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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썹쌤일기] ⑳핼러윈 오후에 벌어진 ‘몬스터 격돌’

더에듀 | 캐나다 온타리오주 동남권 여러 학교에서 보결 교사로 근무하는 정은수 객원기자가 기자가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캐나다 보결 교사의 하루하루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소개한다. (연재에 등장하는 학교명, 인명은 모두 번안한 가명을 쓰고 있다.)

 

 

“쌤, 오 쌤이 3교시에 ‘몬스터 격돌’ 때 누가 교실에 남을지 쌤하고 정하라던데요?’

“아, 오늘 성실 쌤 대신 오셨구나. 반가워요. 전 OOO이예요.”

“네, 정은수라고 합니다.”

“일단 애들이 각자 표를 사는 거라 그 반에 몇 명이나 남을지 보자고요. 우리 반엔 몇 명 있을 거 같긴 해요.”

“어, 그러면 많이 남는 쪽 교실로 합치나요?”
“뭐, 그래도 되고. 어차피, 3교시 끝날 무렵이니까 상황 봐서 선생님께서 자유롭게 정하셔도 돼요.”

 

핼러윈이라는 생각 없이 출근했는데, 막상 오성실 선생님의 수업 계획을 받아보니 오후 수업에는 ‘몬스터 격돌’이라는 행사가 있고 거기에 맞춰 수업을 운영하도록 계획이 돼 있었다.

 

이곳에서 벌써 4년째 학교에 나오고 있고,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오히려 당일 학교 일과 시간에는 핼러윈 의상을 입고 오는 걸 지양하고 있어 당연히 고교는 더더군다나 별일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게 안일했다.


교무실도 아침부터 축제 분위기


일단은 교무실에 있는 다른 교사들에게 행사에 관해서 물어보라고 했으니, 학습지도 챙길 겸 행사에 대한 정보도 구할 겸 영어과 교무실에 갔더니, 모든 선생님이 핼러윈 의상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교생 선생님까지.

 

입구에 같이 들어온 선생님에게 “의상 좋네요” 했더니 “이게 어색해 보이는 건 내가 매일 입고 오는 옷인데 오늘 같이 특별한 날에도 입고 와서 그래요” 하면서 농담으로 받았다.

 

교무실 회의 탁자에는 식문화 수업을 담당하는 류대희 선생님이 만들어놓은 케이크가 있었고, 아침 준비를 하면서 농담이 이어졌다.

 

“도민희 걔는 아직 이승에 있니?”

“못 들으셨어요? 걔 죽었잖아요.”

“그래도 아마 무덤에서 오늘 행사 지켜볼걸?”

“내일이면 좀비로 부활해서 다시 학교로 올 거예요.”

 

영어과 막내 도 선생님이 아파서 쉬는 상황을 두고도 핼러윈 버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들 바쁘게 아침 준비를 하면서 그러는 거라 오늘 행사에 관해서 물으니, 오 선생님이 써준 느낌과는 달리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는다.

 

“쌤, 근데 몬스터 격돌은 뭐 하는 거예요?”

“아, 그냥 학교 행사 같은 거예요. 아마 3교시부터였죠?”

“네, 맞아요, 3교시부터라고 돼 있어요.”

“너무 신경 안 써도 돼요. 가는 애들이 있고, 안 가는 애들이 있는데, 간다는 애들 보내주면 되고, 어차피 행사장에서 출석 확인을 행사 입장권으로 하니까, 입장권 없이 교실을 빠져나가는 애들은 결석 처리될 거라 자기 손해죠 뭐.”

 

다행히 아침 방송 조회를 통해 행사장에 표를 갖고 있는 학생만 갈 수 있다는 내용과 행사 장소가 큰 체육관, 출석 확인은 관객석에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 1교시를 마치니 3교시 합반을 의논해야 할 이미선 선생님이 같은 교실에 다음 수업이 있어 서두와 같이 의논할 수 있었다. 자세한 행사 내용은 이때까지도 파악할 수 없었지만.


