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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캐나다 온타리오주 동남권 여러 학교에서 보결 교사로 근무하는 정은수 객원기자가 기자가 아닌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에게는 생소한 캐나다 보결 교사의 하루하루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소개한다. (연재에 등장하는 학교명, 인명은 모두 번안한 가명을 쓰고 있다.) |
“선생님, 오늘은 제가 리더인데요, 혹시 박효연 쌤이 특별히 지시하신 게 있나요?”
“아니, 너희가 오늘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얘기해 보신다고만 했어.”
“아, 그럼 저희랑 구글 클래스룸 통해 얘기한 게 있거든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네, 그럴게요!”
지지난주에는 이틀 연속으로 상지고에서 체육을 담당하는 박 선생님 대신 보결 수업을 했다. 이렇게 학생들이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12학년 ‘레크리에이션과 생활 체육 지도자: 또래 보조 체육 활동’ 과정 때문이다.
장애 학생과 함께하는 체육 활동
이 수업은 11, 12학년 학생들이 이전에 소개한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을 다니는 중증 장애 학생들과 짝을 이뤄 체육 활동을 보조하고, 매일 그중 두 명이 짝을 이뤄 활동을 지도함으로써 지도자로서 필요한 역량을 쌓는 합반 수업이다.
상지고에는 ‘학교에서 사회로’ 과정이 두 학급이라 세 학급이 같이 수업하다 보니 체육관에는 교사 세 명과 대여섯 명 정도의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이 함께 있지만, 함께 하는 대집단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두세 명의 학생을 보조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관리 감독만 하면서 수업 활동 전반의 진행은 학생들에게 맡긴다.
장애 학생들은 휠체어를 탄 학생까지 참여할 만큼, 대집단 활동을 못 하는 학생은 아예 지시를 이해하고 따르는 일이 너무 어려운 학생 하나와 신체적인 접촉을 견딜 수 없는 아주 중증의 자폐 학생 둘을 제외하고는 보통 참여한다.
상대적으로 선택권을 많이 주고, 개개인을 존중하는 데다 학교에서 강하게 규율하지 않는 문화다 보니 이곳 학생들은 중학생이 돼도 너무 어린애같이 군다 싶을 때가 있지만, 고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스스로 하는 법을 10년간 지속해서 연습한 결과인지, 아니면 그냥 문화의 차이인지 책임감을 느끼고 반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제법 성숙하다.
물론 그냥 알아서 수업을 진행하라고 맡기는 것은 아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이 과정은 대학 진학 계열 수업으로 수강 학생 중에는 대학에서 레크리에이션, 체육, 보건, 사회복지 관련 학과 지망생들도 있는 만큼, 이에 맞게 사전에 활동 계획을 과제로 제출하고 교사의 확인을 받고 진행한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
먼저는 다른 체육 수업처럼 구기로 가볍게 몸을 푸는 시간을 가지는데 각자의 역량에 따라 진짜 공으로 농구, 배구, 미식축구로 몸을 푸는 학생도 있고 부드러운 고무공이나 가벼운 비닐 공을 굴리거나 주고받는 학생도 있다.
이 시간 동안 이날의 리더들은 활동에 필요한 세팅을 한다. 보통 두세 가지 활동을 하는데, 처음에는 다 같이 할 수 있는 놀이 같은 활동을 한다. ‘그대로 멈춰라’처럼 노래에 따라 춤추다 멈추는 놀이부터, 놀이용 낙하산을 이용한 공 튀기기, 아니면 다양한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
약간 경쟁적인 놀이나 신체적으로 격해질 때는 갑자기 우는 학생이나 돌발 행동을 하는 학생이 나오기도 한다. 이 주에도 첫날에는 명희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큰 일은 아니었지만, 이럴 때는 지켜보고 있던 특수교사가 개입하면서 모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전체 활동은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후반에는 때로는 좀 더 정식 운동 경기를 하기도 하고, 아니면 팀 대항 형식의 체육 놀이를 진행한다. 이 주에는 그다음 주에 할 스페셜 올림픽 핸드볼 경기에 대비한 핸드볼 연습을 했다.
지도자 과정 고학년 학생들과 장애 학생들이 함께 내부 대항전을 했다. 장애 학생들은 규칙을 따르고 자기 몸과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지도자 학생들은 주요한 역할은 장애 학생들이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경기를 진행했다.
