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가상세계가 수업에 활용되면서 교실과 학교라는 공간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교사들은 확장된 교육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것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면서 흥미도와 참여도가 향상했다고 말한다. 이에 <더에듀>는 가상현실을 활용한 교육활동에 도전장을 내민 ‘XR메타버스교사협회’ 소속 교사들의 교육 활동 사례 소개를 통해 아이들과 수업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살피고자 한다. |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 왜 메타버스이어야 했을까?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을 한다고요? 초등학생에게요?”
아직도 많은 사람은 디지털 성범죄를 ‘청소년 이후의 문제’로 오해한다. 그러나 통계는 다르다.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이미 90%를 넘었고, 그들이 가장 몰입하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공간은 교실이 아니라 유튜브, 게임 플랫폼, SNS 등 디지털 세계이다.
현실보다 온라인에서 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며, 다양한 자극을 탐색하는 이들에게 디지털 공간은 ‘또 다른 일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환경이 일상의 중요한 일부가 된 상황에서, 현실 중심의 교육만으로는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에 적절히 대비하기 어렵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고, 피해가 장기적이며 회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예방 교육 또한 디지털 환경을 반영하여, 학생들이 실제로 접하는 방식과 맥락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필자는 ‘메타버스’라는 공간 자체를 교육의 장으로 삼아 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메타버스 안에서 안전하게 탐험하고 탐색하며 활동하는 경험을 통해, 디지털 공간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익히기를 바랐다.
디지털 성범죄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순한 경고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ZEP’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ZEP 플랫폼을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이었다.
경계를 넘는 손가락, 디지털 성범죄의 시작
‘시작별’ 수업은 한 학생의 고민에서 시작된다.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친구가 생일 선물 대신 ‘몸 사진’을 요구했다는 일기장 이야기다.
현실이라면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메타버스 속 아바타 ‘구름이’를 통해 제시하면 학생들은 심리적 거리를 두고 더 몰입하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본인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이지만, 이를 곧장 ‘나의 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구름이’라는 가상의 친구를 돕는다는 설정을 통해, 제3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해 보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후 ‘깨우는 방(Awakening Room)’으로 이동한 학생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다섯 가지 유형(딥페이크, 온라인 그루밍, 유포 협박, 불법촬영, 동의 없는 유포)을 실감나는 사례로 익힌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닌 ‘피해자일 수도,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위치 감각을 인식시키는 데 있다.
교사의 역할도 단순한 해설자가 아닌 안내자이자 조력자로 전환된다. 학생들의 아바타가 정보를 읽고, 질문에 답하고, 선언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적절한 시점에 개입해 사고를 확장시켜준다.

메타버스 수업, 진짜 효과가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수업은 어떤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첫째, 공간의 전환은 인식의 전환을 이끈다.
책상에 앉아 듣기만 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가상공간을 탐험하며 학습하게 되면,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인 ‘행동의 언어’로 전환된다.
둘째, 역할극 기반의 시뮬레이션은 공감 능력을 키운다.
ZEP의 ‘연습실’에서는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행동 지침을 체득하며, 위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미리 연습해 본다. ‘그 사진을 정말 보내도 될까?’, ‘게임 속 친구는 왜 이렇게 잘해줄까?’라는 고민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점검하고 정립할 수 있다.
셋째, 학생들에게 익숙한 디지털 언어로 말한다.
아바타와 가상공간, QR코드 초대, 리액션 기능, 구글 설문과 패들렛 공유 등은 학생들에게 익숙한 상호작용 방식이다. 이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존중하고, 그 언어로 소통하며 성교육의 경계를 확장한다.
경계를 존중하는 연습, 성범죄 예방의 시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수업 후반, ‘약속하기 방’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학생들은 서로의 아바타와 함께 촬영하며 이렇게 다짐한다.
“게임 안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친구의 경계를 지킬게.”
‘시작별’이라는 이름처럼, 이 수업은 거대한 디지털 세계로의 첫걸음이다.
학생들이 성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지키며, 위험 상황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는 교육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기술이 아닌 경험을 설계하는 교사
이제 우리는 에듀테크를 단순히 ‘수업에 기술을 적용했다’는 차원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통해 학생의 경험이 얼마나 변했는가’, ‘사고의 지형이 어떻게 넓어졌는가’이다.
ZEP 기반의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은 교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아이들의 현실과 함께 수업하고 있는가?”
학생들이 머무는 디지털 공간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로,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변화이고, 메타버스 교육이 제시하는 새로운 길이다.
XR메타버스협회 소개
XR메타버스교사협회는 XR과 메타버스에 관심을 가진 전국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비영리 단체다. 초·중·고등학교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육에 접목할 수 있는 XR·메타버스의 다양한 가능성을 연구하고 실험해 보고 있다.
단순히 이론적 분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교재를 개발하여 수업에 투입하고,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더 많은 동료 교사들에게 노하우를 확산하고 있다. 또한 기업과 협업해 기술적 자문과 지원을 받고, 이를 교실 현장에 검증하는 과정도 거치며, 각종 학회나 박람회 부스를 통해 교육 혁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오고 있다.

이지혜= 초등학교 보건교사이자 생활부장으로서 ‘인공지능·인문 융합 교육 전공’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건강과 성, 디지털 시민성의 교차점에서 아이들의 안전한 성장을 돕는 교육을 고민하며, AI·에듀테크를 활용한 참여형 보건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메타버스 기반 성교육, 학교폭력 예방교육, 인문·예술 보건교육과 성교육 등 다양한 미래형 수업을 설계하며 교육현장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