반쯤 분장실이 돼버린 교실


점심을 먹고 3교시 수업을 준비하러 교실에 들어갔다. 점심시간 후에 3교시인 이유는 이곳 고교는 약 75분(학교마다, 시간마다 5분 정도 차이가 있기도 하다) 4교시로 하루 시간표가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1교시 때는 미리 의상을 입고 있는 학생들은 있었어도 차분했었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좀 더 들떠 있었다. 한 학생은 아예 페이스 페인팅 도구 가방을 꺼내놓고 친구들 분장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방송 조회에 따로 어디에 가면 페이스 페인팅을 해준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이렇게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와서 하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뒤늦게 수업 시작 바로 전에 들어온 남자아이들 무리가 요새 유행인 ‘식스 세븐’을 얼굴에 그려달라면서 다들 “나도! 나도!” 하면서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수업 종 울릴 때까지 다 못 해줄 거 같은데…’ 싶었지만 일단 출석도 불러야 하고 하는 대로 뒀다.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약간 들뜬 분위기의 교실에서 어떻게든 행사 시작 안내 방송이 나올 때까지 수업을 진행했다. 방송이 나오고 나서 아이들 모두 입장권을 보여주고 교실을 나갔고 두 명만 남았다. 아까 이 선생님과 한 이야기도 있고 그중 한 명이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라 3교시 때는 그냥 교실에 남기로 했다.


핼러윈과 기부를 묶은 전통 깊은 행사


마지막 시간에 교실로 온 학생은 3명뿐이었다. 둘은 옥토중 8학년 때부터 봤던 말썽꾸러기들이었는데, 조퇴한다고 전하고 행정실로 향했고, 한 명만 교실에 남았다.

 

혼자 남은 학생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황하고 있는데, 옆 교실에 온 박애리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지를 준비해왔기에 합반을 시키기로 했다.

 

부족한 영어 때문에 생긴 오해인 줄 뒤늦게 알았지만, “기본적으로 구매하는 행사”라는 오 선생님 설명을 읽고 뭔가 매대라도 있는 축제 같은 형식이면 학생들이 다 모여 있는 체육관에 관리감독할 교사가 부족할 것 같아서 행사장으로 가기로 마음먹은 면도 있었다.

 

행사장에 가보니 사실 교사가 더 필요하지는 않았다. 할일은 행사 끝나고 같이 행사장을 정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구매하는’ 행사라는 표현은 ‘표를’ 사는 행사라는 것이었다. 표를 사야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참가 안 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영어로 수업도 하고 이전엔 기사도 썼었지만, 종종 여기 사람들에게 당연한 쉬운 구어적 표현을 이해 못하는 일은 종종 생긴다.

 

상황을 알고 보니 옥토중 출신 말썽꾸러기들이 조퇴한 이유도 알만했다. 표를 살 돈이 없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관람객은 5000원, 농구 선수 등 참가자는 1만원을 내는 입장권, 참가권을 파는 이유는 판매한 수익금을 전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유사한 이곳의 단체인 유나이티드 웨이에 기부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몬스터 격돌’은 20년 전부터 매년 진행하다 코로나 때 중단됐던 상지고만의 뜻깊은 행사였던 것이다. 오랜 기간 중단됐다가 올해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 핼러윈 느낌으로 ‘무덤에서 돌아온 몬스터 격돌’이라는 문구도 행사 안내 포스터에 있었다.


누가 이겨도 결국 모두가 이기는 축제


행사 이름이 ‘몬스터 격돌’인 이유는 행사의 핵심 내용이 핼러윈 의상을 입은 교사 팀과 학생 팀 간의 농구 대결이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교사, 학생 각각 여러 팀으로 나눠 몇 분씩 팀 전체를 교대해 가며 경기를 진행했다.

 

장내 방송을 하는 선생님도 분위기에 맞춰 “그루, 할미에게 패스!”, “우디, 버즈에게 블로킹 당합니다!” 등 선수들을 본명이 아닌 각 의상이 보여주는 캐릭터로 부르면서 경기 해설을 했다.

 

농구 경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 쿼터 사이에는 다양한 게임, 음악 공연, 응원 공연 등도 있었다. 결국 경기는 학생들을 이겨 먹겠다고 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열심히 뛴 교사 팀이 이겼지만,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곳 온타리오라고 모든 학교가 핼러윈 때 이런 행사를 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는 좀 더 학급별 행사를 하고, 진한 분장이나 과한 의상도 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에서는 더 이상 사탕을 받으러 동네를 돌아다니지 않는 대신 학교에서 좀 더 핼러윈 분위기를 내지만, 꼭 기부 행사를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학교에서 하는 핼러윈 행사라면 상지고처럼 기부 행사를 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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