후배 수업도 돕고 봉사 시간도 채우고
이 주에 수업을 학생들이 전체적으로 다 지도한 건 ‘생활 체육 지도자’ 수업뿐이었지만, 다른 시간에도 수업을 도와주는 학생 보조교사가 있어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온타리오 고교에는 종종 수업에서 이런 학생 보조 교사를 만난다. 11~12학년이 되면 공강 시간이 생기는데 이때 저학년 수업을 도와주면서 봉사 시간을 채우는 학생들이다.
온타리오주는 고교 졸업 요건으로 40시간의 자원봉사가 필요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할 경우 시간에 따라 금, 은, 동 인증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해당 과목을 이전에 수강해서 통과한 학생이어야 한다. 게다가 수업 중 질문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도와주는 정도의 활동도 하기에 보통 해당 과목을 잘했던 학생들이 한다. 그 외에도, 학습지를 나눠주거나 모둠 활동을 보조하거나 활동 준비물을 챙기는 등의 역할을 한다.
이 주 체육 수업에도 나머지 수업에는 반마다 두 명씩의 학생 보조교사가 있었다. 이들이 공도 챙겨와 주고, 경기 진행도 도와줬다.
그중 한 명인 이한이는 2년 전에 만났을 때는 영어 수업 내용도 하나 못 알아들으면서 자기는 미식축구를 잘하니까 대학을 그걸로 갈 거라고 대학 진학반 수강 신청을 물어보던 아이였는데, 제법 의젓해져서 먼저 수업 활동을 물어보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경기 진행도 맡았다. 늦더라도 여기 아이들도 철이 들면 충분히 어른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다지 열심히 수업 보조는 안 하고 후배들하고 놀면서 실력 뽐내는 시간만 보냈던 강용이도 있었지만, 필자가 그때는 못 알아봐서 그렇지 나름 100m 국내 기록 보유자였으니 자기 실력을 뽐내는 걸 즐기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준비되지 않았던 갑작스러운 비상 상황
그렇다고 수업이 편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이튿날 생활 체육 지도자 수업 도중 화재 경보가 울렸기 때문이다.
화재 대피 훈련은 담임하던 시절에 여러 차례 해보기는 했지만, 교실 수업이 아닌 체육관 수업 중 경험한 적은 없었다. 보통 교실에는 대응 매뉴얼이 비치돼 있는데, 체육관에서는 매뉴얼을 갖고 있지도 않아 일단 그래도 체육관 대피 절차를 알고 있는 이한이의 도움을 받아 부리나케 여기저기 문을 잠그고 나왔다.
영하의 날씨에 옷 챙길 틈도 없이 반팔을 입고 나오니 찬바람이 매서웠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학교에서 사회로’ 학급 학생 중에는 화재 경보 소리에 감각과부하가 온 학생도 있고, 너무 추워서 우는 아이도 있었다. 교실에 외투를 두고 실내로 체육관에 왔기 때문이다.
나중에 특수교사 선생님들에게 들으니 보통 화재 대피 훈련을 할 때 ‘학교에서 사회로’ 학급은 별도의 절차를 가진다고 한다. 교실에 화재 경보 소리도 훨씬 작고, 별도의 가까운 대피장소로 간다.
그래도 장애 학생들이 고통스러워하니까 지도자 학생들이 장애 학생들을 위해 외투를 벗어주고, 특수교사 선생님들이 교장 선생님과 휴대전화로 연락해 학교 밖 가건물 창고에 대피할 수 있었다. 감각과부하로 멜트다운이 온 학생은 특수교육 보조 선생님이 따로 데리고 가 진정시키고 왔다.
상황이 정리되고 다시 교실에 들어가려는데 명희가 불 냄새가 난다면서 무서워했다. 이런 학생 중에는 감각이 예민한 학생들이 있는데, 주차장의 차량 엔진에서 나는 연료 타는 냄새를 맡고 그런 것이었다. 주차장의 상황을 설명해 주니 알아듣고 들어가기는 했다.
다행히 진짜 불이 난 것은 아니었고, 화재경보기 오작동이었다. 그렇게 학생들 도움을 받아 한 주를 무사히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부쩍 의젓해지는 데는 이렇게 고교 때부터 지도력과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를 실제로 경험하는 일이 한몫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계속>







































