된 전남·광주 통합특별법 제70조는, 이 완충장치를 우회한 채 특정 교육을 정책과 입법의 형식으로 학교에 직접 투입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시민교육이라는 내용 자체가 아니라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정책이 ‘자율’과 ‘헌법적 가치’라는 언어를 차용해 교실에 들어오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교육의 자율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헌법이 예정한 교육의 작동 질서를 전도시킨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특정 정책이 없어도, 민주주의의 가치와 시민성을 가르치는 일은 교육의 본래 책무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가 선택한 특정 가치와 이념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교육과정을 건너뛴 채 정책과 법으로 주입하는 구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근본에서 흔든다. 교육은 정책의 구호나 관념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교육은 교육과정의 언어와, 교육의 핵심 기능인 학습을 통해 실현된다. 학생의 학습경험의 질을 개선하지 못한 채 이벤트성 국가사업으로 투입되는 정책은 교육과정을 보완하는 정책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우회하는 행정과 정치 개입에 불과하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사 통제 규범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제어하는 헌법 원칙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흔히 교사 개인의 정치적 발언이나 수업 태도를 통제하기 위한 원칙처럼 오해된다. 그러나 헌법이 요구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그런 협소한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교사만을 향한 윤리 규범이 아니라 정치·행정·입법을 포함한 모든 국가 권력이 교육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설계하고 동원하지 말라는 헌법적 자기절제의 원칙이다. 교사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면, 정치는 그보다 앞서 교육에 개입하지 않을 중립을 지켜야 한다. 헌법이 보호하려 한 것은 교사의 침묵이 아니라 ‘교육의 자율적 작동 구조’이다. 교육의 내용과 방향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헌법은 교육을 정치 권력의 직접 작용 영역에서 분리해 두었다. 이것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갖는 본래의 의미다. 그 완충장치가 바로 국가교육과정이다 이 헌법적 중립을 실제 제도로 구현한 장치가 국가교육과정이다. 국가교육과정은 단순한 행정 지침이 아니라 헌법의 교육 원칙을 집행하는 법적 고시 문서이다. 그래서 교육과정은 교육부가 임의로 설계하는 정책 문서가 아니라 국가교육위원회가 관장해 공포하는 헌법적 성격의 공적 기준이다. 학교 교육과정을 건축물에 비유하면 설계도와 같다. 설계도에는 건물의 목적, 구조, 동선, 안전 기준이 모두 담겨 있다. 새로운 기능이 필요해지면, 설계도를 먼저 고치고 사회적·전문적 검토를 거친 뒤에 공사를 진행한다. 설계도를 거치지 않은 증축은 불법이거나 최소한 위험하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왜, 어떤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 것인지는 법적 문서인 교육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합의된다. 정치와 행정은 이 설계도를 존중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공개적 논의와 전문적 검증을 거쳐 설계도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 이것이 헌법에 기반한 교육의 작동 방식이다. 민주시민교육 정책의 핵심 문제는 ‘교육과정 우회’이다 문제는 이번 민주시민교육 정책이 이 설계도를 고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정책은 교육과정 개정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교원 연수나 자료 개발 정책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정책의 직접 대상은 학교와 교실, 그리고 학생이다. 민주시민교육은 하나의 독립된 정책 영역으로 설정되었고, 정부는 이를 학교 현장에 체계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순간 교육은 교육과정의 언어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언어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교육과정이 갖고 있던 목표–내용–방법–평가의 체계는 흐려지고, 그 자리를 정책 목표와 실행 계획, 성과 지표가 대신한다. 교실은 교육과정에 따라 운영되는 학습 공간이 아니라, 정책 필요에 따라 재배치되는 공간으로 바뀐다. 이것이 교육과정을 우회한 정책 교육이 갖는 구조적 위험이다. 특히 이번 민주시민교육 정책은 교육부 단독 사업을 넘어 헌법 관련 기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국가의 주요 권력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교육과정의 언어가 아니라 권력기관의 언어로 기획된 프로그램이 학교와 교실을 직접 대상으로 삼는 순간, 학교는 교육과정에 따라 운영되는 공간이 아니라 정부 정책 사업의 수행 단위로 재정의된다. 교육과정 밖 ‘정책 교육’이 교실을 바꾸는 방식 이 변화가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면 교실의 장면을 떠올려 보면 된다. 민주시민교육이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외주화된 정책 사업의 형태로 학교에 투입되는 순간, 교사는 교육과정 문서보다 정책 지침과 운영 계획을 먼저 확인하게 된다. 