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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썹쌤일기] ⑱아빠는 썹이 없다

더에듀 | 캐나다 온타리오주 동남권 여러 학교에서 보결 교사로 근무하는 정은수 객원기자가 기자가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캐나다 보결 교사의 하루하루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소개한다.(연재에 등장하는 학교명, 인명은 모두 번안한 가명을 쓰고 있다.)

 

 

“저, 실장님, 죄송한데 내일은 제가 올 수가 없을 거 같아요.”

“괜찮아요, 지금도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어요.”

 

아무래도 긴급 보결 교사는 보결 요청에 바로바로 잘 반응해 줘야 더 자주 연락 받을 수 있는 것은 서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학교에서도 빠르게 안정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다른 일이 있을 때는 미리 통보하기도 한다.

 

다른 일이라는 게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미리 알 수 있는 사안은 세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의 학교 행사나 병원 예약 등과 같은 일들이다. 대체 인력으로 근무하기 때문에 전업으로 일하는 아내보다 유연하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 예약 때문에 학교를 빠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 학교 행사나 병원 예약 때문에 일을 쉰다면 납득하기 힘든 이유일 수 있지만, 그건 이곳의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가는 소소한 병원 예약 때문에 학교를 빠지는 일은 의료 접근성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곳 캐나다에서는 대도시는 그나마 당일 진료가 가능한 곳도 있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예약을 잡지 않고 당일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이 매우 적다.

 

게다가, 환자 한 명당 15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아침부터 하루 종일 대기해도 진료를 장담할 수 없기도 하다. 그나마도 이렇게 진료하는 곳은 대학병원 응급실 외에는 시내 중심가 한 곳과 가장 큰 쇼핑몰에 한 곳, 단 두 곳밖에 없다.

 

예약도 학교 끝나고 갈 수 있는 늦은 시간까지 받는 병원은 없고 대부분 4시에는 종료하기 때문에 병원 예약은 결근과 결석의 아주 흔한 사유이다. 특히, 초음파라도 찍거나 전문의를 만나려면 대기가 몇 개월씩이나 되니 절대로 놓칠 수가 없다.


아이들 학교 행사를 위해 휴가를 내는 게 당연한 문화


학교 행사도 그렇다. 퇴근도 이르고 야근은 특정 직종 외에는 거의 없어서 부모가 늦은 오후 시간에 하는 아이들 학교 행사에 당연하게 참석하는 게 상식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전이나 종일 학교 행사가 있으면 휴가를 내는 일도 흔하다. 하긴 심지어 가족 생일이라고 휴가를 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어떤 주에는 딱 한 번 밖에 대체 근무 연락을 받지 못했지만, 아침 일찍 온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날도 있었다. 때로는 도착 시간이 임박해서 호출이 오기도 하기에 일찍 오는 요청은 아이들을 준비시켜 학교 보내기가 좋아 언제나 감사한데도 말이다.

 

첫째 아이의 지구 육상대회 경기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아빠는 대체 근무자가 없다는 거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자주 연락을 받지 못했기에 미리 얘기도 못해놨었다.

 

이런 교육청 산하 학교 간 대회도 보통 부모가 아이들을 차로 데려다 주는 일이 상식이고, 또 비가 온다고 해도 웬만해서는 취소를 안 하는데, 실내에 대기장소도 없어서 그날처럼 비 오는 날에 대회가 있으면 동행할 수밖에 없다.

 

 

둘째 아이가 크로스컨트리 대회에 출전하는 이번 주에는 이제 세 번째 대회 경험이라 미리 연락을 안 받기로 하고 나갔다. 또 요청을 거절하기도 미안하니까.

 

미리 아는 일정만 있는 건 아니라서, 주 1~2회밖에 연락이 안 오는 시기에도 아이들이 갑자기 아프거나 하면 연락에 응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정해진 시스템대로 연락받는 정규 보결 교사는 그게 여기 문화고 얼마든지 요청을 거절해도 되니까 문제가 없다. 1년에 30일만 출근하면 계속 채용이 보장된다. 그나마도 늘어서 30일이고 이전에는 3주였다.  


일할 기회는 아쉽지만, 아빠 노릇이 먼저다


하지만 긴급 보결 교사는 학교에서 임의로 부르기 때문에 업무 수행이나 요청 수락이 잘 안되면 다음 연락이 뜸해질 수도 있다.

 

실제로도 교생 시절에 보결 교사 선호에 대해 교사들이 나누는 대화도 들었던지라 더 신경 쓰인다. 교과 교무실에 가면 다음에 연락 달라고 보결 강사들이 남긴 연락처 쪽지들이 가득한 경우도 있다. 그만큼 담당 교사나 행정실 직원의 선호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이다.

 

시스템으로 연락이 진행되는 정규 보결 교사의 경우에도 학과에서 미리 우선 지정 대상을 설정할 수 있기도 해 교생 지도교사였던 손미선 선생님은 정규 보결이 되면 반드시 우선 지정해 주겠노라고 해주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래서 비 오던 육상대회 날처럼 거절할 때면 어쩔 수 없으면서도 아쉬움과 걱정이 남는다. 게다가 그날 여섯 명이나 보결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문자 내용까지 읽고 나니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기도 했다.

 

예전에도 둘째 아이의 체험학습 동행 자원봉사와 첫째 아이의 첫 지구 육상대회 경기가 동시에 있는 날이어서 빠진 적도 있었다. 일을 가지 않고도 두 곳을 오가느라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가을에도 아이들 학예회지만, 첫째 아이가 공연하는 학교 행사가 있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빠 노릇 잘하려고 이곳까지 왔으니 때로는 보결 교사 대신 아빠 노릇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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