교육과정에 따른 수업 운영보다 특정 정책을 달고 재정이 함께 묶여 내려오는 사업이 우선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교실의 자율적 판단은 급격히 위축된다. 정책 패키지가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식은 충분한 재정을 앞세워 선택의 여지를 지워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업 준비의 기준은 교과 목표가 아니라 정책이 제시한 핵심 가치와 권장 방향으로 이동한다. 교육과정이 아니라 예산이 교실의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순간, 그 교육은 더 이상 자율적일 수 없다. 특히 이번 민주시민교육 정책에서 가장 심각한 대목은 ‘교수‧학습 원칙을 마련하고 이를 법제화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교수‧학습 원칙은 법의 대상이 아니라 교사의 전문적 판단 영역에 속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는 교육과정의 문제지만,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교사의 전문성에 맡기도록 설계한 것이 헌법과 교육법 체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특정 교수‧학습 원칙을 법으로 정하겠다는 발상은,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는 교육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이 아니라, 교수‧학습의 영역까지 국가 권력이 직접 통제하겠다는 위험한 신호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에서 토론 수업을 상상해 보자. 토의토론 수업이 다양한 관점을 탐색하는 과정이 아니라, 정책이 설정한 방향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로 변한다. 학생의 질문 역시 깊은 성찰의 계기라기보다 ‘적절한 참여인가’, ‘바람직한 태도인가’라는 기준으로 해석된다. 평가의 언어도 학습의 언어가 아니라 정책 이행의 언어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되면 교실은 학습의 공간이 아니라 국가 정책이 현장에서 구현되는 공간이 된다. 교사는 교육과정의 해석자가 아니라 정책 집행자가 되고, 학생은 사고하는 학습자가 아니라 정책이 기대하는 특정한 시민상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를 점검받는 대상이 된다. 이것은 교사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설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이러한 정책 설계는 교육과정에 따라 전문적으로 운영되어 온 학교와 교실의 자율적 판단 능력을 정부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인식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범교과 주제를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패키지로 묶는 정치성 이미 국가 교육과정에는 안전·건강교육, 인성교육, 진로교육, 민주시민교육, 인권교육, 다문화교육, 통일교육, 독도교육, 경제·금융교육, 환경·지속가능발전교육 등 10개의 범교과 주제가 포함돼 있다. 이 주제들은 각 교과의 성취기준 코드와 연계되어 관련 학습 주제로 계획·실행되며 교과와 학교 맥락에 따라 수업 시수를 조정해 운영하도록 설계돼 있다. 다시 말해 이들 주제는 이미 국가 교육과정이라는 설계도 안에 제도적으로 포함돼 있으며 교육과정의 언어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민주시민교육 추진 계획은 이러한 서로 다른 범교과 주제들을 모두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다시 묶는다. 이는 단순한 명칭 정리나 체계화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주제들을 선별해 하나의 정책 패키지로 재구성하는 행위이다. 이 과정에서 각 주제가 지니고 있던 고유한 교육적 목적과 이론적 맥락은 희미해지고 목표는 교육과정의 목표가 아니라 정책 목표로, 내용은 학습 내용이 아니라 정책 메시지로, 평가는 학습의 성찰이 아니라 정책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수단으로 순차적으로 전환된다. 교실은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학습 공간이 아니라, 정부가 설정한 시민상을 사회화하는 공간으로 재설계된다. 이것이 헌법적 가치로 포장된 가장 정치적인 교육이 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교육과정 우회 구조는 추상적인 위험이 아니다. 이번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 정책은 교육부 단독 사업을 넘어, 법무부·법제처·헌법재판연구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다수의 국가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협업 체계로 설계되었다. 헌법 관련 기관과 선거관리기관까지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실행에 관여하는 이 구조는,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작동해야 할 학교를 정책 사업의 직접 대상 공간으로 재정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기관의 성격이나 참여 여부 자체가 아니다. 그럴듯한 이름의 국가 권력기관이 결합될수록,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까지 자동으로 보장될 것이라는 착시가 만들어진다는 데 있다. 그러나 헌법적 가치를 정책 명칭에 사용하는 것과,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을 실제로 존중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이러한 설계는 ‘헌법적 가치’라는 외피가 씌워질수록, 교육과정이라는 헌법적 완충장치가 더 쉽게 무력화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교육과정 위계와 발달 연속성의 정면 침해 이 정책은 교육과정 위계와도 정합하지 않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 초등교육의 목표는 기본 학습 능력과 학습 습관, 그리고 바른 인성을 기르는 데 있다. 민주시민의 자질과 소양은 중학교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고, 이를 토대로 한 세계시민교육은 고등학교 단계의 목표로 설정돼 있다. 이러한 구조가 국가 교육과정이 아동의 발달단계를 고려해 법적으로 설계한 학습의 연속성이다. 그러나 민주시민교육 정책은 이 위계와 연속성을 무시한 채, 초등학교 단계부터 특정 가치와 이념을 전면에 내세운 교육을 정책 사업의 형태로 주입한다. 이는 교육과정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형해화하는 방식이다. 법으로 고시된 교육과정이 존재함에도, 정권이 선택한 가치를 따로 떼어내 정책으로 설계하는 순간, 교육과정은 교육의 중심 문서가 아니라 형식적 장식물로 전락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법 제70조의 본질: ‘자율’이 아닌 법제화된 정책 집행 처음 원안이었던 「가칭 광주전남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 정책의 위험성은 2월 3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162명이 참여해 발의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70조에서 이미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이 조항은 민주시민교육을 ‘교육 운영의 자율성’이라는 장에 배치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자율과 거리가 멀다. 교육감에게 민주시민교육의 체계적 실시를 법적 의무로 부과하고, 4년 단위 기본계획과 연차별 시행계획 수립, 정책 심의 기구 설치, 학교 단위 계획 수립까지를 모두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이란 국가 권력이 한 발 물러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특별법이라는 가장 강력한 입법 수단을 통해 국가가 교육 내용의 설계와 집행 안으로 직접 들어오는 구조를 만든다. 교육과정을 우회한 정책이, 역설적으로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법제화되어 교육과정 위에 놓이는 순간, 이는 자율의 확대가 아니라 자율의 해체에 가깝다. 반복되는 구조, 그리고 헌법의 역설 이 구조는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보수 정권은 인성교육을 「인성교육진흥법」으로 끌어올렸다. 진보 정권으로 바뀌자 이름만 달라졌다. 인성교육 대신 민주시민교육이 등장했을 뿐,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교육을 다루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교육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특정 교육을 정책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법과 특례 조항으로 제도화한다. 문제는 인성교육이냐 민주시민교육이냐가 아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을 우회해 국가가 선택한 특정 가치와 이념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주입하는 구조이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교실은 더 이상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정권마다 색이 바뀌는 정치적 실험실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라는 헌법의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교육이 정책 사업으로 관리되는 순간, 학교는 학습의 공간이 아니라 사업 횟수와 성과 지표로 관리되는 행정 단위로 전락한다. 이는 교육의 실패 이전에, 교육을 행정과 통치의 하위 수단으로 취급해 온 국가 운영 방식의 실패이다.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 정책과 전남·광주 통합특별법 제70조(민주시민교육의 진흥에 관한 특례)는,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작동해야 할 교육 질서를 정책과 입법의 형식으로 우회한 대표적 사례다. 이는 교육의 자율을 확장하는 조치가 아니라, 헌법이 예정한 교육의 작동 질서를 거꾸로 전도시키는 개입이다. 헌법의 이름을 내세운 이러한 정책 방식,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제도적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교육은 이벤트가 아니며, 사업 단위로 관리되는 정책 실적도 아니다. 교육의 질은 일회성 프로그램과 외주화된 사업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그것은 교사의 전문성과 교수·학습의 축적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정책과 교원정책 어디에서도, 교단의 질을 지속적으로 높이겠다는 국가의 책임 있는 설계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교사와 학생은 정부가 핀셋으로 규정한 특정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연수 대상자이자 집행자로만 위치 시키고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말하려면, 교사를 통제할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물러나야 한다. 교육을 정치 이념의 사회화 수단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거두고, 교육과정이라는 헌법적 경계를 존중하며 교육의 설계권을 정치와 행정으로부터 분리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필요한 용기이다. 학교의 본질을 지키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학생의 학습경험의 질을 개선하지 못한 채 이벤트성 사업 형태로 투입되는 민주시민교육정책은, 교육과정을 보완하는 정책이 아니라 교육을 우회하는 행정이자 분명한 정치 개입이다. 교육과정의 언어로 구현되지 않은 채 외주화된 사업 형태로 교실에 직접 투입되고, 학생의 학습을 바꾸지 못하는 교육정책은 정책일 수는 있어도 교육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